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변양호 신드롬' 못벗어 안타까워"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사진)가 책을 펴냈다. 관료 사회에 ‘변양호 신드롬(책임 추궁이 두려워 정책 결정을 꺼리는 보신주의)’을 낳게 했던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혹 사건’의 당사자다.

책 제목은 변양호 신드롬(부제:긴급체포로 만난 하나님, 홍성사 출간). 과거 4년4개월에 걸친 검찰과의 법정 싸움 과정을 담았다.

2008년 초고(草稿)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출간 여부를 놓고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변 대표는 “2008년 썼던 초고에는 검찰에 대한 적개심을 주로 담았지만 이후 방향을 완전히 바꿔 2010년 초 새로운 원고를 완성해 출판사에 맡겼으나 출간이 차일피일 미뤄졌다”며 “왜 늦어졌는지 묻지도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는 “한참 지난 시점에 책을 펴내는 것에 대해 주변의 만류가 적지 않았다”며 “하지만 기록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출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변양호 신드롬’ 책 표지
‘변양호 신드롬’ 책 표지
이 책에는 2006년 6월12일 출근길 긴급체포로 시작돼 2010년 10월14일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막을 내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의 법정 다툼 과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변 대표는 ‘현대자동차 로비의혹 사건’과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혹 사건’에 동시에 연루돼 법정 다툼을 벌였다. 두 사건으로 130차례 재판을 받았으며 3심까지 간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10개월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책은 긴급체포된 첫날 검찰 조사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변 대표는 “검찰과의 싸움은 힘겹다. 검사는 같은 사항을 묻고 또 묻고 또 묻는다. 인내력과 체력이 필요하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내일 또 오라고 한다. 때리는 고문은 없어졌지만 원하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계속 가야 한다. 새로운 형태의 고문”이라고 썼다. 조사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싸움이 시작됐다는 걸 감지했다. 싸움이 진행되면서 대검 중수부의 진면목을 점점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언론 보도에 대한 섭섭함도 적었다.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날 주요 언론은 톱뉴스로 다뤘다. 변 대표는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돼도 유죄가 선고된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했다. 하지만 언론은 유죄로 보고 기사를 썼다”고 했다.

변 대표는 구치소에 수감된 지 6일째 되는 날, 룸메이트가 읽던 ‘쉬운성경’이란 책을 빌려 읽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교에 귀의하게 된 과정, 이후 자신에게 뇌물을 줬다고 주장했던 모 회계법인 대표와 검찰을 용서하게 된 과정 등을 담담하게 적었다.

변 대표는 “용서를 했으면 잊어버려야지 왜 이렇게 기록을 남기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과거의 잘못은 사면하지만 진실은 밝히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고 적었다.

그는 “이 책에서 검찰에 대한 나의 적개심이 나타나 있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내 마음 상태”라고 했지만, 책 곳곳에는 사법시스템의 불합리한 점들이 기록돼 있다.

변 대표는 ‘변양호 신드롬’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 “나는 사무실에 수북하게 쌓여 있던 소송 사건 서류를 이제 모두 정리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후배 공무원들이 ‘변양호 신드롬’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공무원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몸을 던져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우리 사회가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