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법 정무위 통과] SI·건설·물류·광고 등 계열사 거래 '과징금 폭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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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집단 1519개 계열사 표적될 듯
재계 "공정위 임의 판단 부작용 우려"
재계 "공정위 임의 판단 부작용 우려"
#A그룹의 B사는 시스템통합(SI) 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다. 이 회사가 그룹 내 C계열사와 100억원 규모의 인트라넷 구축 사업을 수의계약했다고 가정해보자. 현행 공정거래법은 B사가 C사에서 ‘현저하게’ 낮은 가격에 사업을 따냈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가격이 ‘상당히’ 낮다고 판단되더라도 과징금을 매길 수 있게 된다. ‘상당한’의 범위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판단한다.
#D그룹은 주요 광고 제작 사업을 계열사인 E사에 맡기고 있다. E사는 이렇게 받은 광고 일감의 일부를 중소기업 F사에 하도급을 준다. 업계 관행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공정위가 D그룹이 F사와 직접 거래할 수 있음에도 E사를 중간에 끼워넣어 거래를 한다고 판단하면 E사에 과징금을 매길 수 있다.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시나리오다. 대기업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기업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공정위의 입증 절차를 쉽게 바꾸는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어떤 규제가 담겼나
기존 공정거래법은 대기업 내부거래 제재 요건을 엄격히 제한했다. 특정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자금 등을 지원할 때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할 때만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이 조항을 대폭 완화했다. ‘현저히’ 대신 ‘상당히’란 모호한 단어를 넣었다. 어떤 게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냐는 전적으로 공정위의 판단에 맡겼다. 가령 계열사에 대출해줄 때 금리를 0.1%포인트만 낮춰줘도 공정위가 ‘상당히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부당 내부거래에 해당한다.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행위를 제재하는 23조 2조항(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등 금지)도 신설했다. 제재 대상은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 총액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집단’으로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62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대기업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받는 내부거래는 △정상적 거래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해 수행할 경우 회사에 이익이 될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행위 △사업 능력, 기술력, 품질, 가격 등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하는 행위 등이다.
바꿔 말하면 특정 계열사에 헐값으로 일감을 몰아주거나 총수 일가가 경영권을 확보한 계열사에 일감을 넘겨주는 행위, 역량이 떨어지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를 하면 과징금(매출의 최대 5%)을 매기겠다는 의미다.
이른바 ‘통행세’ 관행도 규제한다. 대기업이 계열사가 아닌 중소기업 등과 거래할 수 있는데도 중간에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계열사)을 끼워넣어 거래를 하면서 이득을 챙기면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 계열의 광고·물류·SI·건설 등 하도급 관행이 흔한 사업 분야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기업 내부거래 사실상 제한”
정치권은 개정안에 대해 당초 입법안보다 한층 완화한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당초 입법안은 내부거래 제재 조항을 5장(경쟁 제한성)이 아닌 3장(경제력 집중 억제)에 넣고 총수 일가가 30%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가 내부거래로 이득을 챙길 경우 총수 일가를 처벌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는데, 개정안에는 이 내용을 뺐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공정거래법 3장에 내부거래 제재를 넣을 경우 정상적인 내부 거래로 계열사 매출이 늘어도 처벌하는 것으로 해석돼 정치권 내부에서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재계는 그러나 ‘뭐가 완화됐느냐’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3장에 넣기로 한 기업 내부거래 규제를 5장에 똑같이 넣어놓고선 제재 수위를 낮췄다고 하는 건 ‘조삼모사’란 게 재계 주장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경제계의 주장은 기업의 부당한 내부거래는 상법이나 형법, 상속·증여세법 등 기존 법률로도 충분히 제재할 수 있는데 왜 공정거래법에 또 다른 규제를 신설하느냐는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개정안은 바뀐 게 없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대기업 집단에 속하는 1519개 계열사가 공정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SI·건설·물류·상사 등은 물론 공정위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모든 내부거래가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주완/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D그룹은 주요 광고 제작 사업을 계열사인 E사에 맡기고 있다. E사는 이렇게 받은 광고 일감의 일부를 중소기업 F사에 하도급을 준다. 업계 관행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공정위가 D그룹이 F사와 직접 거래할 수 있음에도 E사를 중간에 끼워넣어 거래를 한다고 판단하면 E사에 과징금을 매길 수 있다.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시나리오다. 대기업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기업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공정위의 입증 절차를 쉽게 바꾸는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어떤 규제가 담겼나
기존 공정거래법은 대기업 내부거래 제재 요건을 엄격히 제한했다. 특정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자금 등을 지원할 때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할 때만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이 조항을 대폭 완화했다. ‘현저히’ 대신 ‘상당히’란 모호한 단어를 넣었다. 어떤 게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냐는 전적으로 공정위의 판단에 맡겼다. 가령 계열사에 대출해줄 때 금리를 0.1%포인트만 낮춰줘도 공정위가 ‘상당히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부당 내부거래에 해당한다.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행위를 제재하는 23조 2조항(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등 금지)도 신설했다. 제재 대상은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 총액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집단’으로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62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대기업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받는 내부거래는 △정상적 거래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해 수행할 경우 회사에 이익이 될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행위 △사업 능력, 기술력, 품질, 가격 등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하는 행위 등이다.
바꿔 말하면 특정 계열사에 헐값으로 일감을 몰아주거나 총수 일가가 경영권을 확보한 계열사에 일감을 넘겨주는 행위, 역량이 떨어지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를 하면 과징금(매출의 최대 5%)을 매기겠다는 의미다.
이른바 ‘통행세’ 관행도 규제한다. 대기업이 계열사가 아닌 중소기업 등과 거래할 수 있는데도 중간에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계열사)을 끼워넣어 거래를 하면서 이득을 챙기면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 계열의 광고·물류·SI·건설 등 하도급 관행이 흔한 사업 분야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기업 내부거래 사실상 제한”
정치권은 개정안에 대해 당초 입법안보다 한층 완화한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당초 입법안은 내부거래 제재 조항을 5장(경쟁 제한성)이 아닌 3장(경제력 집중 억제)에 넣고 총수 일가가 30%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가 내부거래로 이득을 챙길 경우 총수 일가를 처벌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는데, 개정안에는 이 내용을 뺐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공정거래법 3장에 내부거래 제재를 넣을 경우 정상적인 내부 거래로 계열사 매출이 늘어도 처벌하는 것으로 해석돼 정치권 내부에서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재계는 그러나 ‘뭐가 완화됐느냐’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3장에 넣기로 한 기업 내부거래 규제를 5장에 똑같이 넣어놓고선 제재 수위를 낮췄다고 하는 건 ‘조삼모사’란 게 재계 주장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경제계의 주장은 기업의 부당한 내부거래는 상법이나 형법, 상속·증여세법 등 기존 법률로도 충분히 제재할 수 있는데 왜 공정거래법에 또 다른 규제를 신설하느냐는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개정안은 바뀐 게 없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대기업 집단에 속하는 1519개 계열사가 공정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SI·건설·물류·상사 등은 물론 공정위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모든 내부거래가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주완/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