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상권 3대 트렌드] 주점·서점 '추억이 된 자리'…스타벅스·유니클로가 점령
(1) 카페 - 고려대 앞 커피전문점 100곳 생존경쟁

연세대 인근 자취촌, 2년사이 카페 7곳 문열어
이대 등 캠퍼스 안까지 진출…"저렴한 밥집 사라진다" 불만도


[대학상권 3대 트렌드] 주점·서점 '추억이 된 자리'…스타벅스·유니클로가 점령
23년째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앞 터줏대감인 전통주점 ‘풍년집’. 수많은 고대생이 파전에 막걸리를 기울이며 추억을 쌓아온 이곳에선 요즘 예전 같은 활기를 찾기 어렵다. 전 주인이 장사를 접은 뒤 지난해 가게를 넘겨받은 정영대 사장(53)은 “연말 모임이 몰렸어야 할 지난달에도 매출 420만원에서 재료비, 임대료 등을 제하니 순수익은 고작 140만원이었다”며 “장사가 안 돼 마음 고생이 심하다”고 털어놨다.

고대 막걸리 문화를 대표했던 ‘나그네파전’ ‘이모집’ ‘고모집’ ‘충주집’ ‘부산집’ 등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학생들의 설명이다. 이 학교에 다니는 김민수 씨(26)는 “학생들의 취향이 많이 변했고 음주를 권하는 문화가 약해져 신입생 환영회 때도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고 전했다.

막걸리의 빈자리는 커피전문점이 채웠다. 고대 인근에선 스타벅스, 커피빈, 카페베네를 비롯한 유명 브랜드부터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카페까지 100개 가까운 커피전문점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경대 후문 반경 50m엔 10여곳이 몰려 ‘한 집 건너 한 집이 카페’다. 안암동 고려부동산의 김만규 사장은 “2010년부터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 포화 상태에 달했는데도 계속 생긴다”며 “은퇴한 베이비부머(1955~63년생) 세대가 주로 뛰어들어 지금도 상업용 건물 거래의 70%는 커피전문점”이라고 설명했다.

커피전문점 열풍은 하숙촌 일대도 파고들었다. 연세대 서문 쪽 자취촌에는 불과 2년 사이에 7개 카페가 문을 열었다. 음악이 나오지 않는 조용한 독서실 분위기의 ‘작은정원’,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로 유명한 ‘아이스프링’, 사랑방 분위기로 단골이 많은 ‘자모크 커피’ 등이 인근 자취생과 주부·노인들로 북적인다.

자취생 이우승 씨(27)는 “좁은 방을 벗어나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공부하는 게 편안하다”며 “지금은 방학이라 조금 한산해졌지만 카페가 늘어나도 모두 장사가 잘된다”고 말했다. 서울 낙성대역·상수역·합정역 일대에도 주택가 골목을 개조한 개성 있는 인테리어의 소규모 카페들이 성업 중이다.

낙성대 지역 카페 ‘텐테이블’ 매니저 이호준 씨는 “종강 시즌이면 학생들이 단체예약을 하기도 하고 근처 원룸에 사는 직장인도 많이 찾아온다”며 “추가 주문 없이 오랜 시간 자리를 차지해도 눈치를 받지 않는 편안함과 친구 같은 친밀함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건국대 상권에서는 건국대병원을 기준으로 반경 150m 안에 엔제리너스 매장이 7개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인근 공인중개사는 “약속 장소로 유명한 건대입구역 2번 출구 매장은 겨우 현상 유지만 하고 있다”며 “커피전문점끼리 과열 경쟁을 벌이니 대로변 권리금은 100㎡ 점포가 4억원까지 치솟았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수익성 강화 차원에서 잇따라 짓고 있는 ‘캠퍼스 내 자체 상업시설’도 주변 상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엑스몰에 빗대 ‘고엑스몰’로 불리는 고려대 중앙광장과 이화여대 ECC, 서강대 곤자가플라자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시설이 들어서면 기존에 오랜 기간 자리를 지켰던 학내 식당과 분식집, 매점 등이 밀려나고 유명 프랜차이즈의 식당, 카페, 편의점 등이 입점한다. 숭실대는 캠퍼스 안에 홈플러스를 입점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연세대도 작년 말 캠퍼스 중심길인 백양로 밑에 지하상가를 개발하는 안을 내놨다가 상인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강진규/박병종/추가영 기자 josep@hankyung.com

(2) 패스트패션 - 홍익대·연세대 상권 중저가 패션이 접수

명동·강남보다 임대료 저렴…젊은층 많아 패션업계 주목
대학로에서 대박 친 '탑텐'…백화점·가두점으로 진출

[대학상권 3대 트렌드] 주점·서점 '추억이 된 자리'…스타벅스·유니클로가 점령
서울 그랜드마트 신촌점자리에 들어서는 제조·직매형의류(SPA·패스트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는 올 상반기 중 문을 열 예정이다. 유니클로는 불과 200m 떨어진 곳에 신촌점, 900m 거리에 홍대점, 1㎞ 거리에 와이즈파크홍대점이 있다. 6층짜리 초대형 매장까지 추가하면서 이 일대를 “유니클로가 접수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패션업계에서는 주 소비층이 30대 이상으로 ‘늙어버린’ 신촌 상권이 초대형 유니클로의 탄생을 계기로 활기를 되찾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신촌 상권은 연세대·서강대·이화여대를 잇는 ‘아날로그 대학 문화’의 상징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개성과 매력을 잃은 채 쇠락했다는 평이 많았다.

