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숙련기술 키워야 국민이 행복…'기술인=기름쟁이' 편견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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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명장회 신임회장 최창묵 시계수리 명장(名匠)
15세 때 입문해 시계수리 외길…한 가지 일에 미치니 삶 재밌어
숙련기술로 中企 경쟁력 키워야…명장 위상 높여 롤모델 만들 것
15세 때 입문해 시계수리 외길…한 가지 일에 미치니 삶 재밌어
숙련기술로 中企 경쟁력 키워야…명장 위상 높여 롤모델 만들 것
칼바람이 불던 1969년 겨울 전북 고창의 해리면사무소 소재지인 하련리. 고픈 배를 달래며 시계수리점 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다. 가게 안에서는 한 기술자가 넥타이를 매고 환한 전구 아래에서 시계를 고치는 중이었다. 중학교 수업료를 제대로 못 낼 정도로 가난했던 그 아이는 커서 멋진 기술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듬해 다니던 중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시계수리 기술을 배우기 시작, 43년 외길을 걸었다. 바로 최창묵 시계수리 명장(58)이다. 그는 지난달 정부가 인정한 명장(名匠) 547명이 가입한 ‘대한민국명장회’의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다. 첨단기술이 판치는 이 시대에도 숙련기술 육성이 국가 경제의 희망이라고 믿는 ‘올드보이’. 19년째 운영 중인 서울 삼성동의 명품시계 유통·수리매장 ‘탑타임’에서 그를 만났다.
▷왜 지금 시점에서 다시 숙련기술입니까.
“첨단산업만 키워서는 모든 국민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지만 80%의 국민은 ‘나 죽겠다’며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몸담고 있는 중소기업이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들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게 숙련기술입니다. 첨단산업은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접근하기 어렵지만 숙련기술은 중소기업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입니다. 기술인들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 열매를 다시 기술인들이 누리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체 국민의 복지가 좋아지고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새 정부의 산업육성 정책에 대한 평가는.
“새 정부의 공약과 국정과제에는 숙련기술 육성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반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와 사회가 기술인에 대해 최고의 대우를 해줬죠. 제 입장에서는 박 전 대통령 시절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가 어떻게 하는지 보면서 자랐으니 실제로 국정 운영을 하면서는 잘 챙겨주리라 생각합니다. 밑바닥 기술인들이 산업화 시기에 손에 기름 묻혀 가면서 일해 한국 경제를 이만큼 키우지 않았습니까. 경기 침체기를 딛고 도약하려면 그런 계기를 다시 한번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숙련기술인의 위치는 어떤가요.
“숙련기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합니다. ‘기름쟁이’라고 부르면서 천대시하는 분위기까지 있습니다. 때문에 취업난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청년들은 취업을 보장하는 기술을 꺼리고 대학 진학만 바라보는 모순된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모들도 자식이 기술을 배우기 바라지 않죠. 하지만 청년들이 모두 판·검사만 하려고 하면 사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사회가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산업현장에서 땀흘리는 기술인 아닙니까. 한국은 지금 반대로 뒤집혀 있습니다.”
▷‘기술입국’이 국정지표였던 시절도 있었죠.
“경제가 성장해도 기술인들에게 그만큼의 과실을 나눠주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을 기피하게 된 거죠. 산업화 시기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자부심도 있었지만 그보다 공장 생활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했습니다. 대우가 매우 열악했기 때문이죠. 하루에 8시간 일해야 하는 것을 18시간 일하면서도 돈은 8시간만큼만 받았습니다. 참다 못해서 불만을 표시하고 나서면 전부 ‘빨갱이’로 몰아버렸죠. 국가 경제가 발전하는 것에 비해서 숙련기술인에 대한 처우 개선은 상대적으로 느렸습니다.”
▷외국에서는 숙련기술인을 어떻게 대합니까.
