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내 멸망할 것이다.”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예언은 과연 들어맞는 것일까. 지구촌 곳곳에서 꿀벌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지난 7일 미국 농무부가 발표한 통계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 겨울 미국 꿀벌 군집의 31%가 줄었다. 이 기간 사라진 꿀벌의 수는 80만마리에 이른다. 2006년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유럽에서도 지난해 22%의 꿀벌 군집이 없어졌다. 영국은 꿀벌 개체 수가 25년 새 절반으로 감소한 상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꿀벌은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71종의 수분(꽃가루받이·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붙는 현상) 작용을 돕는다. 꽃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꽃가루를 옮겨주는 덕에 열매를 맺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억년간 지구 생태계를 지켜온 꿀벌이 떼죽음을 당한다는 건 곧 식물의 번식이 멈춰 생태계 질서가 무너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꿀벌이 세계 농업에 기여하는 가치는 2030억달러(약 224조원). 미국에서 꿀벌의 꽃가루받이 활동에 의지하는 농업은 200억달러(약 21조8000억원)로 추산된다. 꿀벌에 100% 의존하는 작물은 아몬드 당근 양파 등이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어스 워치’는 “대체 불가능한 생물 5종 가운데 꿀벌은 첫 번째 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2억년 지구 지킨 꿀벌 떼죽음 행렬…'생태계 대재앙' 경고음

○2억년 이어온 ‘집단생활’

꿀벌은 식물과 협력하며 살아온 사회적 동물이다. 식물은 꿀과 꽃가루를 주고 꿀벌은 꽃가루받이를 제공해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왔다. 꿀벌은 서로 수정이 가능한 종류의 꽃가루를 찾아서 꽃가루받이를 시켜주는데 이는 나비 등 다른 곤충에서는 없는 꿀벌만의 습성이다.

매년 늦봄이면 여왕벌과 꿀벌 집단은 새로운 집을 찾는 분봉을 한다. 늘어난 개체 수 때문에 3분의 1은 옛집에 남고 3분의 2는 새집을 찾아 떠난다. 1만여마리의 벌떼는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먼저 수백 마리의 나이 든 벌이 집터를 찾아 헤매는 정찰벌 역할을 한다. 주변 약 70㎢를 뒤져 10여개의 어두운 구멍을 찾아 후보지로 올린다. 이 새 집터를 동료들에게 알리기 위해 ‘8’자 모양을 그리며 엉덩이춤을 춘다. 엉덩이를 흔드는 시간은 비행 거리와 비례한다. 1초 동안 윙윙 소리를 내며 춤을 췄다면 1㎞를 날아왔다는 뜻이다. 엉덩이춤을 추는 각도는 태양을 기준으로 벌집 밖에서의 비행 각도를 의미한다. 춤의 움직임을 해독한 다른 벌들은 오차 없이 새집을 찾아간다. 입구가 작고 내부는 큰 집을 선호하는 꿀벌은 정찰벌 300~500마리가 각각의 후보지 앞에서 추는 춤으로 격렬한 토론을 벌인 끝에 새 집터를 고른다.

꿀벌은 이렇게 2억년을 진화 없이 살아왔다. 이들은 복부에서 내뿜는 밀랍(양초의 원료)으로 육각 형태의 집을 짓는다. 다른 벌들이 나무를 갉아 탑을 쌓듯 집을 짓는 것과 다르다. 꿀벌의 수명은 50일 안팎. 여왕벌이 하루에 낳는 2000여개의 알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부지런히 꽃가루를 실어나른다. 꿀벌이 알을 품은 뒤 날씨가 따뜻해지면 산란 시기가 온다. 유정란에서는 암벌, 무정란에서는 수벌이 태어난다. 32~36도의 더운 날씨일 때만 애벌레들이 성충으로 자랄 수 있는데 밀랍집은 고온일 때 녹아내린다. 이 때문에 꿀벌은 한여름에도 쉼 없이 날갯짓을 해 벌집의 온도를 낮춘다. 이 시기를 버티고 나면 꿀벌은 군집당 5만~6만마리로 개체 수가 대폭 증가한다.

○꿀벌 떼죽음…생태계 위협

꿀벌의 떼죽음 사례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5년 무렵부터다. 당시 1억5000만마리의 벌을 돌보던 미국의 한 양봉업자는 충격에 휩싸였다. 단 몇 주 만에 돌보던 벌의 50%에 이르는 4000개의 벌통을 잃었기 때문이다. 다른 양봉업자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60~70%에 이르는 벌을 잃은 이도 있었다. 2006년과 2007년 말, 2008년 겨울에도 벌들은 한꺼번에 사라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현상을 학계는 ‘벌집 군집 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고 불렀다. 미국 36개 주에서 벌집 군집 중 3분의 1 이상이 사라졌고, 유럽 일부 지역과 인도 브라질 등에서도 발견됐다.

과거에도 꿀벌이 집단 폐사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1620년대 바로아 응에라는 벌레, 1970년대 검은여왕벌 바이러스 등 전염병, 벌들의 늑대라 불리는 벌집나방 등 수많은 적이 벌을 공격, 떼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자연상태에서 집단 폐사를 겪은 벌들은 그들만의 생존 본능으로 곧 개체 수를 회복했다.

CCD는 자연 폐사와 다르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해마다 평균 30%의 꿀벌이 줄어들고 있다. 유엔환경계획은 긴급 보고를 통해 “세계에서 꿀벌이 감소하는 현상이 심각하며 꿀벌 감소 현상이 빨라질 경우 생태계 교란은 물론 세계 식량 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CCD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도시화’를 가장 유력한 폐사 요인으로 보고 있다. 생존의 근간이 되던 산과 숲, 나무와 꽃이 사라지면서 꿀벌들이 집을 잃고 헤매다 죽거나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된다는 것이다.

○EU 살충제 금지 등 대책 마련

휴대폰 등 이동통신 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꿀벌의 이상 행동을 유발, 정상적인 군집생활을 망쳐 떼죽음에 이르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스위스 생물학자이자 꿀벌 전문가인 다니엘 파브르는 벌집 안에 휴대폰을 놓아두고 꿀벌의 반응을 관찰하다가 전화가 통화 모드에 있을 때 꿀벌이 ‘일벌 장단’이라는 특이한 소리를 내는 것을 알아냈다. 이 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드문 현상으로 일부 개체가 새로운 벌집을 만들어 옮기는 분봉 시기가 아닐 때 이 같은 소리가 나면 군집 내 혼란이 발생, 군집이 붕괴한다고 했다.

유럽에서는 살충제를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포유류에는 거의 독성이 없고 곤충에만 작용하는 살충제가 무분별하게 쓰이면서 꿀벌의 신경계를 교란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관련 연구를 진행한 일리노이대 교수진은 “죽은 벌에서 100가지가 넘는 살충제 및 화학 약품, 기생충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꿀벌의 개체 수 감소 원인으로 지목된 네오코티노이드 계열의 살충제 3종에 대해 2년간 사용 금지 조치를 내렸다. 꿀벌 감소를 이유로 살충제 사용을 금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말부터 시행되는 이 조치는 꿀벌이 많이 꼬이는 특정 작물에 우선 적용되며 일반 가정의 정원에서도 사용이 금지된다.

미국 농무부도 2000년대부터 코넬대 등과 손잡고 꿀벌 실종의 원인을 찾고 있다. 농무부는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질병과 기생충, 살충제, 먹이 부족, 종 다양성 부족 등이 꿀벌의 생존을 어렵게 하는 총체적 난국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