[박근혜 시대] 새누리당 주변 벌써 '인수위 줄대기'
“하루종일 휴대폰이 울려 ‘벨 소리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입니다. 대부분이 대통령직 인수위 인사 청탁 내용이라 웬만하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새누리당 주변에서 벌써 ‘인수위 줄대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친박계(친박근혜) 핵심이나 선대위 고위 관계자들은 요즘 하루에 많게는 100통이 넘는 전화를 받는다. ‘인수위에 들여보내 달라’는 청탁 전화가 쇄도하는 것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23일 “이곳저곳에서 ‘나도 인수위에서 일하고 싶다’ ‘실세가 누구냐’며 연락이 엄청나게 온다”며 “정치권 및 선대위에서 일했던 사람, 공무원, 교수, 검찰, 경찰 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선대위의 한 고위인사는 “휴대폰 액정에 아는 번호가 떠도 인수위 청탁 전화일까봐 잘 받지 않게 된다”며 “전화번호를 바꿀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청탁자들은 학연, 지연 등 ‘연줄’을 총동원한다. 방식도 읍소, 협박, 애원 등 다양하다. 통화가 되지 않으면 직접 의원회관을 찾아오거나, 지역구 행사장 등에 불쑥 나타나는 일도 다반사다.

인수위 입성 청탁이 극성스러운 이유는 인수위를 승진의 지름길 및 출세 보증수표로 여기기 때문이다. 인수위 출신들이 새 정부에서도 요직에 중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간판’이 필요한 원외 정치인들은 공천받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인수위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한다.

언론에 오르내리거나 낙점 가능성이 높은 인사들은 청탁자를 피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 한 인사는 “청탁자들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안면도 있고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알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면전에서 거절하거나 둘러대기도 참 난감하다”며 “그저 피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수위에 줄 대려는 이들도 할 말은 있다. 선대위 하부조직에서 코피까지 흘리며 뛴 고생을 보상받고 싶다는 것이다.

선대위 직능본부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선대위가 해체되니까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며 “내 앞날을 앉아서 걱정만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현상은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 왔다.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 청탁에 대해 “패가망신할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으며, 이명박 당선인 역시 5년 전 인수위 줄대기에 대해 ‘위험한 발상’이라고 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