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국민연금 지급 법으로 보장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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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역사를 불신의 역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시작부터 그랬다.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의 돈을 끌어들여 경제 개발에 쓸 생각으로 국민복지연금법을 만들었다. 이듬해 시행하려 했지만 오일쇼크 등으로 14년이 지난 1988년에야 국민연금법이 발효됐다. 1990년대 초 돈이 좀 모이자 정부는 기금 일부를 공공자금관리기금에 강제로 넣게 했다. 정부 임의대로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1994년 시민단체들은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수익성이 떨어지는 곳에 사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연금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국민연금 8대 비밀’이라는 글이 올라온 것을 계기로 탈퇴운동이 벌어졌다. 올해 초에도 연금은 수난을 겪었다.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서 빼서 주겠다는 소문이 돌며 실제 가입자들이 탈퇴했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젊은이들은 못 받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급속히 확산됐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하는 방식으로 불신을 없애자는 주장이 나왔다. 지금은 국민연금공단에 지급 의무가 있다. 여당도 이를 받아들였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등이 반대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가 중단됐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면 잠재 부채로 잡혀 신인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한 보험료율 인상 등 개혁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논리도 제시했다.
현실적으로는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국가가 책임지고 지급할 수밖에 없다. 어떤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법에 이를 명문화하는 것과 아닌 것은 다른 문제라고 양측은 주장하고 있다. 남윤인순 민주통합당 의원과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으로부터 찬반 의견을 들어봤다.
찬성 - ‘연기금 고갈’ 불신 커져…法 있어야 ‘탈퇴 러시’ 막아
1998년부터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 계산이 이뤄지고 있다. 올해는 제3차 재정 계산이 실시됐다. 이때마다 정부는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며 국민연금 급여율을 낮췄고, 그 결과 국민은 연기금이 고갈될 경우 자신이 낸 연금을 받을 수 없을까봐 걱정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기는커녕 불신을 조장해온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1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0.8%가 ‘기금 고갈로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지난 4월 KBS 여론조사에서도 ‘노후에 받을 국민연금이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기대한 비율은 16.5%에 불과했다. 지금보다 줄어들거나 아예 못 받을 것이라는 답변도 83.5%나 됐다.
이에 본 의원 등이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 보장’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여당 간 당정 협의 및 보건복지부와 여야 합의를 거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하 복지위)를 통과했다.
그런데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법률에 명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고 지급 보장을 명시할 경우 국가부채로 계상돼 국가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이 때문에 당정 협의를 거쳐 여·야 합의가 이뤄진 법안이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돼 있다.
연금은 부채에 포함 안돼…국가 신용등급과 상관 없어
하지만 기재부의 이 같은 반대 논리는 잘못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기재부는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법률에 명시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독일과 일본 등 연금 지급 보장을 법률에 명시한 나라가 적지 않다. 사회보험을 최초로 도입한 독일은 사회법전 제6편(공적연금보험) 제214조(유동성 보장)에 연기금이 부족할 경우 국가에서 보조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일본은 국민연금법에서 국가의 연금 지급 의무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에서 국가의 지급 보장 규정을 두고 있다. 그 중 국가가 고용주이기 때문에 교환 거래의 개념이 성립하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연금 추정 지급액을 재무제표상 연금충당부채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과 국민연금은 국가가 고용주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회계실체 간의 교환 거래가 명확하게 성립하는 것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과 국민연금은 기재부의 ‘기금회계준칙’ 고시 제9조(연금부채의 인식)에서도 연금지급 추정액을 재무제표상의 연금충당부채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모든 연금 급여를 연금충당부채 설정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연금법 제42조의 장기 급여와 군인연금법 제6조의 급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법’에 국가 지급 보장을 명시하더라도 사립학교교직원연금처럼 연금충당부채로 인식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부분적립 방식이자 부분부과 방식의 제도다. 칠레와 같이 내가 낸 연금을 그대로 다시 돌려받는 완전적립 방식과 연금제도가 성숙한 유럽처럼 현재 근로 세대가 낸 적립금으로 현재 노인 세대에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 방식의 중간인 것이다. 국민연금제도는 내가 연금을 낸 후 그 연금만을 그대로 돌려받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연금을 내고 20~40년이 지난 후 연금을 받을 때는 내가 낸 연금과 그 시대 근로 세대가 낸 연금을 통해 연금을 지급받기 때문에 국민연금은 거대한 기금을 가진 부분부과 방식의 사회보험제도라고 할 수 있다.
