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특별 인터뷰] 리카즈 "美·日, 환율전쟁 공조…이들은 원화강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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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주목받는 '커런시워' 저자 제임스 리카즈
"경기침체 겪고 있는 美·日 통화가치 하락통해 원하는 건 수출 아닌 인플레이션 수입"
"경기침체 겪고 있는 美·日 통화가치 하락통해 원하는 건 수출 아닌 인플레이션 수입"
'환율전쟁' 2020년까지 지속
韓, 원화절하땐 인플레 우려, 급격한 환율변동 막아줄 토빈세 도입 검토해 볼만
달러 '기축통화' 위기
초인플레로 달러 중심, 국제통화시스템 붕괴하고 IMF '특별인출권'이 대체
심화되는 글로벌 보호주의
브라질 등 환율전쟁서 이길수 없다고 판단되면 보호무역쪽으로 방향 틀 것
“미국은 (외교·군사적으로) 한국의 동맹국이지만 통화전쟁(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면서 환율을 높이는 환율전쟁)에서는 한국 편이 아니다.”
2011년 책 ‘커런시워(Currency Wars)’가 처음 나오고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로 선정될 때까지만 해도 주류 경제학자와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은 저자 제임스 리카즈의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2010년 미국과 중국 간의 3차 통화전쟁으로 초(超)인플레이션이 촉발돼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 시스템이 붕괴될 것”이라는 그의 전망을 그저 과도한 비관주의로 치부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미국 중앙은행(Fed)이 3차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하고, 작년 12월에는 아베 신조 신임 총리가 정권을 잡은 일본마저 무제한 금융완화에 나서면서 리카즈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2일(현지시간) 리카즈가 대표로 일하고 있는 소형 투자은행(IB) 탄젠트캐피털의 뉴욕 맨해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일본이 통화전쟁에 가세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일본과 미국이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진짜 이유를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피상적인 설명은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사실 이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들이 통화가치 하락을 원하는 진짜 이유는 수출이 아닌 수입이다.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입물가가 비싸진다. 그러면 공급망 전체에 걸쳐 가격이 올라가고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 두 나라는 이런 방식으로 인플레이션을 수입하기 원한다. 일본은 심각한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하락을 동반하는 경기 침체)을 겪고 있고, 미국도 여전히 경기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변국들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통화전쟁의 문제는 승자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패자다. 벤 버냉키 Fed 의장이 작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한 연설을 보자. 그는 ‘우리는 계속 돈을 찍어낼 것이다. 당신들 무역 파트너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만약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하길 원한다면 돈을 찍어라. 하지만 그 결과로 인플레이션을 얻게 될 것이다. 만약 인플레이션을 원하지 않는다면 달러 대비 통화가치가 올라가도록 놔둬라. 그러면 수출은 피해를 보겠지만 인플레이션은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무역 파트너들이 물었다. ‘모두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인데 왜 받아들여야 하나.’ 이에 버냉키 의장은 ‘세 번째 선택은 더 나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세 번째 선택은 미국이 더 이상 돈을 찍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미국 경제가 침체되면 세계 경제가 함께 침몰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일본도 그 무역 파트너들에 해당하나.
“일본은 예외다. 일본은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 중 달러보다 더 빠르게 통화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도록 용인받는 유일한 국가다. 그렇다면 왜 일본만 특별 대우를 받는 걸까. 첫 번째는 일본 경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도움이 필요하다고 미국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인구는 고령화하고 있다. 두 번째는 지정학적 이유다.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은 미국에 일본은 가장 중요한 동맹이다. 세 번째 이유는 일본이 미국 국채를 살 ‘최후의 구매자’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 국채 순매수를 줄이고 있는 반면 일본은 늘리고 있다. 이 세 가지 이유로 두 나라는 통화전쟁에서 공조하고 있다.”
▷한국도 미국의 동맹국이다.
“미국은 분명히 한국을 도울 것이다. 하지만 통화전쟁에서 미국은 한국 편이 아니다. 미국은 원화 강세를 원한다. 앞서 말했듯이 인플레이션을 수입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한국 제품을 비싸게 사서 물가 상승을 유도하고 싶어한다.”
▷금융완화 정책이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나.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이 통화가치를 낮추면 경제에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독일은 50년 동안 높은 통화가치에도 불구하고 수출 강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수출 경쟁력은 통화가치를 낮춰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법인세를 낮추고, 교육과 기술 혁신에 투자하고, 좋은 노사관계를 유지해 기업 친화적 환경을 만드는 게 정답이다. 사실 일본도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금태환 중지를 선언한 뒤 3개월 동안 엔화가치가 17%나 올랐다. 하지만 이후 일본의 수출은 줄어들지 않았다. 생산성과 혁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엔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에는 일본이 경쟁력을 잃지 않았나.
