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사내 상임(등기)임원 7명 중 3명은 지난 10일로 이미 2년의 임기가 끝났다. 모두 경영지원, 기술 엔지니어링, 원전 수출을 포함한 해외부문을 맡고 있는 핵심 임원이다.

오는 29일 정기주총을 앞두고 있지만 이사 선임은 안건으로도 잡혀 있지 않다. 한전 관계자는 “정부가 인사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임원 인사 절차를 진행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가스공사의 경우 사외이사 7명 중 5명의 임기가 이달 30일 한꺼번에 끝나지만 연임이나 재선임 절차는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인사지침 없어”…인선 올스톱

인사 중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한전의 발전자회사인 서부발전의 김문덕 사장은 내달 1일 임기가 끝난다. 서부발전은 지난 1월 후임 사장을 뽑기 위해 임원추천위원회를 꾸렸지만 공모 절차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회사 관계자는 “새 정부의 방침에 따라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이유로 기획재정부에서 절차를 중단시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이채욱 사장이 사퇴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개월째 사장 대행체제다.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임기를 열 달가량 남기고 지난달 사표를 제출했다.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출근은 하고 있지만 사실상 업무에선 손을 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정동극장장도 이달 28일 임기가 끝난다.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복지정보개발원장도 임기가 끝났거나 만료를 코앞에 두고 있다.

기관장이 아니더라도 한전처럼 이미 임기가 끝났거나 이번 달 임기가 만료되는 감사, 사내·사외이사만 줄잡아 70명에 달한다.

인사제청권이나 임명권을 갖고 있는 각 부처도 손을 놓고 있다. 임기가 끝나더라도 현 기관장이나 임원들이 그대로 업무를 보면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인사 심의하는 ‘공운위’도 생략

공공기관들이 공모 절차에 착수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심의할 재정부의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가동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매달 한 번씩 여는 것이 원칙이지만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명이 미뤄지면서 회의를 주재할 재정부 2차관조차 임명되지 않은 상태다. 재정부 관계자는 “내주 중 차관 인사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현안 파악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회의를 열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이 같은 ‘병목현상’이 있어왔지만 이번 박근혜 정부에서는 특히 심하다는 지적도 있다. 내각 자체의 출범이 늦어진 탓도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부문 고위직 조건으로 ‘국정철학 공유’를 강조한 이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도대체 국정철학이 뭘 의미하는 것이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정철학과 같은 추상적인 조건보다는 잔여임기 보장 여부, 일괄 또는 선별처리 여부 등 구체적이고 분명한 지침이 필요하다”며 “청와대가 세부 인사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면 각 부처가 서로 눈치보기를 하면서 인사가 더욱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장 인사를 놓고 홍역을 치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법률을 바꿔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는 임기를 두고, 그렇지 않은 자리는 비임기제로 나눠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심기/이정호/김유미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