부분부과 방식의 국민연금을 부채로 보게 되면 기금이 전혀 없는 유럽의 대부분 나라는 엄청난 부채를 지게 된다. 가령 부과 방식 연금으로 해마다 국내총생산(GDP)의 10.8%를 지출하고, 법적으로 국가의 지급 보장이 명시된 독일은 엄청난 부채를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독일은 이것을 국가부채로 산정하지 않고 있다.
기재부는 국가 지급 보장을 국민연금법에 명문화할 경우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국가부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IMF 정부재정통계편람에 의하면 사회보험제도는 기여와 급여 사이에 엄밀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정책에 따라 급여 구조가 변경될 수 있으며, 정부에 대해 계약상의 의무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보장 급여를 정부 부채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또한 국제공공회계기준(IPSAS)에서는 비교환 거래 성격을 가진 공적연금에 관한 회계기준 제정을 유보하고 있다.
독일, 보조금 지급 명시…일본도 국가가 법적 보장
백번 양보해 기재부 주장대로 국가 지급 보장 명시 시 국가채무로 반영된다고 해도 국가 재정 건전성에 영향을 미쳐 국가신용등급이 낮아진다는 우려는 기우다. 정부는 지난해 5월 국가회계의 처리 기준을 발생주의로 전환하면서 그동안 국가부채에 포함하지 않았던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충당금 340조원을 추가로 국가부채에 편입, 국가총부채를 720조원으로 발표했다. 그 결과 전년 대비 국가부채가 두 배 정도 증가했지만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은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오히려 상향시켰다.
국민연금은 금융권에서 운영하는 개인연금이나 연금저축과 달리 국가가 국민의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운영하는 사회보험제도다. 연기금이 고갈될 경우 자신이 낸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고 우리나라의 노후 소득 보장제도의 근간인 국민연금제도의 기반을 강화해 중산층과 서민층의 노후 소득 보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국민연금법 개정안’(대안)이 최대한 빨리 통과돼야 한다.
남윤인순 < 민주통합당 의원 >
반대 - 향후 연금개혁에 ‘걸림돌’…빚 되면 국가신인도 떨어져
국민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제 오늘 나온 게 아니다. 앞서 18대 국회에서 관련법이 발의됐고,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의 공약사항이기도 했다. 국민연금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사회 환경이 크게 바뀐 것은 사실이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에는 경제성장률과 출산율이 높았던 반면 평균수명은 70세에 불과했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저성장 시대다.
출산율은 낮아진 반면 평균수명은 80세를 넘어서며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2060년께 고갈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제대로 지급받을 수 있는지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제도로 안착하려면 국민 신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급 보장을 하는 게 그 해결책인가. 그렇지 않다. 우선 실효성 차원에서 지급보장 명문화는 큰 의미가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느 ‘간 큰’ 정부가 국민연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을까. 국가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매우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는 한 지급보장 조항이 있든 없든 국민연금은 지급될 수밖에 없다. 입법화의 실질적인 효과가 분명치 않다.
법 명시 안해도 국가 지급…개편 때마다 국론분열만
오히려 지급 보장은 득보다 실이 많다. 우선 국민연금 제도 개편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하면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국가가 세금으로 충당하면 된다’는 논리가 퍼질 수 있다. 그러면 국민연금 재정을 건전화하는 데 국가가 노력을 덜 기울이게 된다. 이는 지급 보장이 명문화된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국민연금 개편은 적기에 제대로 해야 한다. 앞으로 개편 논의는 국민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 국민들은 지급 보장 조항을 들어 ‘정부가 애초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지급 보장이 국론 분열과 국력 낭비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연금 개편은 더욱 힘들어진다.
과거를 돌아보면 더욱 분명하다. 1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에 근거한 2003년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변화된 환경에 맞게 국민연금제도를 개편하는 내용이었다. 기존의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제도를 ‘더 내고 덜 받는’ 제도로 고치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반발했다. 재정 안정을 핑계로 국민연금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당초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뜻이고, 따라서 국민연금 설계에 참여했던 관계자를 문책하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정부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연금을 개편하기 위해 일부러 비관적인 가정을 내놨다는 비판도 있었다. 논쟁은 4년간 이어졌지만 결국 ‘덜 받기만 하는’ 반쪽짜리 개혁이 이뤄졌다.
그리고 6년이 지났다. 국민연금의 재정 불안은 그만큼 심해졌다. 지금 상황에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따로 있다. 하루라도 빨리 국민연금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는 일이다. 상황이 이런데 보험료 인상을 통해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 제도 개편 방향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급 보장 명문화는 국민연금의 책임 있는 운용에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 지급 보장의 근거로 형평성을 든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 특수직연금은 지급 보장을 이미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에도 동일한 규정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 맞지 않다.