“스위스 독일 일본 등 시계산업 선진국을 많이 다녀봤습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숙련기술인을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으로 보고 최고의 예우를 하더군요. 예를 들어 스위스에서 그 나라 숙련기술인과 대화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기술인에게 다가와 경의를 표하고 가는 걸 자주 볼 수 있죠. 국민의 시선에 존경심이 배어 있습니다. 경제적인 처우도 좋아 독일에서는 명장증서 하나만으로도 사업자금 2억원 정도는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롤모델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명장을 보고 국민들이 ‘기술을 배우면 저렇게 잘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기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첫째, 숙련기술인의 위상을 올리는 상징적 조치들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명장증서가 고용노동부 장관 명의로 나오는데 이것을 대통령 명의로 격상시켜야 합니다. 또 올해부터 명장에게 표창을 준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보다 한 단계 높은 훈장을 줘야 합니다. 둘째, 정부가 주는 계속종사장려금을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연금(월 52만5000~100만원) 수준으로 올려야 합니다. 지금은 명장이 된 다음해에 연간 167만원이 나오고 1년이 지날 때마다 10만원씩 올려주고 있어서(최고 357만원) 그 수준에 크게 못 미칩니다. 셋째, 명장의 활동 범위를 넓혀줘야 합니다. 명장은 60세도 젊기 때문에 기업체에서 일하는 경우 그 기업의 정년보다 더 오래 일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또 정부가 운영하는 기술학교의 이름을 ‘명장학교’로 바꾸고 명장을 강사진으로 초청해야 합니다.”
▷시계수리를 배우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고향인 전북 고창 해리면을 지나다 우연히 시계수리 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겨울이라 날도 춥고 배도 고팠는데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걸 보니 참 부럽더군요. 이듬해 서울에 무작정 올라와서 서울 평창동에 있는 한미시계학원에 들어갔습니다. 학원비가 없어 허드렛일을 하는 조건으로 공짜로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수업 도우미를 하다 보니 남들은 하루에 한 시간 듣는 수업을 여섯 시간씩 듣게 돼 기술을 빨리 배울 수 있었죠. 물론 강의시간에 배우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취침시간에 혼자 빠져 나와 밤새 연습했고요. 그 결과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 해에 서울 후암동 시계대학병원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미도파백화점, 유로통상(명품시계 유통업체) 등 시계 분야 톱클래스 직장으로만 옮겨 다녔습니다.”
▷43년 외길을 걸으며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뭔가요.
“시계수리는 아주 작은 부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정밀하게 다뤄야 하는 지난한 작업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할 때 집중력이 매우 강해야 합니다. 일을 많이 하던 시절에는 자리에 한 번 앉으면 5~6시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잡생각을 일절 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43년을 살다 보니 한 가지 일에 미치면 인생이 재미있고 성공도 보장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비록 어려운 일이 닥친다고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저도 탑타임(명품시계 수리·유통매장)을 차린 직후 외환위기가 닥쳐 힘들었지만 전문 분야가 있으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오더군요.”
▷명장회 회장으로서 활동 계획은.
“명장의 사회적 지위를 개선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명장 관련 정책 주관부처인 고용부도 최근 계속종사장려금을 인상하는 등 명장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고무적입니다. 정·관계와 긴밀하게 협조해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진전된 모습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국회를 찾아가 협조도 구하고 언론을 통해 대국민 홍보도 추진하겠습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 최창묵 명장회 회장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시계수리 분야 명장이다. 195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고 열다섯 살에 상경해 서울 남창동 한미시계학원에서 시계수리를 처음 배웠다. 기술을 배운 지 3년 만인 1973년 경인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이듬해에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시계 부문에서 금메달을 딸 만큼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았다. 1975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시계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당시 대회 개최지인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귀국, 카퍼레이드로 청와대에 가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난 일을 ‘최고의 추억’으로 꼽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시절이어서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도 봤다고 한다. 1984~1995년과 2001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장을 지냈다. 1992년 한국시계기술협회장 등을 지낸 뒤 2009년 명장이 됐다. 지난달 23일 대한민국명장회 정기총회에서 임기 2년의 제11대 회장으로 뽑혔다.
■ 명장이란
정부가 인정한 최고 기술자…22개 분야에 547명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정부가 인정한 해당 분야 최고 권위자를 말한다. 3월 현재 96개 직종에서 547명이 활약하고 있다. 명장을 두는 직종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로 정한다. 큰 묶음으로는 공예, 서비스, 섬유, 기계 등 22개 분야가 있다. 시계수리, 항공정비, 금형, 용접 등이 속한 기계 분야가 96명으로 가장 많다.
