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 굿모닝시티 관리단이 상권 활성화 차원에서 추진해온 일괄 임대차 계약에 대해 “소수 상인들의 소유권을 과도하게 침해했다”고 법원이 최근 제동을 걸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서울 동대문 굿모닝시티 관리단이 상권 활성화 차원에서 추진해온 일괄 임대차 계약에 대해 “소수 상인들의 소유권을 과도하게 침해했다”고 법원이 최근 제동을 걸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상가 전체를 내놓는 통임대가 유일한 살 길인데, 법이 발목을 잡으니 답답할 따름이네요.”

25일 서울 동대문 테마상가 굿모닝시티에서 만난 한 상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2011년부터 추진해온 롯데자산개발과의 일괄임대 계약을 위해 관리인단이 소수파 상인들의 반대를 막아달라며 법원에 낸 소송이 지난 11일 기각된 탓이다.

2000년 전후 유행처럼 번졌다가 경기불황으로 몰락한 테마상가(쇼핑몰)의 유일한 돌파구로 여겨졌던 ‘일괄임대’가 법에 발목을 잡혀 잇따라 무산·지연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대다수 상가들은 ‘유령상가’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건물에 대형 유통업체 등을 들이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법원은 “소유자의 소유권을 침해해선 안된다”는 논리로 상인 100% 동의를 받지 않은 상가의 임대 계약을 무효화하는 판결을 잇따라 내리고 있다.

◆“소유권 과도하게 침해해 무효”

10% 반대로…'롯데에 임대' 막힌 굿모닝시티
2008년 개장한 굿모닝시티는 경기 불황으로 상가가 텅텅 비자 2011년 초 롯데자산개발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임대차 계약을 추진해 왔다. 롯데 측과는 95% 이상 상인의 동의를 받으면 계약을 맺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5~10%의 상인들의 반대가 지속되자 ‘롯데와의 일괄입점 협상을 방해하지 말라’는 취지의 행위정지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개별 상가 소유자 75% 이상이 동의하면 임대차에 동의하지 않은 상가 소유자도 임차인의 건물 사용 등에 협조해야 한다는 관리단 규약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규약 자체가 상가 소유자의 소유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무효”라고 판시했다. 관리인단은 상인들을 설득해 롯데와 계약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협상 추진에 힘이 빠지게 됐다.

올초에는 같은 이유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유니클로 매장인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이 철수 위기에 처했다. 고모씨 등 이 건물 소수 상인파가 유니클로 한국법인을 상대로 낸 ‘건물에서 나가달라’는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이 고 씨 등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같은 법 적용으로 기형적인 상가도 생기고 있다. 경기 부천시 원미구의 ‘소풍’ 쇼핑몰은 2001아울렛, 킴스클럽 등의 유통 매장이 들어와 있었지만 이달부터 기존에 있던 쇼핑몰 점포가 펜스를 치고 군데군데 함께 운영 중이다. 쇼핑몰 관계자는 “일부 상가 소유자 중에서는 이권을 위해 끝까지 동의를 거부하는 ‘알박기’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관련 법 없어 판례만 따라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은 상가 소유 상가의 임대차와 관련해 마땅한 법 조항이 없어 대법원 판례에만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가는 특정 비율 이상이 찬성하면 일괄임대할 수 있다는 자체 규약을 두고 있다. 그러나 2009년 대법원은 소수파의 반대를 무시하고 일괄임대차 계약을 맺은 경남 창원시 A쇼핑몰을 상대로 소수파가 낸 소송에서 “상가 소유자의 소유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사회관념상 타당성을 잃은 것이므로 무효”라며 “원고들로부터 그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거나 개별적 동의를 받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시했다.

최근 가든파이브와 명동 밀리오레 등 일부 대형 쇼핑몰도 일괄임대를 추진 중이지만 이대로라면 성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최광석 로티스 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100% 동의는 사실상 불가능할 뿐더러 계약을 하더라도 임차 후 명도소송 등으로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정소람/홍선표/강창동 유통전문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