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라는 괴이한 이름의 부처 신설이 정부조직 개편의 핵심인 모양이다.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장기 국가정책을 수립하며, 기초·창조과학 연구를 지휘하고, 융합형 산·학·연·지역 공동체를 지원하며, 지식생태계 구축 등을 위한 전담부서로 기능한다는 게 골자다. 한마디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추상적 조직이다.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를 총괄할 부총리 부처가 될 거라는 소문이 있는가 하면, 순수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바랐던 과학기술계에서는 벌써부터 반대 목소리도 들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조직개편 소동이 되풀이되는 것부터 후진적 현상이다. 툭하면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 자체가 아마추어적이다. 정부든 기업이든 조직과 과업에 대해 잘 모를수록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고 법석을 떨기 마련이다. 더구나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한다는 사고야말로 국가주의 혹은 설계주의자들의 한심하고 유치한 발상이다. 여기에 독자적인 예산을 노린 이해집단들의 발호가 더해진 것이 지금의 조직개편 논란이다.

백보를 양보해 정부조직을 만들어 잘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한국 바둑이 아시아를 제패한 것이나 반도체산업이 성공한 것은 정부에 담당과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전담부처가 많을수록 공무원은 늘고 결국 간섭과 규제가 판을 치면서 혁신이 질식당하는 것은 거의 법칙에 가까울 것이다. 더구나 관료들이 국가를 기획하겠다는 것은 민주국가 아닌 관료국가에서 가능한 전근대적 발상이다.

미래와 창조를 떠들지만 정부의 지식은 결코 민간을 따라갈 수 없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자율과 창의라는 이름을 걸고 정부조직을 만든다는 것은 조지 오웰의 ‘1984’에서처럼 명칭과 실질의 괴리를 초래할 뿐이다. 공약대로라면 미래창조과학부는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의 관련 기능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을 다 합쳐도 부족할 지경이다. 이를 컨트롤하겠다면 그 밑에 장관급 조직을 또 둬야 하는 ‘이중 정부’가 되고 만다. 정부가 할 일과 안할 일을 구분하는 게 핵심이다. 다음 정권에서 바로 폐지될 그런 조직은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