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그동안 행운아였다…엔低 이겨내야 진짜 생존"
“한강의 기적은 멈췄다. 한국 경제는 뜨거워지는 물 속의 개구리와 같다. 북핵보다 한국 경제가 위기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한국에 잇달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이달 초 15년 만에 발간한 ‘제2차 한국 보고서, 신성장 공식’에서는 한국 중산층의 절반 이상이 적자 상태인 ‘빈곤 중산층’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17일 미국 외교전문지인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멈춰버린 기적(Stalled Miracle)’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한국의 경제 성공 전략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24일 서울 수하동 맥킨지 사무실에서 보고서의 공저자인 리처드 돕스 맥킨지글로벌인스티튜트(MGI) 소장과 서동록 파트너를 만났다.

▷정치권에서도 주목할 정도로 맥킨지의 한국 보고서가 화제다.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나.

돕스=물론이다. 전 세계는 지금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 인도 등 다른 이머징 마켓보다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처럼 단시간에 성장을 거듭한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한국 보고서에 대한 요청이 쇄도했다. 한국의 성공 비결과 위기를 분석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다. 곧 중국어 번역본을 발간할 예정이다.

리처드 돕스 맥킨지글로벌인스티튜트(MGI) 소장(오른쪽)과 서동록 맥킨지한국사무소 파트너가 24일 ‘제2차 한국 보고서’ 발간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리처드 돕스 맥킨지글로벌인스티튜트(MGI) 소장(오른쪽)과 서동록 맥킨지한국사무소 파트너가 24일 ‘제2차 한국 보고서’ 발간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맥킨지가 제기한 ‘한국 위기설’이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있다. ‘공포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있다.

돕스=한국은 실제 위기다. 보고서를 주도한 최원식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구축하지 않으면 성장을 지속할 수 없는 기로에 서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연구소들도 같은 진단을 내리고 있다. ‘장삿속’이라는 지적이라면 MGI는 비영리기관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맥킨지 운영수익으로 자체 예산을 들여 싱크탱크를 만들었고 그동안 축적된 컨설팅 경험과 지식재산을 모아 보고서를 발간한다. 보고서는 순수하게 연구를 목적으로 발간하며 특정 국가의 요청이나 수요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공유하는 사회공헌적 성격이 강하다.

▷15년 만에 발간한 보고서라고 하기엔 새로운 조사나 데이터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서동록=보고서를 준비하는 데 6개월 정도 걸렸다. 우리는 공인된 데이터를 인용해 다른 각도로 분석하고 핵심을 파악해 종합적으로 연결관계를 진단하는 일을 한다. 기존 데이터로 새롭게 만들어낸 자료도 포함돼 있다.

▷엔저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하는가.

돕스=한국은 그동안 엔고의 이익을 누린 행운아였다. 엔저 속에서 살아남아야 진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다. 지금부터 전혀 다른 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 기업에 필요한 것은 ‘제품 혁신’이다. 고임금 구조에서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 일부 기업은 중국 등 저임금 국가로 생산 기지를 옮기고 있다. 다행인 점은 예전보다 한국 기업에 미치는 환율의 영향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전 세계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인 상태다. 앞으로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해외 직접투자가 증가하면서 국내 산업이 공동화되는 현상이 빚어졌는데, 해결책은 없는지.

서동록=그동안 대기업이 국내에서 만든 제품을 해외로 수출해서 일자리 만들고 일자리가 가계에 소득으로 이전되는 등 국가 경제를 이루는 하나의 큰 쳇바퀴가 있었다. 지금은 대기업이 따로 도는 사이클이 생겼다. 해외본사에서 굳이 한국인 직원을 뽑을 필요성이 없어졌다. 대기업의 고용이 줄면서 국민 대다수가 종사할 수 있는 생업 사이클이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양질의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고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서비스 산업 육성이 유일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인데.

서동록=서비스 육성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맥킨지는 2030년까지 관광 등 전체 서비스 부문이 선진국 전체 수출 비중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의 서비스 산업은 음식점, 부동산, 보험 등 저부가가치 산업에 집중돼 있다. 정보기술(IT)서비스, 경영지원 등 전문적이고 고부가가치 서비스 분야로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여성의 노동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도 서비스 산업이 필수적이다. 출산율 저하,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앞으로 여성이 일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맥킨지가 자체 조사한 결과 앞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중 근로가능인구의 기여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독일과 기타 고령화 국가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인구 감소는 한국 경제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보고서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는.

돕스=30년 전 한국에서 마법 같은 경제 성장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와 기업이 협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정부와 공무원들이 일을 안한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정부는 실패를 용인하고 성과에 대해 보상해주는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데 급급하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일은 뒷전이다. 국회 청문회에서는 저축은행 부실사태 등 비리에 대해 추궁하기보다 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확률이 낮은지, 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이 생기지 못하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 리처드 돕스 소장은

리처드 돕스 맥킨지글로벌인스티튜트(MGI) 소장은 1988년 맥킨지에 합류해 2004년부터 5년간 맥킨지 기업금융 부문을 이끌었다. MGI에서 한국 중국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자본시장, 산업 공동화 등 경제 트렌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사무소의 파트너를 겸임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학, 경제, 경영을 전공했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