명장에 오르기 위해서는 △해당 직종 경력이 15년 이상 돼야 하고 △해당 직종에서 최고의 숙련기술을 보유해야 하며 △숙련기술의 발전이나 숙련기술자의 지위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신규 선정 심사를 하며 35명 내외를 뽑도록 돼 있으나 보통 20~25명이 선정된다. 관련 공무원, 해당 분야 종사자, 전문가 등 20여명이 위원으로 있는 대한민국명장심사위원회(한국산업인력공단 산하)가 선정 심사를 한다.
명장에게는 선정 연도에 일시장려금 2000만원을 지급하며 매년 계속종사장려금도 준다. 1년에 한 번 주는 계속종사장려금은 명장 선정 이듬해에 167만원이 나오고 한 해가 지날수록 10만원씩 올라간다. 고용부는 최초 지급하는 계속종사장려금을 2015년까지 215만원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왜 지금 시점에서 다시 숙련기술입니까.
“첨단산업만 키워서는 모든 국민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지만 80%의 국민은 ‘나 죽겠다’며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몸담고 있는 중소기업이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들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게 숙련기술입니다. 첨단산업은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접근하기 어렵지만 숙련기술은 중소기업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입니다. 기술인들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 열매를 다시 기술인들이 누리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체 국민의 복지가 좋아지고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새 정부의 산업육성 정책에 대한 평가는.
“새 정부의 공약과 국정과제에는 숙련기술 육성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반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와 사회가 기술인에 대해 최고의 대우를 해줬죠. 제 입장에서는 박 전 대통령 시절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가 어떻게 하는지 보면서 자랐으니 실제로 국정 운영을 하면서는 잘 챙겨주리라 생각합니다. 밑바닥 기술인들이 산업화 시기에 손에 기름 묻혀 가면서 일해 한국 경제를 이만큼 키우지 않았습니까. 경기 침체기를 딛고 도약하려면 그런 계기를 다시 한번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숙련기술인의 위치는 어떤가요.
“숙련기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합니다. ‘기름쟁이’라고 부르면서 천대시하는 분위기까지 있습니다. 때문에 취업난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청년들은 취업을 보장하는 기술을 꺼리고 대학 진학만 바라보는 모순된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모들도 자식이 기술을 배우기 바라지 않죠. 하지만 청년들이 모두 판·검사만 하려고 하면 사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사회가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산업현장에서 땀흘리는 기술인 아닙니까. 한국은 지금 반대로 뒤집혀 있습니다.”
▷‘기술입국’이 국정지표였던 시절도 있었죠.
“경제가 성장해도 기술인들에게 그만큼의 과실을 나눠주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을 기피하게 된 거죠. 산업화 시기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자부심도 있었지만 그보다 공장 생활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했습니다. 대우가 매우 열악했기 때문이죠. 하루에 8시간 일해야 하는 것을 18시간 일하면서도 돈은 8시간만큼만 받았습니다. 참다 못해서 불만을 표시하고 나서면 전부 ‘빨갱이’로 몰아버렸죠. 국가 경제가 발전하는 것에 비해서 숙련기술인에 대한 처우 개선은 상대적으로 느렸습니다.”
▷외국에서는 숙련기술인을 어떻게 대합니까.
“스위스 독일 일본 등 시계산업 선진국을 많이 다녀봤습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숙련기술인을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으로 보고 최고의 예우를 하더군요. 예를 들어 스위스에서 그 나라 숙련기술인과 대화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기술인에게 다가와 경의를 표하고 가는 걸 자주 볼 수 있죠. 국민의 시선에 존경심이 배어 있습니다. 경제적인 처우도 좋아 독일에서는 명장증서 하나만으로도 사업자금 2억원 정도는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롤모델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명장을 보고 국민들이 ‘기술을 배우면 저렇게 잘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기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첫째, 숙련기술인의 위상을 올리는 상징적 조치들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명장증서가 고용노동부 장관 명의로 나오는데 이것을 대통령 명의로 격상시켜야 합니다. 또 올해부터 명장에게 표창을 준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보다 한 단계 높은 훈장을 줘야 합니다. 둘째, 정부가 주는 계속종사장려금을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연금(월 52만5000~100만원) 수준으로 올려야 합니다. 지금은 명장이 된 다음해에 연간 167만원이 나오고 1년이 지날 때마다 10만원씩 올려주고 있어서(최고 357만원) 그 수준에 크게 못 미칩니다. 셋째, 명장의 활동 범위를 넓혀줘야 합니다. 명장은 60세도 젊기 때문에 기업체에서 일하는 경우 그 기업의 정년보다 더 오래 일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또 정부가 운영하는 기술학교의 이름을 ‘명장학교’로 바꾸고 명장을 강사진으로 초청해야 합니다.”
