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인터뷰] 배순훈 "기술자는 미래 그리는 디자이너…누굴 위해 만드는지부터 고민해야"
“무작정 혁신적 제품을 만들라고 다그치기보다 밑그림을 제대로 그리는 게 중요합니다.”

1990년대 대우전자 사장 시절 ‘탱크주의’ 광고에 직접 출연해 유명세를 탔던 배순훈 S&T중공업 회장(70·사진)은 지난 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창조경제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배 회장은 “전자와 기계, 예술과 산업의 융·복합화를 통해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평규 S&T그룹 회장은 최근 배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상용차 부품과 무기류를 생산하는 S&T중공업의 회장으로 영입했다. 배 회장은 작년 말 평소 알고 지내던 최 회장의 초청으로 S&T중공업 공장과 옛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을 둘러본 뒤 산업 현장에서 아직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확신이 들어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의지를 최 회장에게 밝혔다고 전했다. 최 회장은 ‘탱크’의 ‘지도’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S&T중공업 회장 직함을 줬다.

그는 “‘왜 만드는지’를 철저히 고민하는 게 기술의 출발”이라며 “전차를 제작할 때는 군인들에게 소음 없고, 발열이 적으며 화력이 좋은 최고 품질의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 줄지 치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회장은 기업들이 ‘탱크주의’ 정신으로 다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2년부터 내세운 탱크주의의 목표는 2000년 이후까지 사용할 수 있는 튼튼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며 “전사적 품질관리(TQC)를 도입해 고장나지 않고 값싼 제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배 회장은 “이제는 싼값만으로 안 되고 일본과 독일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탱크주의가 옛것이냐’는 반문에는 “품질에 대한 철학과 정신만은 지켜가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삼성과 LG가 각각 하이테크, 테크노피아를 외칠 때 대우는 미련할 정도로 투박하지만 고장나지 않는 제품을 만든다는 이미지를 심어줘 히트쳤다”며 “시대가 변한 만큼 창의성이 톡톡 튀는 제품을 튼튼하게 만들면 경쟁력 있는 중공업 회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뚝심 있는 경영자로 통하기도 하는 배 회장은 “기술자는 디자이너로서 미래를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며 김대중정부 시절 일화를 소개했다. 1999년 정보통신부 초대 장관 시절 그는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ADSL) 전국 도입을 주도했다. 그의 생각엔 인터넷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주고받으려면 전화선 인터넷의 두 배 속도에 불과했던 종합통신망(ISDN)보다 케이블 전국망을 도입하는 게 나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 전북 정읍에 사는 최씨 할머니가 유기농 쌀을 직접 납품하고 목포에 사는 고3 학생이 강남 과외를 받으려면 빠른 인터넷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득했죠. 전자상거래(e커머스)와 인터넷 교육(e러닝)을 염두한 것이었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해선 “늘 나보다 한수 위에 있는 분”이라며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또 “김 회장이 본인의 희수(77세)연에서 은퇴한 대우 임원들에게 ‘언제는 우리가 일을 누가 줘서 했나? 봉사든 사업이든 찾아서 해봐’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배 회장은 “우선 정부 자금으로 개발 중인 12단 상용차용 변속기 프로젝트를 맡을 것”이라며 “중견기업인 S&T중공업이 세계적인 회사로 발전할 수 있도록 5년간은 열심히 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향후 나와 함께 일했던 1970~198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베이비붐 세대에게 미래를 보여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도 밝혔다.

배순훈 회장은 누구…90년대 '탱크주의'로 대우전자 성공 주도…국민차 '티코' 개발


배순훈 S&T중공업 회장은 탱크주의 슬로건을 통해 ‘대우가전=튼튼함’이라는 공식을 만든 주인공이다.

경기고,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MIT에선 수학과 공학에 두각을 나타냈다. 머리가
지끈거릴 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습관은 이때 생겼다. 이후 KAIST 부교수를 거쳐 1976년 대우중공업 기술본부장으로
영입됐다. 1989년에는 대우조선 자동차부문 사장으로 국민 경차 ‘티코’를 개발했다.

1991년엔 다시 대우전자로 돌아와 사장, 회장을 지냈다.

김대중정부 시절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을 맡아 초고속 인터넷 전국망 도입을 주도하고 우체국 택배사업을 시작했다.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2009년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