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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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옥션 단(檀) 대표(58)를 만나면 항상 귀와 입이 즐겁다. 깊은 공부에서 우러나오는 끝없는 입담과 장안 최고의 맛집 순례가 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한동안 뜸했던 그와의 만남을 고대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미술품 경매사 옥션 단(서울 수송동 소재)대표, KBS TV 고미술 감정 프로그램인 ‘진품명품’ 출연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채근해 지난 24일 저녁 불러냈다.

그가 도가니탕집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솔직히 약간은 실망했다. 평소 끼니를 바삐 해결하기 위해 들르는 곳이 회사 근처 설렁탕집이었기 때문이다. 신선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립문 근처 교북동의 대성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역시 단잠(檀岑김 대표의 호) 선생이야”라는 독백이 흘러나왔다. 1970년대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이 허름한 맛집은 한우만을 고집하는 장안 최고의 도가니탕집으로 통한단다. 탕이 나오기 전 먼저 상에 오른 도가니 수육을 한 점 입에 넣으며 말문을 텄다.

▷8년째 일요일 아침마다 TV에 출연하고 있다. 중장년층 팬이 많다던데.

“젊은 사람들은 빼고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사이에서는 제법 알려진 것 같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아는 척하면 김영복의 사촌이라고 얼버무릴 때도 있다.”

▷출연중인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가격을 알아맞힌다는 스릴이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것 같다. 처음에는 예술적 가치에 가격을 매긴다는 데 부담을 느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인기의 비결이 됐다. 출장 감정을 가면 그 점을 절감한다. 안동 같은 양반촌도 예외는 아니다. 다들 겉으로는 고고한 척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초미의 관심사는 값이 얼마냐 하는 점에 쏠려 있다. 어떤 이는 녹화 전에 미리 찾아와 감정가를 낮춰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돈으로 인해 집안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시를 그 자리에서 줄줄 해석해내던데.

“솔직히 녹화 전에 미리 공부한다. 전날 과음으로 준비가 부족할 때는 어설플 수밖에 없다. 그럴 땐 제작진도 눈치를 챈다.”

몇 마디 나누는 사이 도가니 수육 접시의 바닥이 하얗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쫀득쫀득 고소하면서도 슬슬 녹는 식감에 자리를 같이한 네 장정의 젓가락이 분주하게 오간 탓이다. 때마침 종업원 아주머니가 커다란 양은 쟁반으로 탕 그릇을 받쳐 나타났다. 다른 집보다 조금 큰 뚝배기에 기름 한 점 뜨지 않은 국물이 가득 담겨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국물 빛이 맑아서 맹탕일 것 같은데 한 술 떠보니 뜻밖에도 진국이다. 건더기도 빼곡하다. 네 남자의 입가에 스르르 만족감이 퍼져 나간다.

▷어릴 때 서울에 올라왔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좀 했다. 상급학교에서 전액 장학생을 제의할 정도였다. 큰어머니가 큰 인물 될 거라며 서울 상경을 독려했다. 경기중학교 시험을 보러 서울에 왔는데 평준화 바람에 목표를 상실하고 방황하는 청춘이 되고 말았다. 원래 고시 패스의 꿈을 갖고 있었다.”

▷서지학과 서예사 분야에서 전문 학자 뺨치는 권위자로 통하는데,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고교시절 한문 선생님 추천으로 인사동의 고서점 통문관에 취직한 게 계기였다. 당시 통문관은 인문학의 메카이자 학자들의 사랑방이었다. 사장인 이겸로 옹과 그곳을 드나들던 학자들에게 십시일반 물어 내공을 쌓았다. 그런 답변들을 나름대로 재구성해 가며 공부한 게 큰 도움이 됐다. 한번은 3년 모은 월급으로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샀는데 가짜였다. 하늘이 노랬다. 그때부터 추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0년을 붙잡고 늘어졌더니 조금 알 것 같았다. 눈이 확 뜨인 것은 15년이 지나서였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게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물건이 진품임을 입증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뭐가 진짜고 가짜인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뿐이다.”

▷한문 해석 능력도 돋보인다.

“많이 읽고 경험한 것이 도움이 됐다. 해석이 안 되는 문장은 해결될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고 가급적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안 될 때는 임창순 선생과 이동환 선생을 찾았다.”

▷고서 감정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일은.

“추사 작품을 감정한 적이 있는데 아홉 글자는 맞는데 한 글자가 낯설었다. 가짜였다. 위작을 만든 사람이 다른 자는 다 아는데 한 글자를 찾지 못해 자기가 추리해서 썼던 것이다. 가짜는 이런 작은 허점을 통해 드러난다.”

▷최근 미술품 감정을 둘러싸고 불미스러운 일들이 불거지고 있다.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가장 큰 문제는 욕심이다. 화랑 주인은 자기가 가진 작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잘하면 수십억원을 챙길 수 있다는 요행 심리와 집단적 욕심이 인사동을 나락으로 몰고갔다. 문제는 이들의 집단적 욕심이 소장가들까지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가 불분명하고 작품성이 어정쩡한 물건들은 욕망이 비집고 들어가기 좋은 대상이다.”

