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기적금 르네상스…초저금리에 증시·부동산 침체 겹쳐
은행 정기적금에 돈이 몰리고 있다. 저금리 구조가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힘을 쓰지 못하면서 적금의 수익성 및 안전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어서다.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17개 은행의 정기적금 잔액은 33조8091억원으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70년 1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기적금은 올 들어서만 1조6411억원 증가했다. 여기에는 지난 3월 출시된 재형저축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기적금은 일반인들의 목돈 마련 수단으로 각광받다가 2000년대 들어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7년 말에는 잔액이 13조1796억원까지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구조가 정착되면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특히 작년 한 해 동안에만 7조5364억원(전년 말 대비 30.6%) 급증했다.

정기적금 계좌 수도 2011년 말 750만계좌에서 작년 말에는 849만계좌로 99만계좌(13.2%) 늘었다. 새로 정기적금에 가입한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은행 정기예금은 올 들어 3월 말까지 2조3047억원 감소했다.

정기적금이 다시 각광받고 있는 것은 한국은행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하로 저금리 구조가 장기화되면서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돋보이고 있어서다. 3월 말 기준 정기적금 신규 취급액 금리는 연 3.39%에 이른다. 반면 정기예금 금리는 연 2.85%로 0.54%포인트 낮다. 은행들이 정기예금 금리를 정기적금 금리보다 더 큰 폭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정기적금 금리는 채권형 펀드(최근 1년 수익률 5.37%)를 제외하곤 다른 어떤 투자상품보다 높은 수준이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 돼 있는데다 주식시장이 게걸음을 보이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주식에 투자할 수도, 부동산에 투자할 수도 없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안전한 적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장준영 외환은행 반포퍼스티지 WM센터 PB팀장은 “위험성이 높은 ‘한방’을 노리기보다는 원금이라도 까먹지 말자는 안전추구형 투자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장기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적금 금리를 높게 유지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정기적금의 경우 소액으로 장기간 납입하기 때문에 금리를 예금보다 높게 해도 별로 손해볼 게 없다는 것이 은행들의 생각이다. 김양진 우리은행 수석부행장은 “최근 정기예금 고객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해 각종 특판 적금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며 “우리은행의 정기적금 잔액도 4월 말 기준 6조677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5500억원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박신영/김일규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