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원조를 받다가 지원할 수 있게 된 유일한 국가다. 한국의 경제기적은 1964년 장기영 부총리 시절 수출지향 전략을 본격 추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때까지 시행해온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은 한계를 드러냈다.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이란 상품을 수입할 외화가 부족하니까 소비재를 스스로 생산해 ‘자급자족 경제’를 이루자는 정책이다. 1950년대까지 남미와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이 전략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중화학공업을 키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장 부총리는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경제내각 임명권’을 부여받아 수출주도 전략을 담당할 상공부 장관에 박충훈, 차관에 훗날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을 천거했다. 김정렴 전 비서실장은 수출주도 전략으로 바꿀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집권 초기 통화개혁 등 경제정책 실패로 인해 경제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인식했고 무엇보다 일본의 경제발전 과정을 잘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일본은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으로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이뤘고 특히 중화학공업의 약진으로 고도성장을 누렸다.

수출정책의 주요 실행자 중 한 명인 홍성좌 전 상공부 차관은 이렇게 회고한다. “1970년대 초반까지 우리는 일본의 대리수출 국가였다. 가령 드레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단과 단추, 봉제기기 등 20여가지 원·부자재를 일본에서 수입해 기능공 아가씨들의 손만 빌려서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했다. 수출이 늘면서 원자재의 국산화가 확대되고 외화가득률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1960~1970년대 대부분의 수출품목은 원목을 수입해 합판을 만들어 수출하는 등 수입 원자재를 가공 수출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정부는 경공업제품만으로 더 이상 수출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1973년 들어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본격 추진했다.

홍 전 차관은 공업화 전략이 성공한 가장 큰 요인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과 박충훈 장관, 김정렴 비서실장 등 당시 관리들의 헌신적 노력”이라고 술회했다.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험공유사업 일환으로 기획된 《코리안 미러클》은 언론인 출신 저자들이 경제신화를 만들어낸 주역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한국경제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정책 결정자들의 육성을 통해 한국이 최단기간 내에 경제 선진국으로 성장한 핵심 요인, 구체적인 정책 입안 배경과 집행 과정,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정치적 논쟁 등을 기록했다. 최각규·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조경식 전 농림수산부 장관, 양윤세 전 동력자원부 장관,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 황병태 전 경제기획원 차관보, 김호식 전 해양수산부 장관, 전응진 전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과장 등이 증언에 참여했다.


그들은 1960년대 한국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두 명의 경제 부총리 장기영과 김학렬의 개성 있는 리더십을 재미있게 비교한다. 두 사람은 성장배경이나 업무 스타일 등 여러 면에서 정반대였다. 한국일보 창업주인 장 부총리는 직관과 감을 믿고 이거다 싶은 사업이 있으면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전광석화처럼 추진했다. 반면 고시 출신 관료인 김 부총리는 사업을 시작할 때 관련 서적을 모조리 탐독하고 검증절차를 가진 뒤 시작했다.

장 부총리는 ‘부채도 자산’이라며 외자를 도입해서라도 한국경제를 팽창시키려고 했지만 원칙주의자였던 김 부총리는 “이자는 일요일에도 쉬는 법이 없다”며 부채를 두려워했다. 결과적으로 두 부총리의 정반합(正反合) 리더십은 한국경제를 발전시키는 초석이 됐다.

당시 고리사채로 얼룩진 불건전한 자본시장을 개혁하기 위한 금리 현실화 조치에 얽힌 비화도 흥미롭다. 은행이 만성적으로 저금리 정책을 펴다 보니 돈이 은행으로 들어오지 않고 사채시장으로 돌았다.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은 고리사채를 쓸 수밖에 없었다. 장 부총리는 외자를 끌어들이려면 일정 수준의 내자를 확보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은행에 내자를 확보하기 위해 1965년 9월30일 자정을 기해 금리현실화 조치를 단행했다. 예금금리 연 30%, 대출금리 24%란 초유의 역금리 체제였다. 역금리는 내자 확보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장 부총리가 낸 아이디어였다. 금리 현실화는 기대 이상의 실적을 가져왔다. 저축성 예금은 그해 115%, 이듬해 126%나 증가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