특수직연금은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문제가 되면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직연금의 지급보장 규정을 국민연금이 따라가는 것은 문제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모두 지속 가능한 쪽으로 제도를 고쳐나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외국에서 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지급보장 사례로 언급되는 독일의 경우가 그렇다. 독일은 연금비용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사회법전 213조 1항)하고, 유동성이 부족할 때 연방정부가 지원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면 반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사회법전 214조 1항). 국민연금을 국가가 직접 지급 보증한다고 명시한 사례는 해외에서 찾기 어렵다.
연금 잠재부채 423조원…지급보장 불똥, 국가경제로
지급보장을 명문화할 경우 또 다른 부작용도 예상된다. 국민연금 잠재 부채를 국가채무로 고스란히 잡는 데 따른 문제다. 국민연금으로 인한 잠재부채는 2011년 기준으로 423조원에 이른다. 이를 국가가 지급 보장한다고 명시하면 고스란히 국가 부채에 추가될 수 있다.
그러면 국가 신인도가 떨어지고, 자금조달 금리가 오르면서 국제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급 보장 명시로 인한 파장이 국민 경제 전반에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명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입법화했을 때 이처럼 부정적 효과가 적지 않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국회에서 이미 입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관련 규정을 꼭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조항 내용을 완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가 선량한 관리자로서 연금지급 보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대체할 수 있다. 국민들의 불안을 덜면서 국가 부채는 늘리지 않는 방법이다.
윤석명 < 한국보건사회硏 연금연구센터장 >
읽을 만한 자료
▷원종현, 2012, ‘국민연금급여의 국가 지급책임과 연계한 기금운용 개선방안’, 국회입법조사처
▷고윤성·김수성, 2012, ‘연금회계준칙 제정에 따른 국가회계의 개선방안 연구’, 회계저널 제21권 제1호, 한국회계학회
▷박보희, 2012, ‘공적연금제도의 연금충당부채 인식 및 평가’, 회계논단Ⅳ, 국가회계기준센터
▷국민연금발전위원회, ‘2003 국민연금 재정계산 및 제도개선방안’, 2003
△윤석명 외, ‘공적연금 재정평가 및 정책현안 분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1
△윤석명 외, ‘100세 행복연금 프로젝트’,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1
시작부터 그랬다.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의 돈을 끌어들여 경제 개발에 쓸 생각으로 국민복지연금법을 만들었다. 이듬해 시행하려 했지만 오일쇼크 등으로 14년이 지난 1988년에야 국민연금법이 발효됐다. 1990년대 초 돈이 좀 모이자 정부는 기금 일부를 공공자금관리기금에 강제로 넣게 했다. 정부 임의대로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1994년 시민단체들은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수익성이 떨어지는 곳에 사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연금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국민연금 8대 비밀’이라는 글이 올라온 것을 계기로 탈퇴운동이 벌어졌다. 올해 초에도 연금은 수난을 겪었다.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서 빼서 주겠다는 소문이 돌며 실제 가입자들이 탈퇴했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젊은이들은 못 받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급속히 확산됐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하는 방식으로 불신을 없애자는 주장이 나왔다. 지금은 국민연금공단에 지급 의무가 있다. 여당도 이를 받아들였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등이 반대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가 중단됐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면 잠재 부채로 잡혀 신인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한 보험료율 인상 등 개혁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논리도 제시했다.
현실적으로는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국가가 책임지고 지급할 수밖에 없다. 어떤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법에 이를 명문화하는 것과 아닌 것은 다른 문제라고 양측은 주장하고 있다. 남윤인순 민주통합당 의원과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으로부터 찬반 의견을 들어봤다.
찬성 - ‘연기금 고갈’ 불신 커져…法 있어야 ‘탈퇴 러시’ 막아
1998년부터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 계산이 이뤄지고 있다. 올해는 제3차 재정 계산이 실시됐다. 이때마다 정부는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며 국민연금 급여율을 낮췄고, 그 결과 국민은 연기금이 고갈될 경우 자신이 낸 연금을 받을 수 없을까봐 걱정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기는커녕 불신을 조장해온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1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0.8%가 ‘기금 고갈로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지난 4월 KBS 여론조사에서도 ‘노후에 받을 국민연금이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기대한 비율은 16.5%에 불과했다. 지금보다 줄어들거나 아예 못 받을 것이라는 답변도 83.5%나 됐다.
이에 본 의원 등이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 보장’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여당 간 당정 협의 및 보건복지부와 여야 합의를 거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하 복지위)를 통과했다.
