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이나 먹으며 오페라를 보라는 거냐, 천박하다.”

2006년 12월. ‘미국 오페라의 1번지’로 불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메트)이 세계 영화관을 통해 오페라를 중계하겠다고 선언하자 보수적인 평단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고급 귀족문화를 대표하는 오페라를, 그것도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트가 ‘영화관 상영’에 앞장서다니. 이들은 “1만~2만원 내고 고화질 오페라를 볼 수 있다면 누구도 더 이상 10만~20만원을 내고 극장에서 오페라를 볼 리 없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2008년 메트를 찾은 신규 관객 수는 1년 전보다 8%가량 늘었다. 기존 극장 매출도 줄어들지 않았다. 반면 오페라 중계인 ‘라이브 뷰잉(Live Viewing)’은 같은 해 흑자로 전환했다. 지금은 메트 전체 매출의 절반인 5000만달러를 넘어 ‘효자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63개국 1900여개관에서 34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누적 관객 1000만명을 기록했다.

메트의 성공은 유럽 명문 오페라 극장들이 경제 위기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이룬 것이어서 더 의미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각국 정부는 문화 관련 예산부터 깎았다. 2011년 이후 이탈리아 명문 라 스칼라 극장은 정부 보조금 삭감으로 900만달러(약 101억원)가 넘는 적자에 시달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명문 리세우극장도 370만유로(약 55억원)의 적자로 작년부터 임시 휴관에 들어갔다.

메트는 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전통적인 관행을 벗어던졌다. 관객이 잘 차려입고 극장에 오길 기다리지 않고, 먼저 관객을 찾아갔다. 호화로운 예술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티켓을 75% 할인된 가격에 팔았다. 영화 중계 외에도 야외 무료상영, 좌석 가격 인하 등 파격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극장으로 간 1000억원짜리 오페라

1883년 브로드웨이 39번가에 문을 연 메트는 1996년 링컨센터로 자리를 옮겨 매 시즌 200편 이상, 한 해 평균 8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오페라극장이 됐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3800석의 객석이 항상 90% 이상 채워지는 황금기를 보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상황은 변했다. 관객 수는 지속적으로 하강 곡선을 그렸고, 2006년 티켓 판매율은 70%를 밑돌았다.

2006년 부임한 피터 겔브 단장에게 남겨진 건 불황의 그늘뿐이었다. 당시 메트를 찾은 관객은 평균 연령이 62세, 가구당 수입은 연 2만달러 이상, 대졸자가 90% 이상인 고학력 고소득의 노년층이었다.

겔브 단장은 맥주를 마시며 바에서 축구나 야구중계를 보던 사람이 결국 경기장까지 간다는 점에 착안, 오페라 영화관 중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취임 첫해인 2006년 12월30일 6개의 작품을 위성으로 극장에 중계했다. 그는 “3800석밖에 안 되는 극장에서는 더 많은 매출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오페라라는 예술을 대중과 만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트의 혁신이 가능했던 건 겔브 단장이 ‘외부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메트의 안내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을 뿐 오페라와 큰 인연이 없었다. 그래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 부단장, 연주자의 매니저, 영화와 비디오 제작자를 거쳐 록과 힙합 등 크로스오버 음반 전문가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등 언론은 “오페라 광(狂)들은 겔브가 타이타닉 영화 음악가 제임스 호너에게 오페라를 제작하게 하고, 영화배우 겸 가수인 샬롯 처치를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주연으로 발탁할 것이라며 비아냥거렸다”고 보도했다.

메트는 이런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강력한 파트너가 필요했다. 메트의 상임 지휘자이자 음악감독인 제임스 레바인에게 평생 고용이라는 달콤한 사탕을 선물했다. 레바인은 1971년 수석지휘자로 시작해 메트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은 인물로, 지금까지 메트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성역 없앤 인재 영입…뮤지컬·영화에 ‘러브콜’

메트는 인재를 등용할 때의 ‘성역’을 없앴다. 뮤지컬, 영화, 발레 등 오페라가 아닌 다른 예술 분야에서 인물을 데려와 콘텐츠 혁신을 꾀했다.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만든 영국 감독 앤서니 밍겔라에게 오페라 ‘나비부인’을, 뮤지컬 ‘라이온 킹’의 연출가 줄리 테이머에겐 ‘마술피리’ 연출을 맡기는 등 기존 오페라 형식을 깬 파격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중국 출신 장이머우 감독은 오페라 ‘진시황제’를 연출했다. 조지 발란신 이후 최고 안무가로 평가받는 마크 모리스는 ‘오르페와 유리디스’ 제작과 안무를 맡았고, 영화배우 피터 셀러스는 작곡가 존 애덤스의 신작 오페라 ‘원자핵 박사’에 출연했다. 아르헨티나 영화음악가 오스발도 골리조프는 오페라 작곡가로 데뷔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와 ‘한여름밤의 꿈’에 헨델, 비발디, 라모 등 바로크 음악을 혼합해 메트가 자체 제작한 초연작 ‘마법의 섬’은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젊은 층을 오페라로 끌어들이기 위해 파격적인 할인도 감행했다. 평일 저녁 100~340달러였던 오케스트라석 일부를 20~25달러에 파는 ‘러시 티켓’으로 바꿨다. 26달러짜리 가족석의 가격은 15달러로 내렸다. 반면 가장 좋은 중앙 좌석은 320달러에서 375달러로 인상했다. 매 시즌 개막 공연의 라이브 영상은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무료 상영했다. 뉴욕 공립공고에서도 같은 작품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2005년 77%였던 공연장 좌석 판매율은 2009년 88%까지 올랐다. 영화관을 찾은 관객 중 60%는 기존 관객, 40%는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관객인 것으로 집계됐다. 신규 관객 모집에 성공한 셈이다. 또 2008년부터 2012년 7월까지 메트에 전달된 기부금은 조사 전보다 26% 증가해 1503만달러에 달했다.

○한국 관객 열광…유럽 명문 극장도 탐내

한국 관객들도 열광하고 있다. 2009년 1만1554명의 관람객이 봤지만 2010~2011시즌에 2만262명이, 2011~2012시즌에 2만4888명이 관람했다. 메트 HD(고화질) 시리즈가 성공을 거두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 시어터와 로열 오페라 하우스 등이 메트를 따라갔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영화 ‘아바타’의 제작에 참여한 3D(3차원) 기술 보유업체 리얼디(RealD)와 함께 ‘카르멘’과 ‘나비부인’을 3D 영화로 공동 제작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008년 ‘디지털 콘서트홀’로 불리는 세계 최초의 오케스트라 공연 실황 중계 서비스를 시작했다. 150유로의 연회비를 내면 인터넷을 통해 세계 어디서나 HD 화면으로 베를린 필의 공연들을 즐길 수 있는 게 핵심이다.

메트는 경쟁자들이 쫓아오자 또 한번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스마트 기기로 감상하는 ‘메트 오페라 온 디멘드’를 개발, 출시를 앞두고 있다. 더 어린 관객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어린이들에게 혁신적인 초기 악보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