“당시 일본의 문제는 수출 부진이 아니라 금융 거품이었다.”
▷현재 일본은 생산성 저하라는 구조적 문제를 겪고 있다.
“물론 심각한 문제다. 해결책은 엔저(低) 정책이 아니라 이민정책이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인들 중 일본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의 노동력을 적극 받아들이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통화전쟁의 최대 피해자로 한국이 지목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기술 혁신에 매진해야 한다. 최고의 제품을 가지고 있다면 환율은 문제되지 않는다. 한국은 효율성이 높고 전자 조선 등 강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한국이 만약 원화가치 절하 등 통화전쟁에 동참한다면 남는 것은 인플레이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줄이기 위해 토빈세(외환금융 거래세)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데.
“토빈세는 경제에 거품이 끼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플라자 합의 이후 외국 자본이 들어와 거품이 형성됐다. 통화 강세가 이어지면 자산에 거품이 낄 확률이 높다. 토빈세는 이를 막을 좋은 정책 도구 중 하나다.”
▷앞으로 통화전쟁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과거 100년간 우리는 두 번의 통화전쟁을 겪었다. 1921년부터 1936년까지 1차 통화전쟁, 1967년부터 1987년까지 2차 통화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2010년 Fed가 양적완화를 시작하면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3차 통화전쟁이 시작됐다. 3차 통화전쟁도 짧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최소한 2020년까지는 지속될 것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렇다. 시중에 통화량은 이미 충분하다. Fed가 원하는 대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려면 통화 유통 속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바꿔 돈을 쓰도록 해야 한다. 현재 Fed의 물가관리 목표치는 2%이지만 사실은 4%로 인플레이션율을 높여야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릴 수 있다. 놀란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을 우려해 당장 자동차와 집을 사도록 하는 것이 Fed의 목표다. 문제는 그 이후다. Fed는 2~4% 내에서 인플레이션을 관리할 수 있다고 믿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7%까지 치솟을 수 있다. 소비자 심리는 바꾸기 어렵지만 한 번 방향이 잡히면 관성이 생기게 마련이다. 1970년대와 같은 극심한 초인플레이션이 재연될 것이다. 그 시점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것으로 보는지.
“당장은 아니지만 그럴 것으로 본다. 달러 가치가 계속 하락하면서 또 한 차례의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위안화, 유로화 등 다른 국가의 통화가 달러를 대체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국가를 초월한 화폐가 필요해질 것이고,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이 대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SDR이 달러를 대체하는 게 가능한가.
“IMF가 SDR을 내놓은 것은 1981년이지만 2009년까지 30년 동안 한 번도 발행한 적이 없다. SDR은 긴급 유동성을 제공하기 위해 설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상황이 다급해지자 IMF는 3000억달러 규모의 SDR을 발행했다. 달러 시스템이 붕괴하면 수조달러의 SDR이 발행되고 달러를 대체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시점은 2021년께로 예상한다.”
▷국제통화 시스템이 금본위제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궁극적으로는 지폐, 즉 종이돈이 신뢰를 잃을 것으로 본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금이다. SDR과 금을 함께 쓰는 방식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통화전쟁이 과거와 다른 점은 뭔가.
“과거 두 번의 통화전쟁은 흥미롭게도 서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냈다. 1930년대 통화전쟁은 보호무역에 의한 무역전쟁으로 이어지면서 디플레이션으로 귀결됐다. 반대로 1970년대 통화전쟁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이번 통화전쟁은 인플레이션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디플레이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보호주의가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지.
“그렇다. 나라마다 중앙은행의 힘이 다르다. 중국 중앙은행은 Fed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지만 브라질은 다르다. 발권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 따라서 브라질 같은 국가들이 통화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을 하면 보호무역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 제임스 리카즈는
변호사 출신 투자은행가…35년간 월스트리트서 활동
미국 워싱턴DC 인근의 응용물리연구소(APL). 1942년부터 무기 개발 및 우주 연구의 한 축을 담당해온 이곳은 국방부를 위해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을 진행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18일 APL은 국방부와 함께 특별한 전쟁게임을 진행했다. 통화와 각종 금융상품을 무기로 한 세계 금융전쟁이다. 제임스 리카즈는 월스트리트 전문가로 이 모의전쟁에 참여해 러시아가 금에 기반한 새로운 국제통화를 만든 뒤 이 화폐를 지급하는 국가에만 천연가스 등 자원을 판매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 참여자들을 놀라게 했다. 타국의 공격에 의한 달러 시스템 붕괴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고하려는 의도였다.
리카즈는 35년간 월스트리트에서 변호사와 투자은행가로 활동한 금융 전문가다. 1998년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당시 LTCM 측 변호사로 뉴욕 연방은행의 구제금융 협상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 자신의 금융지식을 활용해 국방부 등 안보당국에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2011년 쓴 ‘커런시워(Currency Wars)’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됐으며 작년에는 한국에도 번역 출간됐다.
