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무심히 바라보는 나무, 돌, 물 등 자연적 소재는 그대로가 하나의 언어이며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나무와 들풀, 화초들이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모두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봐 줄 때 아름다움이 태어나거든요.”

20일부터 내달 17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멀티아티스트 김백선 씨(47). 건축가·인테리어 디자이너·아트디렉터·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사람과 사물 간에 공존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교감할 때 행복지수를 더욱 높일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로 다른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미학의 본질에 더 다가설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도 했다.

홍익대 동양학과 4학년 때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김씨는 동양의 선과 자연미를 건축 공간에 담아내기로 유명하다. 잠실에 들어서는 123층의 제2롯데월드 주거공간을 비롯해 하나은행 삼성점 PB센터,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가 이용백 씨의 김포 작업실, 청담동 T-라운드 등을 디자인하며 주목받았다. 현재 그는 오는 9월 전주에 개관하는 국립무형유산원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건축설계, 디자인, 아트디렉팅을 망라하는 다양한 장르의 시도를 결국 모두 하나라고 보고 회화, 영상, 설치 작업을 구상해요. 건축과 인테리어, 미술은 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영역을 나누는 것은 제겐 무의미한 일이죠.”

그는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문화의 다양성을 중시한다. 장르를 구분 짓고 서로에게 다른 가치기준을 부여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얘기다. “차 한 잔을 마시는 순간에도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게 된다”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매일 건축가가 지은 공간에서 디자이너가 제작한 식탁에 앉아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며 도예가가 빚은 찻잔에 농부가 수확한 차를 담아 마시죠. 차 한 잔을 마시는 순간에도 의식하든 못 하든 다양한 문화의 스펙트럼을 경험합니다.”

최근 건축과 인테리어, 미술의 경계에서 더욱 자유로워졌다는 김씨는 “공간의 가치를 자연을 모태로 하는 동양의 ‘사의성’(寫意性·사물의 외형보다 그 안에 내재한 정신을 중시하는 것)에 두고 근본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전통적인 문화공간을 현대인의 감성에 맞게 융합하는 작업에서 더욱 장르 파괴의 유용성을 확신한다.

전시장 설치된 화화·영상·사진·설치 작품들은 이를 방증하는 듯하다. 2010년에 제작한 건축 영상작품 ‘화풍-경복궁으로의 초대’는 경복궁 수라간 터에 현대인의 식문화 공간을 재현한 작품이다. 전통적 식문화 가치를 현대의 문화적 언어로 형상화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무형문화재 고수환 악기장, 조충익 선자장, 조석진 소목장, 유배근 한지발장과 함께 제작한 ‘묵향-천년전주명품-온’(2010)은 전주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의 특징을 살려 선조들의 문화와 현대적 가치를 아울렀다. 전통적 무형문화의 가치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의 삶과 소통하도록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설악산을 찍은 영상작품 ‘안개’는 자연의 에너지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자연은 물리적으로 그 흐름 속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안개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폐목재로 만든 설치작품 ‘집’, 흔들리는 대나무를 포착한 사진작품 등을 통해서도 문화를 장르의 편견 없이 동등한 시선으로 봐 줄 것을 촉구한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손길이고요. 그 손길은 예술적 장르 구분을 떠나 다양한 삶에서 태어난 에너지입니다.” (02)720-152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