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잡스형 인재 채용' 오죽했으면…
문사철(文史哲) 인문계 전공자를 뽑아 6개월간 소프트웨어 교육을 시킨 뒤 창의형 인재로 활용한다는 삼성의 구상과 인사실험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삼성은 “미래에는 인문학적 소양과 기술을 함께 갖춘 인재가 중요해진다”며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삼성이 많은 고민 끝에 이 제도를 도입한 진짜 배경은 뭘까.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14일 “발표 내용도 일부 맞지만 가장 큰 이유는 쓸 만한 소프트웨어 전공자가 없다는 점”이라며 “오죽하면 인문계를 뽑아 교육을 시켜 쓰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뽑은 사람들의 실력이 턱없이 모자랄 때가 많다”며 “이공계 기피 현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대학 졸업자는 29만3967명. 이 중 이공계는 10만5662명(36.9%)이며, 인문계 등 비(非) 이공계는 18만8305명에 이른다. 2만명이 넘는 대졸 사원을 뽑고, 이 중 80%를 이공계로 채우는 삼성으로선 인재풀이 작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는 문제가 심각하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하다는 ‘3D 업종’ 취급을 받으면서 관련 전공자가 줄어들어서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의 경우 1990년대 100명이 넘었던 정원이 올해 56명에 불과하다. 서울대는 2006년부터 전기공학부와 컴퓨터공학부를 전기·컴퓨터공학부로 통합해 뽑다가 2011년 신입생부터 다시 분리했다.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컴퓨터공학 전공을 기피해 2006~2011년 매년 정원을 채우지 못해서다.

이동하 서울대 공대 대외협력실 팀장은 “학생들은 소프트웨어는 공부할 게 많은 데다 취업하면 근무 조건이 열악하고 업무는 과중한데도 보상은 그만큼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 '잡스형 인재 채용' 오죽했으면…
이공계 졸업자의 전문성도 외국에 비해 떨어진다. 대학들이 졸업학점과 전공필수학점을 크게 줄여서다. 서울대는 1996년 졸업에 필요한 최소 이수학점을 140학점에서 130학점(공대 기준)으로 낮췄다. 전공필수는 43학점에 불과하다. 대학 2~4학년 3년 동안 전공과목 13개만 듣고, 나머지는 학점 따기 쉬운 과목을 골라 들으며 졸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경준 교과부 과기인재정책과 서기관은 “이공계 학생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며 “전공필수학점을 낮춘 건 융합 추세에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인도의 세계적인 공대 IIT에서는 졸업학점 180학점, 전공학점 120학점으로, 학생들이 국내 대학의 세 배에 가까운 전공을 듣고 졸업한다”며 “국내 이공계 졸업생들은 채용 뒤 몇 달간 교육시켜야 실무에 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현우/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