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용달 보이지. 지금 안돼. 저쪽 자갈더미 돌 때까지 기다려.”

“목표 확인. 가짜석유 실린 것 같다. 총(주유기) 꽂으면 바로 친다.”

지난 6일 경기 화성시 전곡항 인근의 전곡 해양산업단지 공사 현장. 무전기가 쉴 새 없이 소리를 냈다. 2.5 홈로리(소형 탱크로리 차량) 한 대가 기자가 타고 있는 위장한 단속 차량 옆을 지나 낮은 비포장 언덕길을 힘겹게 치고 올라갔다. 주변을 경계하는 듯 후미의 브레이크등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때 반대편 2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또 다른 단속 차량에서 다급한 무전이 들어왔다.

“(미끼) 물었어. 카메라 챙기고. ……. 덮쳐.”

단속 차량 2대가 동시에 들이닥친 현장에는 25급 덤프트럭 2대가 주유를 위해 홈로리 옆에 정차해 있었다. 상황을 눈치챈 홈로리 운전자가 황급히 덤프트럭에 꽂힌 주유기를 뽑으려는 순간 석유관리원 단속원이 앞을 막아섰다. “사진에 다 찍혔습니다. 그냥 두고 뒤로 물러나시죠.”

이날 단속은 사흘 전 이동 주유차량이 공사 현장을 돌며 불법으로 덤프트럭에 기름을 공급하고 있다는 전화 제보로 이뤄졌다. 포클레인 등 일반 도로 주행이 어려운 건설 중장비 외에 덤프트럭, 버스 등이 이동주유 시설에서 기름을 넣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실제 하루 수백대의 덤프트럭이 드나드는 대형 공사 현장은 가짜석유 불법 유통 온상지로 꼽힌다. 늦은 밤이나 새벽을 틈타 게릴라식으로 치고 빠지는 불법 이동주유 차량을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

“제보를 받고 3일 만에 이렇게 현장을 잡은 것은 아주 운이 좋은 겁니다. 1주일 넘게 인근 야산에서 야간투시경을 보며 밤새 잠복하다 허탕치는 경우도 많아요.” 석유관리원 단속원이 능숙한 솜씨로 덤프트럭 연료통과 홈로리에서 채취한 기름을 분석용 용기에 담으며 이렇게 말했다.

새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의 첫 표적으로 가짜석유를 지목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전면적인 단속이 이뤄지고 있다. 가짜석유는 휘발유, 경유 등 일반 석유제품에 시너 같은 용제를 혼합해 만든다. 세금이 붙지 않는 용제를 섞어 판매하기 때문에 원료값 이외의 금액을 부당이익으로 챙길 수 있다. 가짜석유 유통은 탈세 규모만 연간 1조1000억원에 달할 뿐만 아니라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인 만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가짜석유는 제조 방법이 간단한 데다 일반 소비자가 가짜 여부를 쉽게 인지하지 못하고, 비포장 상태로 유통돼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쉽게 만들 수 있다. 최근 들어 제조·판매 기법이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

가짜석유 단속을 맡고 있는 석유관리원 단속원의 고충도 크다. 단속 현장에서 때때로 흉기로 위협당하거나 거친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단속 인원도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이다. 서울 전체와 경기 남부를 맡고 있는 석유관리원 수도권본부에서는 14명의 현장 단속 인원이 총 2300여개에 달하는 주유소를 관리하고 있다.

화성=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