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이즈위안(崔之元) 중국 칭화대 교수(사진)는 지인들과 종종 연락이 끊긴다. 그가 주창하고 실행에 관여한 ‘충칭모델’을 설명해 달라는 요구가 있을 때마다 세계 각지를 방문해서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유럽에 걸친 그의 행로는 충칭모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보여준다.

지난 1일 이메일로 어렵게 연락이 닿은 추이 교수는 충칭모델을 국유자산 증대와 토지제도 및 후커우(戶口·호적) 제도 개혁으로 정의했다. 민간기업에 대한 공공 관리 강화도 특징이다. 그는 “개혁·개방 정책이 30여년간 시행되면서 빈부격차와 도시·농촌 간 격차가 커지고 각종 사회갈등이 나타났다”며 “기존의 수출주도형 경제로는 해결할 수 없어 공공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충칭모델”이라고 말했다.

추이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 사회주의적 아이디어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내 ‘신좌파’ 운동의 창립자이기도 하며 2010년 5월부터 2년간 칭화대를 휴직하고 충칭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 고문을 맡아 활동했다.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를 도와 충칭모델의 기틀을 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충칭모델은 공공의 역할이 늘어나면 민간의 역할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충칭의 공공자산 규모는 2002년 1700억위안에서 2011년 1조3860억위안까지 팽창했지만 민간기업에 대한 충칭시의 세율은 중국 평균(33%)의 절반 수준인 1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자산 증대로 세수가 늘면서 세금을 깎아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충칭의 자산 증가는 상당 부분 국유자산관리회사를 통한 부동산 개발을 통해 이뤄졌다. 전체 기업의 60%가 넘는 국유기업을 땅값이 싼 곳으로 이전시키고 해당 부지를 개발해 이익을 올린 것. 추이 교수는 “소수의 민간 사업자나 국유기업이 독점했을 개발 이익을 임대주택 건설 등 공공 복리를 위해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시라이 사태와 충칭모델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이 교수는 “2007년 국무원이 충칭을 ‘도시와 농촌 공동 발전 실험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충칭모델이 본격화됐다”며 “보시라이의 실각에도 충칭모델은 끝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경·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