그런데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법률에 명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고 지급 보장을 명시할 경우 국가부채로 계상돼 국가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이 때문에 당정 협의를 거쳐 여·야 합의가 이뤄진 법안이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돼 있다.
연금은 부채에 포함 안돼…국가 신용등급과 상관 없어
하지만 기재부의 이 같은 반대 논리는 잘못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기재부는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법률에 명시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독일과 일본 등 연금 지급 보장을 법률에 명시한 나라가 적지 않다. 사회보험을 최초로 도입한 독일은 사회법전 제6편(공적연금보험) 제214조(유동성 보장)에 연기금이 부족할 경우 국가에서 보조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일본은 국민연금법에서 국가의 연금 지급 의무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에서 국가의 지급 보장 규정을 두고 있다. 그 중 국가가 고용주이기 때문에 교환 거래의 개념이 성립하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연금 추정 지급액을 재무제표상 연금충당부채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과 국민연금은 국가가 고용주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회계실체 간의 교환 거래가 명확하게 성립하는 것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과 국민연금은 기재부의 ‘기금회계준칙’ 고시 제9조(연금부채의 인식)에서도 연금지급 추정액을 재무제표상의 연금충당부채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모든 연금 급여를 연금충당부채 설정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연금법 제42조의 장기 급여와 군인연금법 제6조의 급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법’에 국가 지급 보장을 명시하더라도 사립학교교직원연금처럼 연금충당부채로 인식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부분적립 방식이자 부분부과 방식의 제도다. 칠레와 같이 내가 낸 연금을 그대로 다시 돌려받는 완전적립 방식과 연금제도가 성숙한 유럽처럼 현재 근로 세대가 낸 적립금으로 현재 노인 세대에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 방식의 중간인 것이다. 국민연금제도는 내가 연금을 낸 후 그 연금만을 그대로 돌려받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연금을 내고 20~40년이 지난 후 연금을 받을 때는 내가 낸 연금과 그 시대 근로 세대가 낸 연금을 통해 연금을 지급받기 때문에 국민연금은 거대한 기금을 가진 부분부과 방식의 사회보험제도라고 할 수 있다.
부분부과 방식의 국민연금을 부채로 보게 되면 기금이 전혀 없는 유럽의 대부분 나라는 엄청난 부채를 지게 된다. 가령 부과 방식 연금으로 해마다 국내총생산(GDP)의 10.8%를 지출하고, 법적으로 국가의 지급 보장이 명시된 독일은 엄청난 부채를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독일은 이것을 국가부채로 산정하지 않고 있다.
기재부는 국가 지급 보장을 국민연금법에 명문화할 경우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국가부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IMF 정부재정통계편람에 의하면 사회보험제도는 기여와 급여 사이에 엄밀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정책에 따라 급여 구조가 변경될 수 있으며, 정부에 대해 계약상의 의무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보장 급여를 정부 부채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또한 국제공공회계기준(IPSAS)에서는 비교환 거래 성격을 가진 공적연금에 관한 회계기준 제정을 유보하고 있다.
독일, 보조금 지급 명시…일본도 국가가 법적 보장
백번 양보해 기재부 주장대로 국가 지급 보장 명시 시 국가채무로 반영된다고 해도 국가 재정 건전성에 영향을 미쳐 국가신용등급이 낮아진다는 우려는 기우다. 정부는 지난해 5월 국가회계의 처리 기준을 발생주의로 전환하면서 그동안 국가부채에 포함하지 않았던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충당금 340조원을 추가로 국가부채에 편입, 국가총부채를 720조원으로 발표했다. 그 결과 전년 대비 국가부채가 두 배 정도 증가했지만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은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오히려 상향시켰다.
국민연금은 금융권에서 운영하는 개인연금이나 연금저축과 달리 국가가 국민의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운영하는 사회보험제도다. 연기금이 고갈될 경우 자신이 낸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고 우리나라의 노후 소득 보장제도의 근간인 국민연금제도의 기반을 강화해 중산층과 서민층의 노후 소득 보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국민연금법 개정안’(대안)이 최대한 빨리 통과돼야 한다.
남윤인순 < 민주통합당 의원 >
반대 - 향후 연금개혁에 ‘걸림돌’…빚 되면 국가신인도 떨어져
국민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제 오늘 나온 게 아니다. 앞서 18대 국회에서 관련법이 발의됐고,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의 공약사항이기도 했다. 국민연금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사회 환경이 크게 바뀐 것은 사실이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에는 경제성장률과 출산율이 높았던 반면 평균수명은 70세에 불과했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저성장 시대다.
