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시장과 고객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신사업과 새 가치, 새 패러다임을 세상에 내놓았다. 애플 제품들이 최고 기술의 산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고객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 애플의 주가는 2003년 4월 12.74달러에서 2012년 3월에는 621.45달러까지 치솟으며 시가총액 1위를 기록했다.

많은 기업이 애플의 성장을 본받고 싶어한다. 애플 같은 성장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 번째 요소는 시장과 고객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정의하는 관점의 변화다. 두 번째 요소는 자신이 이뤄왔던 것에 대한 반성 또는 수행해온 활동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요소는 고객 중심의 마케팅 활동에 기반을 둬야 시장과 괴리가 생기지 않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성장을 위해 필요한 접근법은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기업이든, 기업 간 거래(B2B) 기업이든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이다.

#IBM과 3M의 서비스 혁신과 변신 성공

브랜드 가치 세계 3위. 최근 1000억달러 이상의 연매출과 100억달러 이상의 순익을 계속 기록하고 있는 IBM은 전통적으로 메인 프레임을 위주로 한 하드웨어 업체였다. 1990년대부터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의 B2B 영역으로 사업 분야를 넓혀온 결과 2012년에는 컨설팅, 정보기술(IT) 서비스, 아웃소싱 서비스, 소프트웨어 사업 등 서비스 부문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85%를 차지하게 됐다.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도 IBM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고부가가치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하고 서비스 혁신에 성공한 덕분이다. IBM의 성공은 B2B 비즈니스의 확장성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1990년대 중반 컴퓨터 하드웨어 시장은 기술 격차 부재와 품질 표준화로 기업마다 수익성이 악화됐다. IBM은 기업과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울러 소프트웨어를 제공함으로써 B2B 영역을 창출해나갔다. IT의 표준화와 범용화에 따라 가격경쟁력이 높은 인도 등의 추격이 거세지자 2003년 IT업계로선 최초로 온디맨드(on-demand) 비즈니스 모델을 제안, 범용화되던 IT서비스사업을 고부가가치사업으로 재포지셔닝했다. IBM은 현대 스마트 플래닛(smart planet) 콘셉트를 도시와 지구의 환경 비즈니스로 확대, 전형적인 B2B 비즈니스를 확대하고 있다.

3M은 또 다른 B2B 성공 사례다. 이 회사는 2011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삼성전자 영업이익률(9.8%)의 두 배 이상을 기록한 글로벌 기업이다. 3M은 세계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꼽힌다.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이전 약 25%까지 상승하던 3M의 영업이익률은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20% 수준으로 낮아졌다. 2010년 다시 22.2%로 상승하며 전반적으로 20%를 웃도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3M은 소비자 및 오피스 사업부, 디스플레이 및 그래픽 사업부, 전기 및 통신 사업부, 의료제품 사업부, 산업 및 교통 비즈니스 사업부, 안전·보안·보호 서비스 사업부로 구분돼 있다. 3M의 사업부별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모든 고객이 B2C 고객은 아니지만 포스트잇 스카치 등 소비자에게 친숙한 브랜드가 있는 소비자 및 오피스 사업부의 매출은 전체 매출의 14% 수준이다.

주요 제품은 평판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광학필름과 반사 소재, 의료 및 치과 재료와 시스템, 연마재, 특수재료, 자동차용 재료, 태양광용 필름 등으로 다른 산업에 핵심적인 소재를 판매하고 있는 B2B 기업이다. 고객 분석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발굴해낸 결과 B2B 기업인 3M이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이 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B2B 영역의 가치 창출, B2C 변화 일으킨다

B2C 시장과 B2B 시장의 규모를 정확하게 추산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B2C 시장 규모는 B2B 시장에서 창출된 가치를 결합한 것에 다소간의 부가가치를 더한 것이다. 실물적인 관점에서 매출과 생산의 상당한 양은 B2B에서 발생한다. B2C 분야의 새로운 요구는 B2B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B2B 영역에서 새롭게 창출된 가치가 B2C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코닝사의 휘어지는 유리 개발이 구글로 하여금 구글안경을, 애플로 하여금 손목시계형 스마트워치를 개발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있는 게 그 예다.

B2B 시장에서 기술적 진보만으로 고객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B2B 고객은 기술을 중시하지만 기술 수준이 비슷하다면 가격을 중시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조사 결과를 보면 고객과 공급자 사이의 시각 차를 알 수 있다. 공급자는 품질, 기술, 가격의 중요성이 95%를 차지하지만 구매자에게는 47%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구매자는 공급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다양한 니즈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구매 담당자는 사전협의, 사후서비스, 호환성, 교육 지원 등 다양한 요소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만 이들을 설득해야 할 공급자는 구매자의 다양한 욕구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는 공급 기업이 어떤 전략을 수립하는가에 따라 고객 기업은 그 기업이 제공하는 가치를 다르게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B2B 기업의 기술 수준이 떨어지면 해당 기업은 생존이 어려운 것일까. 대답은 ‘아니오’다. 국내 조선업은 1990년대까지 일본의 앞선 기술력과 자본력을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일본 조선업계가 포화상태여서 성장 전망이 밝지 않았고, 전기나 자동차보다 인기가 없어 우수 기술인력의 유입도 저조했다. 일본은 설계 인력의 부족으로 표준화된 선박 건조에 집중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에 반해 국내 조선업체들은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흡수하면서 세계 조선산업의 리더로 떠오르게 됐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 종사자 수 기준으로는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들 중소기업의 대부분은 B2B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세계 최고 기술 수준을 100으로 할 때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 수준은 75에 불과하다. 선진 기술을 따라잡는 일이 시급하다. 하지만 기술 전략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하다. 국내 조선기업들처럼 전략적 마케팅 활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게 우선이다.

전동균 <SP마케팅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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