리카즈는 미국 존스홉킨스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국제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펜실베이니아대(JD)와 뉴욕대(LL.M) 로스쿨도 졸업했다.
韓, 원화절하땐 인플레 우려, 급격한 환율변동 막아줄 토빈세 도입 검토해 볼만
달러 '기축통화' 위기
초인플레로 달러 중심, 국제통화시스템 붕괴하고 IMF '특별인출권'이 대체
심화되는 글로벌 보호주의
브라질 등 환율전쟁서 이길수 없다고 판단되면 보호무역쪽으로 방향 틀 것
“미국은 (외교·군사적으로) 한국의 동맹국이지만 통화전쟁(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면서 환율을 높이는 환율전쟁)에서는 한국 편이 아니다.”
2011년 책 ‘커런시워(Currency Wars)’가 처음 나오고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로 선정될 때까지만 해도 주류 경제학자와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은 저자 제임스 리카즈의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2010년 미국과 중국 간의 3차 통화전쟁으로 초(超)인플레이션이 촉발돼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 시스템이 붕괴될 것”이라는 그의 전망을 그저 과도한 비관주의로 치부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미국 중앙은행(Fed)이 3차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하고, 작년 12월에는 아베 신조 신임 총리가 정권을 잡은 일본마저 무제한 금융완화에 나서면서 리카즈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2일(현지시간) 리카즈가 대표로 일하고 있는 소형 투자은행(IB) 탄젠트캐피털의 뉴욕 맨해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일본이 통화전쟁에 가세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일본과 미국이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진짜 이유를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피상적인 설명은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사실 이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들이 통화가치 하락을 원하는 진짜 이유는 수출이 아닌 수입이다.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입물가가 비싸진다. 그러면 공급망 전체에 걸쳐 가격이 올라가고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 두 나라는 이런 방식으로 인플레이션을 수입하기 원한다. 일본은 심각한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하락을 동반하는 경기 침체)을 겪고 있고, 미국도 여전히 경기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변국들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통화전쟁의 문제는 승자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패자다. 벤 버냉키 Fed 의장이 작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한 연설을 보자. 그는 ‘우리는 계속 돈을 찍어낼 것이다. 당신들 무역 파트너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만약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하길 원한다면 돈을 찍어라. 하지만 그 결과로 인플레이션을 얻게 될 것이다. 만약 인플레이션을 원하지 않는다면 달러 대비 통화가치가 올라가도록 놔둬라. 그러면 수출은 피해를 보겠지만 인플레이션은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무역 파트너들이 물었다. ‘모두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인데 왜 받아들여야 하나.’ 이에 버냉키 의장은 ‘세 번째 선택은 더 나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세 번째 선택은 미국이 더 이상 돈을 찍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미국 경제가 침체되면 세계 경제가 함께 침몰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일본도 그 무역 파트너들에 해당하나.
“일본은 예외다. 일본은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 중 달러보다 더 빠르게 통화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도록 용인받는 유일한 국가다. 그렇다면 왜 일본만 특별 대우를 받는 걸까. 첫 번째는 일본 경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도움이 필요하다고 미국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인구는 고령화하고 있다. 두 번째는 지정학적 이유다.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은 미국에 일본은 가장 중요한 동맹이다. 세 번째 이유는 일본이 미국 국채를 살 ‘최후의 구매자’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 국채 순매수를 줄이고 있는 반면 일본은 늘리고 있다. 이 세 가지 이유로 두 나라는 통화전쟁에서 공조하고 있다.”
▷한국도 미국의 동맹국이다.
“미국은 분명히 한국을 도울 것이다. 하지만 통화전쟁에서 미국은 한국 편이 아니다. 미국은 원화 강세를 원한다. 앞서 말했듯이 인플레이션을 수입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한국 제품을 비싸게 사서 물가 상승을 유도하고 싶어한다.”
▷금융완화 정책이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나.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이 통화가치를 낮추면 경제에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독일은 50년 동안 높은 통화가치에도 불구하고 수출 강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수출 경쟁력은 통화가치를 낮춰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법인세를 낮추고, 교육과 기술 혁신에 투자하고, 좋은 노사관계를 유지해 기업 친화적 환경을 만드는 게 정답이다. 사실 일본도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금태환 중지를 선언한 뒤 3개월 동안 엔화가치가 17%나 올랐다. 하지만 이후 일본의 수출은 줄어들지 않았다. 생산성과 혁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엔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에는 일본이 경쟁력을 잃지 않았나.
“당시 일본의 문제는 수출 부진이 아니라 금융 거품이었다.”
▷현재 일본은 생산성 저하라는 구조적 문제를 겪고 있다.
