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왼쪽 세번째)이 12일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밀레니엄포럼에 참석해 정부의 공정거래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 노 위원장,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 문정숙 숙명여대 교수,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왼쪽 세번째)이 12일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밀레니엄포럼에 참석해 정부의 공정거래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 노 위원장,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 문정숙 숙명여대 교수,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12일 “‘갑을(甲乙) 관계’는 어느 한쪽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되는데 요즘 국회에서 논의되는 법안 중에는 어느 한쪽 현상만 보고 대증요법식으로 해결하려는 것 같아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남양유업 사태’로 사회적 논란이 된 본사와 대리점 간 관계만 해도 ‘을’인 대리점을 보호하기 위해 ‘갑’인 본사를 과도하게 옥죄면 본사가 유통채널을 바꿔 오히려 대리점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노 위원장은 또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관련, “부품 조달 등 이전부터 수직계열화된 내부거래는 막을 이유도, 막을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질의응답.

[한경 밀레니엄포럼] 노대래 "甲乙문제 法만으로 해결 못해…한번에 180도 틀면 경제마비"
▷문정숙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갑을 관계에 대해 정부가 잘못 개입하면 소비자 등 다른 경제적 약자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맞다. 그래서 어떤 행위가 금지돼야 하는지 제대로 원인 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만 강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물량 밀어내기에 대한 개념부터 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관련 데이터가 우선 축적돼야 한다. 대리점 제도는 유통체계의 핵심으로 업종별, 거래형태별 문제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달 초부터 유제품을 포함해 주류, 비알코올 음료, 라면, 화장품, 자동차 등 8개 분야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또한 대리점의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규제를 강화하면 비용이 증가하거나 다른 유통채널로 물량이 넘어가 대리점주가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현 단계에서 별도의 입법보다는 법 위반 행위를 효과적으로 적발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미비점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허노중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갑을이라는 것이 관계가 바뀌지 않는 영원한 개념은 아니다. 갑을이라는 용어로 편가르기하는 것은 문제다.

▷노 위원장=갑을 관계도 정상적으로 갈 수 있다. 최근 일부 대기업이 아웃소싱을 늘리고 2~3차 협력사까지 아우르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로 애정을 갖고 동질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갑을 관계의 문제를 법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이영란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노 위원장이 일명 남양유업 특별법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대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노 위원장=경제 활동은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이익에 반해 법을 만들면 경제가 법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이익을 찾아 탈법으로 흐르게 된다. 경제 관련 법을 만들 때는 현재 흘러가는 경제적 이익의 방향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1도씩 조정해 단계적으로 180도를 틀어야지 한번에 180도로 가면 경제가 마비된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대기업집단의 사익 편취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기업도 있는데 너무 둔탁한 도끼를 사용하려는 것 같다.

▷노 위원장=인사청문회 때부터 총수 지분율 30% 이상인 기업의 일감몰아주기를 무조건 처벌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정치지 정책이 아니다. 관련 행위가 발견되면 처벌하는 것은 맞지만 ‘지분 30%’라는 상태만 보고 법을 집행할 수는 없다. 그런 법은 만들어도 위헌 소지가 크다. 수직계열화나 효율성을 위한 투자 등 지금까지 해오던 정상적인 내부거래는 막을 이유도, 방법도 없다. 정상적인 거래는 정부에서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다만 기득권을 활용한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총수일가 개인에 대한 지원, 사업 기회 유용 등은 반드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최 원장=‘악마는 각론에 있다’는 말이 있다. 관련 법 개정에 따른 시행령 등 구체적인 각론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노 위원장=각론에 천사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충분히 속도를 조절할 것이다.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옥죄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공정거래 관련 사항은 현실에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확실히 제어하고 있다. 기업들이 건의하는 합당한 사항들도 적극 검토할 것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최근 경제민주화 관련 법을 보면 공정한 시장 경쟁 보장보다는 경제적 약자 보호에 치중하는 것 같다.

▷노 위원장
=헌법 119조 2항에 나와 있듯이 경제적 약자도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조 1항에서는 경쟁 촉진을 말하지만 개인에 따라 능력 차이가 있고 이는 빈부 격차로 나타난다. 기업 차원에서 설명하면 특정 시장이 독과점 체제로 갈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적절히 조정해야 한다고 헌법에 나와 있다. 119조의 1항과 2항을 균형 있게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원가를 떨어뜨리는 것이 기업 활동의 본질이다. 원가 후려치기와 원가 혁신을 어떻게 구별하나.

▷노 위원장=부당한 단가 인하라고 할 때 부당성을 기준으로 해야지 단순히 단가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원사업자가 이익을 독식하고 하청업체에 아예 안 준다거나 이런 걸 문제삼아야지 가격만 보고 공정위가 개입해선 안 된다.

▷정 실장=최근 중소기업 관계자를 만나면 외국 기업들의 불공정거래가 더 심하다고 한다.

▷노 위원장=불공정거래 행위를 단속하는 공정거래법은 외국 기업에도 적용된다. 차별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 지사가 없는 외국 기업의 경우 국내 하도급법을 적용할 수 없다.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불공정거래 행위의 피해자가 그동안 비용 문제 등으로 법적 보호를 포기하는 문제가 있었다.

▷노 위원장=맞는 지적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핵심 기술을 탈취하면 3배 손해배상액을 물리도록 했지만 3년 동안 사례가 하나도 없었다. 실질적으로 관련 법이 작동하기 위해 정부가 소송을 지원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려고 한다.

▷김영기 (주)LG 부사장=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 현재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가질 때 해당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외국법인과 합작도 해야 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노 위원장=익히 잘 알고 있는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투자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는 상태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민간시장에서 공공기관도 함께 경쟁하는 경우 공정거래 차원에서 짚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노 위원장=이 분야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대학도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다보니 관련 학원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부분도 신경 쓰겠다.

김주완/고은이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