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병원을 찾은 중학생 정모군은 2년 전부터 왼쪽 귀에서 ‘삐~’ 하는 높은 버튼음의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정적이 흐르듯 귀가 먹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삐~’ 소리가 기분 나쁘게 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는 점점 더 자주, 크게 들려 그동안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이다. 특히 집중해서 공부해야 할 때 귀에서 나는 소리로 인해 집중이 안 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괴롭다는 표현도 자주 했다. 정군의 부모는 처음에 몸이 허해진 줄 알고 갖가지 보약을 지어 먹이기도 하고, 정신적인 이상증세가 아닐까 싶어 신경안정제도 복용시켰다고 한다. 진단 결과 정군의 증상은 다름아닌 이명이었다.

외부로부터 소리 자극이 없는데도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이명이라고 한다. 이명은 스트레스가 많은 어른들의 질환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이명을 경험하는 어린이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 조사결과에 따르면 4~6학년 학생 940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 ‘이명’을 경험했거나 그런 증상을 갖고 있었다. 더 심각한 것은 응답자 중 4.4%가 항상 이명이 들린다고 답했으며, 대부분 병원을 찾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경우 귀에서 소리가 나는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부모에게 이상 증세를 호소하지 않아 간과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 이유로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증상을 악화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명이 지속되면 집중력이 떨어져 학업장애를 일으키고, 밤에 숙면을 취하기 어려워 성장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엄밀히 말해 이명은 하나의 증상이지, 질병은 아니다. 환자의 60%는 특별한 원인 없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과로나 스트레스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이명과 함께 난청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특히 난청이 동반된 이명은 급성저주파성 난청, 돌발성 난청, 메니에르병, 청신경종양 등 다른 질환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기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이명은 약물치료, 수술, 차폐요법, 물리적 자극, 식이요법, 바이도 피드백, 척추지압요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한다. 습관화 과정을 통해 이명을 자연스러운 소리로 인식하도록 적응시키는 훈련도 하고, 최근에는 심리상담이나 소리치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이명재활치료법’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습관화 과정이 치료의 첫 단추다. 예컨대 냉장고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주부가 부엌에서 일하면서 의식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어떤 소리에 대한 반복적인 노출로 인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 의미가 없어지고 감지되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이명은 치료 이후에도 꾸준한 청력관리가 중요하다. 평상시 청취하는 음악의 볼륨을 절반 이하로 낮추고, 휴대폰 사용 시 양쪽 귀를 번갈아가면서 통화하는 것 등이다. 특히 자주 귀를 쉬게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호기 소리이비인후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