인근 신진공인중개사의 오영균 사장은 “지금 신촌에서는 밥집이나 카페만 간신히 살아남을 뿐 장사가 전혀 안 된다”고 말했다.

패스트패션의 힘은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 2011년 개장한 쇼핑몰 ‘와이즈파크’의 성공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건물의 전신인 스타피카소는 상가 분양에 실패하면서 2007년 준공 이후 개점휴업 상태였다. ‘홍대입구역 8번 출구는 죽은 상권’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와이즈파크는 유니클로와 이랜드의 미쏘, 스파이시칼라의 스파이시칼라 등 패스트패션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워 젊은 쇼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대학 상권을 시범매장으로 삼아 젊은 층의 검증을 받은 뒤 ‘대박’을 터뜨린 패스트패션 브랜드도 있다. 신성통상의 탑텐은 작년 6월 대학로에 1호점을 낸 뒤 15일 만에 매출 3억원을 기록했고, 월 평균 4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주요 백화점 입점에도 성공하면서 올해는 매장을 40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유니클로에 비해 보수적인 출점 전략을 펴온 스웨덴 패스트패션 브랜드 H&M도 올 봄 서울 홍익대 인근 옛 스타벅스 홍대점 자리에 4층짜리 대형 매장을 낸다. 홍대 상권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점 중 하나다.

스타벅스가 치솟는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빠져나간 이 건물을 H&M이 통째로 임대했다. 홍대에는 2009년 유니클로를 시작으로 자라, 갭, 탑텐이 차례로 매장을 내면서 잘나가는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격전지가 됐다. 제일모직의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에잇세컨즈도 홍대 쪽에 출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상권은 서울 명동·강남 등 핵심상권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한 데다 젊은 층 유동인구도 많아 패션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신발 전문매장 ABC마트의 100호점인 대학로점은 월 4억원대 매출을 내고 있다.
푸마·아디다스·지오지아·TNGT·질스튜어트 등 유명 브랜드의 길거리 매장도 대학로 상권에서 성업 중이다. 임대료가 전국 최상위권으로 치솟아 개인 점포는 진입이 쉽지 않지만, 젊은 층을 대상으로 트렌드를 검증해보기 위한 패션업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홍헌표/김도연/김태혁 기자 hphong@wowtv.co.kr

(3) 외국인 - 건국대 골목상점 고객은 '중국 유학생'

고대 앞 인도·우즈베크 등 다양한 나라 음식점 줄이어
'한국의 문화 아이콘' 홍익대…외국인 게스트하우스 50곳 외국인


서울 화양동 건국대 근처에서는 길거리든, 카페든, 백화점이든 중국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건국대에 유학온 중국 학생들의 대화다. 건국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인 학생을 전략적으로 유치하기 시작해 지금은 정원 1만6000명의 11.3%인 1800명이 중국인이다.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80%에 달한다.

건국대의 중국 유학생 중 기숙사 생활을 하는 사람은 20%뿐이고 나머지는 인근에서 자취를 한다. 상권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자취촌 골목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파는 ‘파프리카’ 관계자는 “매출의 절반 이상이 중국 유학생에게 나올 정도로 이 지역 상권에서 중요한 고객”이라고 말했다. 건국대의 중국 유학생들은 학교 맞은편에 있는 롯데백화점 건대스타시티점에서도 주요 고객이다. 건대역 근처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중국 교포들의 잇따른 이주로 인해 이들의 생활권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안암동 고려대 인근에 최근 3~4년 새 다양한 국적의 음식점이 줄지어 생긴 것도 외국인 유학생의 영향이다. 인도 음식점 ‘오샬’, 우즈베키스탄·러시아 음식점 ‘사마리칸트’, 베트남 음식점 ‘더 팟타이’, 일본풍 매운카레 전문점 ‘아비꼬’ 등이 인기다. 고려대와 한국외국어대, 경희대의 외국인 유학생을 모두 합치면 6000명에 달한다. 경희대가 3000명으로 가장 많고 고려대가 1800명, 한국외대가 1200명 선이다.

1년 전 안암역 인근에 99㎡(약 30평) 크기로 문을 연 멕시코 요리 전문점 ‘도스타코스’의 최환기 사장(29)은 “멕시코 음식은 빨리 나오고 쉽게 먹을 수 있는 데다 이슬람·힌두교 출신 유학생이나 베지테리언(채식주의자)에게도 맞춤형 메뉴를 제공하는 게 인기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가게에서 200m 떨어진 곳에 2010년 들어선 정통 일식 라면식당 ‘쿠이도라쿠’는 매달 2500만~35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월 순이익도 1200만원 선에 이른다.

한국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홍익대 인근에는 홍대 문화와 쇼핑을 즐기기 위해 찾는 외국인들이 많다. 홍대 인근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민박인 게스트하우스가 50여곳에 달한다. 홍익대 상권의 상수역사거리에서 자연주의 콘셉트의 카페 ‘슬런치팩토리’를 운영하는 이현아 사장(29)은 “연남동 주변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투숙하는 외국인 아티스트들이 문화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카페를 매일 찾는다”고 설명했다.

허진/홍선표/박시은 기자 sa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