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단에서도 20~40대 젊은 작가와 70대 이상 원로 사이의 틈바구니에 서 있는 50~60대 화가들은 정치적, 경제적 과도기를 거치면서 굉장한 궁핍을 경험해야 했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어요. 하지만 기본기에는 충실한 세대죠.” (추상화가 이두식)

“그동안 ‘낀 세대’로 불리던 중견 작가들은 정보화의 물결이 몰려오면서 후배들에 의해 자리를 위협받는 상황이 됐습니다. 선배들이 가진 선동적인 카리스마도, 디지털 세대인 후배들의 당돌함도 찾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그래도 도전 정신만은 살아 있습니다.” (한국화가 하철경)

지난 50년 동안 사회 정치적 전환기를 거치며 치열한 내부경쟁을 통해 실력을 다져온 이씨와 하씨를 비롯해 이왈종 한만영 이석주 김태호 석철주 이원희 김춘옥 이수동 씨 등 5060세대 미술가 21명이 독특한 손맛이 깃든 신작을 내보이며 새해 화단의 첫 포문을 연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1층 한경갤러리가 오는 3일부터 20일까지 펼치는 새해 첫 기획전 ‘5060 희망을 쏘다’를 통해서다. 경기침체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많은 화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자는 취지에서 전시 주제도 ‘용기백배, 희망천배’로 정했다.

과거 군사 정권에 반발하며 20~30대를 보낸 이들 5060세대 작가들은 얄팍한 트렌드에 의지하기보다는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자기성찰, 혁신적 시도에 독창성까지 가미된 작품을 들고 나온다.

극사실주의 대가 이석주 씨(61·숙명여대 교수)는 “불황에 빠진 미술 시장은 지금 생존 방법 찾기에 분주하다”며 “시장에 용기를 주기 위해 중견 작가들이 뭉쳤다”고 했다.

화면에 여러 겹의 색을 칠한 뒤 긁어내는 기법으로 색면 추상 작업을 하는 김태호 씨(65·홍익대 교수)는 “한국인 평균 수명이 80세로 길어진 만큼 5060세대로서는 그동안 쌓아온 경륜을 활짝 펼치는 시기”라며 “관람객들도 중견 작가의 창작 열기에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화가 석철주 씨(63·추계예술대 교수)는 “설치·영상 미디어 작품이 대세인 요즘 미술계에서 관람객에게 회화를 보여줄 수 있는 드문 전시”라며 “경기 불황으로 고생하는 후배 작가들에게 힘이 되고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그런 전시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다양한 주제와 아이디어의 출품작들은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탐색하게 한다.

중도(中道)의 삶을 그림으로 형상화해 유명해진 이왈종 씨(68)는 제주의 풍요로운 자연과 골프를 치는 한가로운 일상이 어우러진 작품을 내보인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형상화해온 한만영, 강렬한 선과 색채로 원초적인 자연의 미감을 연출한 가국현, 스토리텔링 화풍으로 유명한 이수동, 달항아리와 매화꽃을 응축한 송필용, 진달래를 통해 모성애를 은유적으로 표사한 김정수 씨 등의 작품이 걸린다.

담채수묵으로 그린 오용길 씨의 꽃 그림, ‘전명자표’ 오로라 회화, 콜라주와 데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김춘옥 씨의 한지 작업, 전준엽 씨가 그린 현대적 화풍의 퓨전 산수화, 소나무를 사진처럼 정교하게 묘사한 장이규 씨의 작품, 동물을 의인화한 안윤모 씨의 팝아트도 눈길을 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5060세대 작가들은 젊은 작가에 비해 어느 정도 작품성이 검증된 데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장기 투자 차원에서 컬렉터들이 관심을 보인다”며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한국적 멋을 잘 표현하느냐가 작품성을 평가하는 잣대”라고 말했다. (02)360-41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