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1909~2005)는 ‘경영은 20세기의 혁신’이라고 했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이전까지 없었던 대규모 고용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혁신이라는 의미다.

“혁신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시장의 고객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까지 고객이 공급받지 못하던 것을 공급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MP) 봄학기 네 번째 시간. 김준석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혁신’이라는 키워드로 강의를 시작했다.

당장 회사를 바꾸려면…협업하고 팀에 자율권 부여하라

◆세계 모든 점포에서 똑같은 메뉴를 제공하는 것은 경영의 힘

S&P(스탠다드&푸어스)500 지수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3000여개 종목 가운데 우량한 종목 500개로 구성되는 지수다. 이 지수의 첫 시작은 1920년대 90개 기업 주가로 만든 S&P90이었다. S&P90에 포함된 90개 기업이 이 지수에서 빠지지 않고 지속된 기간은 평균 65년이었다. 1900년대 초반에는 한 번 우량한 기업이 되면 65년 정도 유지가 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1998년을 기준으로 실시된 분석에 따르면 S&P500지수에 포함된 기업의 평균 존속 기간이 10년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우량 기업의 위치를 지키기가 그만큼 힘들어진 것입니다. 고객이 원하는 혁신을 하는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사라지는 것이죠.”

김 교수는 혁신에 성공한 기업의 예로 화투를 만들다가 게임회사로 변신한 일본의 닌텐도를 들었다. “닌텐도는 인텔이 만든 중앙처리장치(CPU) 8088프로세서를 장착한 게임기 ‘패미컴’을 1983년에 출시해 세계 게임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PC 시장에선 80286프로세서가 주력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습니다. 닌텐도는 8088프로세서가 PC 시장에선 쓰이지 않지만, 게임기에는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헐값에 사서 싼 게임기를 공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드러커는 혁신적인 기업의 예로 맥도널드를 들었다. 194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흔한 햄버거 가게 중 하나로 시작한 맥도널드는 현재 119개국에 진출해 하루 평균 6800만명이 들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작년 매출 276억달러, 영업이익은 40억달러에 이른다.

“맥도널드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세계 어느 매장에 가더라도 똑같은 품질의 햄버거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경영의 힘이고, 곧 혁신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혁신을 연구소에서 하는 연구·개발(R&D)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맥도널드 사례를 보면 혁신은 그렇게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대 6000의 법칙을 기억하라”


김 교수는 인터넷의 발달이 경영 환경을 계속 변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품과 서비스의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제공되고 교류된다. 시장은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받고 불만이 생긴 소비자는 주변 사람 평균 6명에게 불만을 표시한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그 숫자가 6000명으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고객의 힘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산업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대량 생산체제를 이어서 대량 주문 생산이라는 방식이 등장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고객별 차별화가 필요하죠. 예컨대 자동차 보험은 연령별, 직업별, 과거 사고 경력 등으로 차별화해서 산정하고 있죠. 만약 자동차에 센서를 달아서 운전습관까지 모니터링을 한다면 보험료를 더 세분화해서 책정할 수 있을 겁니다. 서비스나 금융에 한정된 얘기일까요? 제품을 파는 산업도 애프터서비스(AS)를 통해 차별화할 수 있습니다. 전자제품을 살 때 설명서만 있으면 되는 고객이 있는가 하면, 설치부터 사용법 설명까지 다 해줘야 하는 고객도 있으니까요.”

당장 회사를 바꾸려면…협업하고 팀에 자율권 부여하라

◆‘협업은 21세기 경영의 혁신’

돈 텝스콧 캐나다 토론토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의 책 <위키노믹스>에서 ‘협업은 21세기 경영의 혁신’이라고 주장했다. 한 기업이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다는 얘기다. 협업 경영의 대표적인 예는 항공기 제조회사인 보잉이 꼽힌다.

