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러브, 러브…', 부부·세대간 엇갈린 삶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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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다 보고 나면 연극이 관객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러브, 러브, 러브’(사진)를 번역·연출한 이상우 씨가 제작발표회에서 한 말이다.
극은 오랜만에 재회한 60대 커플 케네스(이선균 분)와 산드라(전혜진 분)가 비틀스의 히트곡 ‘당신에게 필요한 건 사랑뿐(All you need is love)’에 맞춰 다정하게 춤을 추면서 끝난다. 노부부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춤출 때 자폐 증상이 심한 아들은 집 밖을 떠돌고, 부모에게 “집 사달라”고 했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한 딸은 “누가 기차역까지만 태워줘”라고 신경질적으로 외친다.
연출자가 반어법으로 얘기한 것일까. 따뜻한 사랑의 느낌보다는 씁쓸한 여운이 길게 남는다.
극은 영국 전후 베이비붐 세대(1940년대 중후반 출생)를 대변하는 케네스·산드라 커플의 삶을 따라간다. 1967년. 19세 동갑내기 옥스퍼드대 학생인 두 남녀는 자유분방하고 변화를 갈망하는 서로의 모습에 끌려 사랑에 빠진다. 1990년. 42세의 맞벌이 부부는 직장일로 바빠 자식들을 잘 돌보지 못한다. 권태에 빠진 부부는 자식들 앞에서 맞바람을 피운 사실을 고백하고 자유롭게 살자며 이혼을 선언한다.
2011년. 은퇴 후 연금을 받으며 여유롭게 사는 두 사람은 딸의 호출을 받고 오랜만에 만난다. 37세에 집도 없고 남자도 없이 빚만 진 딸은 부모에게 악을 쓴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엄마 아빠 탓이야. 엄마 아빠 말만 들었더니 이렇게 됐어.” 부모는 냉정하다. “니 인생은 니가 사는 거야. 엄마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 말 안 들었어. 도대체 왜, 우리 말을 들은 거야?”
원작자인 1980년생 영국 작가 마이크 바틀렛은 부모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의 삶을 냉소적이면서도 관조적으로 그린다. 연극은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와 구어체적인 대사로 영국 사회와 현대사를 반영한 세대·부부간 충돌까지 잔뜩 풀어놓고는 수습하지 않는다. ‘러브’가 반복되는 제목도 반어적으로 읽힌다.
보는 이에 따라 공감대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연극이다. 국내 상황과 각자의 삶에 대비시켜볼 때 크게 와 닿을 수도 있고, 낯선 문화와 삶의 모습에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극 중에서 인물의 캐릭터와 내면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이는 담배도 그렇다. 케네스와 산드라, 그들의 아들 제이미는 어지간히도 피워댄다. 담배 연기는 객석으로 고스란히 흘러든다.
사실성을 중시하는 연극적 재미에 빠진 관객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담배 연기를 혐오하는 일부 관객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함께 피우지 못하는 애연가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공연장이 소극장이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다. 오는 21일까지, 2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