▷미술사학계에서 인사동 출입을 꺼리던데.

“일부 화랑이 자초한 것이다. 국공립 기관에서는 고미술품을 매입할 때 아예 화랑 관계자를 배제한다. 그러다 보니 시세와 다른 엉뚱한 평가가 이뤄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시장 가격에 정통한 양식 있는 업자를 참여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고미술품 투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자기가 믿는 사람에게서 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히 공부해 스스로 감식안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의문점이 생기면 자기보다 많이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자신감이 생겼을 때 투자해야 한다. 또 투자만을 염두에 두거나 과시용으로 구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사야 한다.”

▷요즘 미술계 전반이 불황이어서 경매사 대표로서 고충이 클 것 같은데 난관을 헤쳐 나갈 방법은 없나.

“사실상 묘안은 없다. 화랑 관계자들이 반성해서 신뢰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당혹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가짜가 더 많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다. 조금 팔리는 물건이다 싶으면 가짜가 쏟아져 나온다. 막아야 하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어 고통스럽다.

“팔린다 싶으면 위조작 쏟아져…과시 구매 피해야”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영복 옥션 단(檀) 대표 "3년 월급털어 산 추사 글씨 가짜…그때부터 연구 매달려"
▷음식 얘길 좀 해보자. 그 많은 맛집을 어떻게 알게 됐나.


“술 좋아하는 사람은 맛집을 찾아 다닌다. 식도락도 많다. 문인, 학자들과 술잔 기울이며 이집저집 순례하다 보니 숨은 맛집들을 발견하게 됐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맛집의 기준은 뭔가.

“싸고 맛있어야 한다. 비싸면서 맛있는 집은 돈만 있으면 갈 수 있지 않은가. 또 하나 문턱을 넘을 때 부담감이 없어야 한다. 그 집에 갔을 때 가식을 떨지 않아도 되는 곳이어야 한다. 양식집에선 좀처럼 그런 분위기를 만끽하기 어렵다.”

한참 음식 얘기를 하는데 주인장이 미닫이문을 두드린다. “국물이 식었을 테니 뜨거운 국물 좀 더 드릴게요.” 이내 커다란 뚝배기에 담긴 사골 국물을 들고 나타나 빈 그릇에 그득하니 부어준다. 김 대표가 얘기한 맛집 기준에 꼭 맞는 집임을 확인시켜 준다.

▷최근 한국문화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그런데 정작 우리 자신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외국인들의 관심을 어떤 방식으로 수렴해야 하나.

“더 깊이깊이 들어가서 우리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찾아내야 한다. 싸이 음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빨리 찾아서 알려줘야 한다. 오늘의 한국 대중문화가 유구한 문화 전통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줘야 한다. 그래야 한국문화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관심도 지속될 수 있다. 지금쯤K팝연구소가 이미 만들어져 있어야 하지 않나.”

▷고전의 숲속에서 깨우친 바람직한 인간상은 무엇인가. 그것을 오늘의 맥락에서 규정한다면.

“고전은 우리의 삶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만들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다. 젊었을 때 함석헌 선생께 노장사상과 성경 강의를 들으며 느낀 바가 많았다. 그로부터 사람을 결과론적으로만 평가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고전 속의 인간상은 바로 그 점을 깨우쳐준다. 오늘의 우리는 돈이 많거나 성공한 사람을 쫓아가는데 함 선생은 그 사람의 과정을 중시했다. 도박해서 번 돈으로 자선사업을 하면 뭐하겠나.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긴 어려운 것이다.

결과론적인 풍토가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영복 옥션 단(檀) 대표 "3년 월급털어 산 추사 글씨 가짜…그때부터 연구 매달려"

김영복 대표의 단골집 대성집 밤새 우려낸 맑은 도가니탕 일품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영복 옥션 단(檀) 대표 "3년 월급털어 산 추사 글씨 가짜…그때부터 연구 매달려"
“에계 메뉴가 이것뿐이에요.” 대성집에 들어선 순간 눈에 들어온 메뉴판에는 도가니탕, 수육만 달랑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이 집을 우습게 봐선 곤란하다. 으리으리한 겉모습과 호화로운 인테리어를 뽐내는 여느 레스토랑은 이 집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최근 한 음식점 평가기관이 내놓은 점수는 한식당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가격도 착하다.

60여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대성집은 원래 해장국집으로 출발했지만 도가니탕 전문으로 바뀌었다. 커다란 가마솥에 도가니뼈와 도가니살, 힘줄을 함께 넣고 밤이 새도록 장작불로 국물을 우려내는데 누린내도 나지 않는 맑은 빛의 진국이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사골 국물에 선지와 우거지를 넣은 후 된장을 풀어 끓여낸 해장국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그러나 이 집 문턱을 넘는 이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집주인의 인심과 친절이다. 늦게 가면 30분쯤 줄을 설 각오를 해야 한다. 예약은 받지 않고 주차는 가능하다.

도가니탕 9000원, 수육 2만원, 해장국 5000원. (02)735-4259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