“물론 심각한 문제다. 해결책은 엔저(低) 정책이 아니라 이민정책이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인들 중 일본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의 노동력을 적극 받아들이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통화전쟁의 최대 피해자로 한국이 지목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기술 혁신에 매진해야 한다. 최고의 제품을 가지고 있다면 환율은 문제되지 않는다. 한국은 효율성이 높고 전자 조선 등 강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한국이 만약 원화가치 절하 등 통화전쟁에 동참한다면 남는 것은 인플레이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줄이기 위해 토빈세(외환금융 거래세)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데.
“토빈세는 경제에 거품이 끼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플라자 합의 이후 외국 자본이 들어와 거품이 형성됐다. 통화 강세가 이어지면 자산에 거품이 낄 확률이 높다. 토빈세는 이를 막을 좋은 정책 도구 중 하나다.”
▷앞으로 통화전쟁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과거 100년간 우리는 두 번의 통화전쟁을 겪었다. 1921년부터 1936년까지 1차 통화전쟁, 1967년부터 1987년까지 2차 통화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2010년 Fed가 양적완화를 시작하면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3차 통화전쟁이 시작됐다. 3차 통화전쟁도 짧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최소한 2020년까지는 지속될 것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렇다. 시중에 통화량은 이미 충분하다. Fed가 원하는 대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려면 통화 유통 속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바꿔 돈을 쓰도록 해야 한다. 현재 Fed의 물가관리 목표치는 2%이지만 사실은 4%로 인플레이션율을 높여야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릴 수 있다. 놀란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을 우려해 당장 자동차와 집을 사도록 하는 것이 Fed의 목표다. 문제는 그 이후다. Fed는 2~4% 내에서 인플레이션을 관리할 수 있다고 믿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7%까지 치솟을 수 있다. 소비자 심리는 바꾸기 어렵지만 한 번 방향이 잡히면 관성이 생기게 마련이다. 1970년대와 같은 극심한 초인플레이션이 재연될 것이다. 그 시점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것으로 보는지.
“당장은 아니지만 그럴 것으로 본다. 달러 가치가 계속 하락하면서 또 한 차례의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위안화, 유로화 등 다른 국가의 통화가 달러를 대체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국가를 초월한 화폐가 필요해질 것이고,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이 대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SDR이 달러를 대체하는 게 가능한가.
“IMF가 SDR을 내놓은 것은 1981년이지만 2009년까지 30년 동안 한 번도 발행한 적이 없다. SDR은 긴급 유동성을 제공하기 위해 설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상황이 다급해지자 IMF는 3000억달러 규모의 SDR을 발행했다. 달러 시스템이 붕괴하면 수조달러의 SDR이 발행되고 달러를 대체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시점은 2021년께로 예상한다.”
▷국제통화 시스템이 금본위제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궁극적으로는 지폐, 즉 종이돈이 신뢰를 잃을 것으로 본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금이다. SDR과 금을 함께 쓰는 방식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통화전쟁이 과거와 다른 점은 뭔가.
“과거 두 번의 통화전쟁은 흥미롭게도 서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냈다. 1930년대 통화전쟁은 보호무역에 의한 무역전쟁으로 이어지면서 디플레이션으로 귀결됐다. 반대로 1970년대 통화전쟁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이번 통화전쟁은 인플레이션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디플레이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보호주의가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지.
“그렇다. 나라마다 중앙은행의 힘이 다르다. 중국 중앙은행은 Fed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지만 브라질은 다르다. 발권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 따라서 브라질 같은 국가들이 통화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을 하면 보호무역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 제임스 리카즈는
변호사 출신 투자은행가…35년간 월스트리트서 활동
미국 워싱턴DC 인근의 응용물리연구소(APL). 1942년부터 무기 개발 및 우주 연구의 한 축을 담당해온 이곳은 국방부를 위해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을 진행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18일 APL은 국방부와 함께 특별한 전쟁게임을 진행했다. 통화와 각종 금융상품을 무기로 한 세계 금융전쟁이다. 제임스 리카즈는 월스트리트 전문가로 이 모의전쟁에 참여해 러시아가 금에 기반한 새로운 국제통화를 만든 뒤 이 화폐를 지급하는 국가에만 천연가스 등 자원을 판매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 참여자들을 놀라게 했다. 타국의 공격에 의한 달러 시스템 붕괴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고하려는 의도였다.
리카즈는 35년간 월스트리트에서 변호사와 투자은행가로 활동한 금융 전문가다. 1998년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당시 LTCM 측 변호사로 뉴욕 연방은행의 구제금융 협상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 자신의 금융지식을 활용해 국방부 등 안보당국에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2011년 쓴 ‘커런시워(Currency Wars)’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됐으며 작년에는 한국에도 번역 출간됐다.
리카즈는 미국 존스홉킨스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국제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펜실베이니아대(JD)와 뉴욕대(LL.M) 로스쿨도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