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美 PVC '공습'…피마르는 유화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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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가스 때문에…요동치는 한국 석유화학산업
미국산 제조원가 한국업체의 절반
마진없이 팔아도 가격경쟁력 떨어져
中·러·터키로 수출 확대…생존 위협
미국산 제조원가 한국업체의 절반
마진없이 팔아도 가격경쟁력 떨어져
中·러·터키로 수출 확대…생존 위협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셰일가스를 원료로 써서 만든 미국산(産) 저가 폴리염화비닐(PVC)의 ‘공습’에 흔들리고 있다. 미국 화학회사들은 셰일가스에서 나온 에탄으로 PVC를 생산해 중국 등 국내 기업의 주력 시장으로 밀어내고 있다. 경기침체에 미국산 PVC 물량 공세로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수출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산 PVC 수출 5년 새 2배 급증
미국에서는 셰일가스에서 나오는 에탄을 분해해 에틸렌을 만드는 에탄 크래커 설비가 증가하고 있다. 셰일가스엔 난방ㆍ발전용으로 쓰는 메탄(70~90%)뿐 아니라 석유화학 원료인 에탄도 5%가량 포함돼 있다.
에틸렌은 폴리에틸렌(PE)이나 PVC와 같은 합성수지에 필요한 대표적인 화학원료다.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이 확대되면서 저가 에탄을 활용한 PVC 생산도 늘고 있다. 북미지역 PVC 생산 규모는 2011년 기준으로 596만2000t으로, 이미 현지 수요(445만7000t)를 넘어섰다.
박장현 석유화학협회 연구조사본부 과장은 “PVC 60% 이상이 건축용 수요와 관련이 있는데 미국 내 건설경기 침체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수출이 늘고 있다”며 “미국의 PVC 수출 물량은 2007년 123만7000t에서 2011년 316만t으로 연평균 26% 증가해 수출 비중이 50%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에틸렌 원가, 한국 기업의 절반
미국산 PVC 물량이 늘어나면서 주요 수출 지역도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 인접지역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터키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미국산 PVC 수입은 2007년 6만5712t에서 지난해 11월 기준 34만5639t으로 5배 증가했다.
아시아 지역으로의 미국산 PVC 유입은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엔 심각한 위협이다. 유기돈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에탄 크래커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뒤지는 나프타 원료에 의존하고 있고 주요 판매지역은 중국”이라며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설비는 에탄을 원료로 한 설비 이상의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LG화학이 86만t, 한화케미칼이 56만t의 PVC를 생산하고 있다. 중국시장 공략을 위해 국내 설비와 별도로 LG화학은 톈진에 40만t, 한화케미칼은 닝보에 30만t 규모의 생산 설비를 가동 중이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요가 둔화된데다 중국의 공급과잉과 저가 미국산 수출이 이어지면서 시황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미국산 PVC 물량 증가로 2012년 상반기 1000달러를 상회하던 아시아 지역 PVC 가격은 6월 이후 다시 급락하면서 t당 100달러 가까이 떨어졌다.
미국은 셰일가스 덕분에 PVC 생산원가를 낮춰 아시아 지역까지 가져와도 운송비를 상쇄할 만큼 제품의 원가경쟁력을 갖췄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셰일가스를 활용한 에틸렌 제조원가는 t당 600달러 정도다. 중동의 저가 에탄을 활용하는 것보다 2배가량 비싸지만 한국을 비롯해 나프타를 원료로 쓰는 아시아 국가들의 제조원가 1000~1200달러에는 절반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PVC 판매 가격은 미국산이 아시아 지역 가격보다 t당 80~100달러 정도 저렴하다”며 “불황이 이어지더라도 미국 업체들은 가격을 더 내릴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은덕 아주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에탄 기반의 에틸렌 범용제품과 차별화된 석유화학제품 생산구조로 전환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며 “규모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이 기초 원료를 공동 구매하거나 생산설비에 공동 투자하는 등 기업 간 제휴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