보잉은 787 모델을 만들 때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여객기 한 대에 수만장 씩 만들던 설계도를 아예 만들지 않고, 20장 안팎의 제조 매뉴얼만 제작했다. 매뉴얼에는 ‘항속 거리 몇㎞ 이상’ ‘좌석 간 통로 몇㎝ 이상’ ‘실내 온도는 몇℃ 수준으로 유지할 것’ 등 787기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컨셉트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세부 디자인을 주요 모듈을 만드는 협력 업체들에 맡겼다. 그 결과 787은 직전 모델인 777에 비해 개발 비용이 절반으로 줄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보잉은 이제 자체 R&D로는 더 이상 차세대 항공기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것입니다. 또 협력 업체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는 길이 모듈 방식이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죠. 이처럼 외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21세기의 새로운 생산 모델입니다.”

대규모 협업으로 새로운 가치가 생성되는 예는 이미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대표적인 예는 사용자들이 만드는 열린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다. 사진 공유 사이트 플릭커, 특허권 장터인 이노센티브 등도 대표적인 협업 사이트다.

“대규모 협업은 이미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존 제조업 회사가 협업을 통해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혁신을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팀에 자율과 책임을 부여하라”

김 교수는 경영 혁신의 사례로 먼저 미국의 식품유통회사인 홀푸드를 꼽았다. 1980년 설립된 이 회사는 2010년 기준 직원 5만8300명, 매출 90억달러 규모다. 이 회사의 핵심적인 혁신은 ‘공동체 구현’이다.

“홀푸드는 모든 의사 결정과 업무 집행이 팀 단위로 이뤄집니다. 팀 내에는 상사나 부하가 따로 없습니다. 채용도 팀원을 뽑는 거니까 팀 합의로 이뤄지죠. 팀에 자율성이 주어지는 대신 성과 평가도 철저하게 합니다. 4주마다 개인과 팀의 성적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동료 평가, 팀별 실적 평가 등을 철저하게 진행합니다. 이 회사는 팀마다 자율성을 줘서 자진해서 일하거나, 아니면 회사를 떠나도록 하는 체제를 갖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

고어텍스라는 섬유로 잘 알려진 소재 개발기업 고어도 지속적인 혁신을 위해 팀 단위 운영을 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고어는 전체 직원이 9000명가량이지만, 이 직원들은 고어라는 모회사의 자회사들에 150명 단위로 쪼개져 배치돼 있다. 150명이 넘어가면 관료주의가 생겨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회사 직원 한 명이 신제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합시다. 사내 게시판에 아이디어를 올리면 다른 직원들이 지원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팀이 구성되죠. 팀 내에 상사와 부하가 없는 것은 물론, 회사 전체적으로 조직도라는 것도 없습니다. R&D로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운영 시스템으로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직원 모두를 경영 혁신에 참여시켜라”


구글은 미국 검색 시장 65%를 차지하는 인터넷 회사다. 하지만 작년 매출 502억달러의 상당 부분을 광고로 달성했다. 그런데 구글 광고는 대부분 소규모 사업자들이 활용한다. 오프라인 광고 시장에 돈이 없어 진입하지 못했던 작은 회사들에 소비자와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이다.

“그런데 구글은 구글맵, G메일, 내비게이션, 유튜브 등 수많은 ‘돈 안 되는’ 것들도 합니다. 왜일까요. 구글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어떤 아이템이 성공할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시장은 안다’고 했습니다. 수천개 아이디어 가운데 성공하는 것은 한두 가지밖에 안 되지만, 그 한두 가지가 회사를 살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70대 20대 10’의 법칙입니다. 일주일에 40시간 일을 한다면 그중 28시간(70%)은 중요한 일을 하고, 8시간(20%)은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고, 4시간(10%)은 상상하는 데 쓰라는 것입니다. 경영 혁신은 전문가나 연구소에 맡겨버릴 일이 아닙니다. 회사 내 좋은 인적 자원이 모두 경영 혁신에 참여하도록 하십시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강의 = 김준석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