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이 엔저(低)에 힘입어 6년 만에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간판 기업인 소니가 5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고, 도요타자동차는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순이익이 8000억엔(약 9조원)으로 추정돼 2008년 이래 최대치라고 한다. 엔·달러 환율이 1엔 올라갈 때마다 자동차 전자 화학 철강 해운 등 주요 기업들의 순이익이 수십억, 수백억엔씩 늘어나는 구조다. 올해 엔화환율이 100엔대에서 움직인다면 일본 200대 기업의 세전 순이익은 전년보다 75% 급증할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다이와증권)까지 나온다.

물론 엔저가 일본 경제의 모든 문제를 일소할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20년’의 장기불황 속에서도 일본 제조업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해왔다는 점이다. 그것도 엔고(高), 높은 법인세, 과중한 인건비, 엄격한 환경규제, 더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다 동북대지진 이후 전력 불안 등 6중고(六重苦)라는 고비용을 버텨낸 것이다. 인고(忍苦)의 세월 동안 내성을 키우고 체질을 바꿔 더 단단해진 경쟁력을 갖게 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제 엔고가 엔저로 바뀌고, 일본 정부가 FTA에도 적극적이니 전망도 밝은 편이다.

다 죽었다던 일본 기업들의 부활을 지켜볼수록 우리의 처지는 참담하다. 일본은 물이 들어와 모든 배가 떠오르는 반면 한국은 물이 빠지면서 온갖 오물이 드러나는 꼴이기에 더욱 그렇다. 유례없는 8분기 연속 0%대 저성장을 놓고 예상보다 선방했다는 판이다. 삼성전자가 1분기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지만 현대차 등 수출기업들의 실적악화는 이미 현실이다. 그럼에도 기업 때리기 광풍의 내우(內憂)와, 엔저의 외환(外患)이 겹쳐 앞이 안 보인다.

그러니 성장판이 닫혔느니,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니 하는 쓴소리에 제대로 대꾸조차 하기 어렵다. 정부와 정치권은 얼마나 더 나빠져야 기업 때리기를 멈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