▷시계수리를 배우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고향인 전북 고창 해리면을 지나다 우연히 시계수리 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겨울이라 날도 춥고 배도 고팠는데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걸 보니 참 부럽더군요. 이듬해 서울에 무작정 올라와서 서울 평창동에 있는 한미시계학원에 들어갔습니다. 학원비가 없어 허드렛일을 하는 조건으로 공짜로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수업 도우미를 하다 보니 남들은 하루에 한 시간 듣는 수업을 여섯 시간씩 듣게 돼 기술을 빨리 배울 수 있었죠. 물론 강의시간에 배우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취침시간에 혼자 빠져 나와 밤새 연습했고요. 그 결과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 해에 서울 후암동 시계대학병원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미도파백화점, 유로통상(명품시계 유통업체) 등 시계 분야 톱클래스 직장으로만 옮겨 다녔습니다.”
▷43년 외길을 걸으며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뭔가요.
“시계수리는 아주 작은 부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정밀하게 다뤄야 하는 지난한 작업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할 때 집중력이 매우 강해야 합니다. 일을 많이 하던 시절에는 자리에 한 번 앉으면 5~6시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잡생각을 일절 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43년을 살다 보니 한 가지 일에 미치면 인생이 재미있고 성공도 보장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비록 어려운 일이 닥친다고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저도 탑타임(명품시계 수리·유통매장)을 차린 직후 외환위기가 닥쳐 힘들었지만 전문 분야가 있으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오더군요.”
▷명장회 회장으로서 활동 계획은.
“명장의 사회적 지위를 개선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명장 관련 정책 주관부처인 고용부도 최근 계속종사장려금을 인상하는 등 명장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고무적입니다. 정·관계와 긴밀하게 협조해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진전된 모습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국회를 찾아가 협조도 구하고 언론을 통해 대국민 홍보도 추진하겠습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 최창묵 명장회 회장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시계수리 분야 명장이다. 195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고 열다섯 살에 상경해 서울 남창동 한미시계학원에서 시계수리를 처음 배웠다. 기술을 배운 지 3년 만인 1973년 경인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이듬해에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시계 부문에서 금메달을 딸 만큼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았다. 1975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시계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당시 대회 개최지인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귀국, 카퍼레이드로 청와대에 가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난 일을 ‘최고의 추억’으로 꼽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시절이어서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도 봤다고 한다. 1984~1995년과 2001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장을 지냈다. 1992년 한국시계기술협회장 등을 지낸 뒤 2009년 명장이 됐다. 지난달 23일 대한민국명장회 정기총회에서 임기 2년의 제11대 회장으로 뽑혔다.
■ 명장이란
정부가 인정한 최고 기술자…22개 분야에 547명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정부가 인정한 해당 분야 최고 권위자를 말한다. 3월 현재 96개 직종에서 547명이 활약하고 있다. 명장을 두는 직종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로 정한다. 큰 묶음으로는 공예, 서비스, 섬유, 기계 등 22개 분야가 있다. 시계수리, 항공정비, 금형, 용접 등이 속한 기계 분야가 96명으로 가장 많다.
명장에 오르기 위해서는 △해당 직종 경력이 15년 이상 돼야 하고 △해당 직종에서 최고의 숙련기술을 보유해야 하며 △숙련기술의 발전이나 숙련기술자의 지위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신규 선정 심사를 하며 35명 내외를 뽑도록 돼 있으나 보통 20~25명이 선정된다. 관련 공무원, 해당 분야 종사자, 전문가 등 20여명이 위원으로 있는 대한민국명장심사위원회(한국산업인력공단 산하)가 선정 심사를 한다.
명장에게는 선정 연도에 일시장려금 2000만원을 지급하며 매년 계속종사장려금도 준다. 1년에 한 번 주는 계속종사장려금은 명장 선정 이듬해에 167만원이 나오고 한 해가 지날수록 10만원씩 올라간다. 고용부는 최초 지급하는 계속종사장려금을 2015년까지 215만원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