출산율은 낮아진 반면 평균수명은 80세를 넘어서며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2060년께 고갈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제대로 지급받을 수 있는지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제도로 안착하려면 국민 신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급 보장을 하는 게 그 해결책인가. 그렇지 않다. 우선 실효성 차원에서 지급보장 명문화는 큰 의미가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느 ‘간 큰’ 정부가 국민연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을까. 국가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매우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는 한 지급보장 조항이 있든 없든 국민연금은 지급될 수밖에 없다. 입법화의 실질적인 효과가 분명치 않다.
법 명시 안해도 국가 지급…개편 때마다 국론분열만
오히려 지급 보장은 득보다 실이 많다. 우선 국민연금 제도 개편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하면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국가가 세금으로 충당하면 된다’는 논리가 퍼질 수 있다. 그러면 국민연금 재정을 건전화하는 데 국가가 노력을 덜 기울이게 된다. 이는 지급 보장이 명문화된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국민연금 개편은 적기에 제대로 해야 한다. 앞으로 개편 논의는 국민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 국민들은 지급 보장 조항을 들어 ‘정부가 애초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지급 보장이 국론 분열과 국력 낭비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연금 개편은 더욱 힘들어진다.
과거를 돌아보면 더욱 분명하다. 1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에 근거한 2003년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변화된 환경에 맞게 국민연금제도를 개편하는 내용이었다. 기존의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제도를 ‘더 내고 덜 받는’ 제도로 고치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반발했다. 재정 안정을 핑계로 국민연금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당초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뜻이고, 따라서 국민연금 설계에 참여했던 관계자를 문책하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정부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연금을 개편하기 위해 일부러 비관적인 가정을 내놨다는 비판도 있었다. 논쟁은 4년간 이어졌지만 결국 ‘덜 받기만 하는’ 반쪽짜리 개혁이 이뤄졌다.
그리고 6년이 지났다. 국민연금의 재정 불안은 그만큼 심해졌다. 지금 상황에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따로 있다. 하루라도 빨리 국민연금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는 일이다. 상황이 이런데 보험료 인상을 통해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 제도 개편 방향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급 보장 명문화는 국민연금의 책임 있는 운용에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 지급 보장의 근거로 형평성을 든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 특수직연금은 지급 보장을 이미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에도 동일한 규정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 맞지 않다.
특수직연금은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문제가 되면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직연금의 지급보장 규정을 국민연금이 따라가는 것은 문제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모두 지속 가능한 쪽으로 제도를 고쳐나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외국에서 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지급보장 사례로 언급되는 독일의 경우가 그렇다. 독일은 연금비용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사회법전 213조 1항)하고, 유동성이 부족할 때 연방정부가 지원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면 반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사회법전 214조 1항). 국민연금을 국가가 직접 지급 보증한다고 명시한 사례는 해외에서 찾기 어렵다.
연금 잠재부채 423조원…지급보장 불똥, 국가경제로
지급보장을 명문화할 경우 또 다른 부작용도 예상된다. 국민연금 잠재 부채를 국가채무로 고스란히 잡는 데 따른 문제다. 국민연금으로 인한 잠재부채는 2011년 기준으로 423조원에 이른다. 이를 국가가 지급 보장한다고 명시하면 고스란히 국가 부채에 추가될 수 있다.
그러면 국가 신인도가 떨어지고, 자금조달 금리가 오르면서 국제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급 보장 명시로 인한 파장이 국민 경제 전반에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명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입법화했을 때 이처럼 부정적 효과가 적지 않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국회에서 이미 입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관련 규정을 꼭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조항 내용을 완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가 선량한 관리자로서 연금지급 보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대체할 수 있다. 국민들의 불안을 덜면서 국가 부채는 늘리지 않는 방법이다.
윤석명 < 한국보건사회硏 연금연구센터장 >
읽을 만한 자료
▷원종현, 2012, ‘국민연금급여의 국가 지급책임과 연계한 기금운용 개선방안’, 국회입법조사처
▷고윤성·김수성, 2012, ‘연금회계준칙 제정에 따른 국가회계의 개선방안 연구’, 회계저널 제21권 제1호, 한국회계학회
▷박보희, 2012, ‘공적연금제도의 연금충당부채 인식 및 평가’, 회계논단Ⅳ, 국가회계기준센터
▷국민연금발전위원회, ‘2003 국민연금 재정계산 및 제도개선방안’, 2003
△윤석명 외, ‘공적연금 재정평가 및 정책현안 분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1
△윤석명 외, ‘100세 행복연금 프로젝트’,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