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30년새 6배…기후변화에 뒤처진 인프라, 禍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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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 따라잡기 - 유럽·캐나다·중국·인도 곳곳이 '거대한 호수'로
21세기판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대규모 폭우로 인한 홍수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어서다. 홍수의 강도는 물론 피해 규모도 점점 커져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다. 이달 중순 인도에서는 물난리로 수백명이 사망했다. 세계 홍수 발생 빈도는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1980년 무렵 연간 50여건 수준이던 홍수 발생 빈도는 최근 약 300건으로 6배가량 늘어난 상태다. 홍수 피해가 이처럼 자주 나타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구멍 뚫린 지구촌의 하늘
이달 초 1주일간 유럽 중부 및 동부 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다뉴브강과 엘베강이 범람했다. 평소 2m 정도이던 엘베강의 수위는 400년 만에 최고치인 8.91m까지 높아졌다. 이 여파로 독일 할레에서는 3만여명이 대피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산사태로 도로와 철로가 끊겼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도 상당 부분 침수됐다.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는 14세기에 놓인 도시의 상징 카를교를 지키기 위해 중장비가 동원됐다. 체코 정부는 홍수 피해액을 8억유로로 집계하고 있으며, 피해를 본 기업에 한시적으로 세금을 걷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홍수로 유럽에서 총 21명이 사망했다.
서유럽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지난 17일 내린 폭우로 프랑스 남서부 지역이 물에 잠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급상승한 기온으로 피레네 산맥 지역에 쌓였던 눈이 대거 녹아 흘러내리면서 홍수 피해를 키웠다. 기적의 샘물로 해마다 수백만명이 찾는 가톨릭 성지 루르드는 이번 홍수로 수개월간 폐쇄될 것이라고 전해졌다.
힌두교 성지로 유명한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州)에서도 이달 중순 발생한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홍수로 680여명이 사망했다. 예년보다 빨리 닥친 몬순(우기)이 피해를 키웠다. 산사태까지 겹쳐 사망자는 5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주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지난 19일 쓰촨성에 쏟아진 폭우가 홍수와 산사태로 이어져 460㏊의 농경지가 침수되고 6만6000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는 지난 20일부터 쏟아진 폭우로 엘보강이 범람하면서 4명이 죽고 수천명의 이재민을 냈다. 이번 홍수로 캐나다 최대 석유산업 지대인 캘거리는 전력망이 파괴돼 복구에만 최대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지구 온난화와 치수 실패가 원인
대륙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홍수는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 변화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폭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상학계에 따르면 탄소배출량 증가로 지구에 온실효과가 발생해 뜨거워진 대기가 수증기를 더 머금을 수 있게 된다. 지표면의 물은 더 많이 증발해 육지는 건조해지고 해양은 더 많은 수증기를 품은 기단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해양과 지표의 수증기 밀도 차가 커지면 바람을 타고 해양에서 육지로 이동하는 수증기의 양이 증가한다. 문제는 더 많은 수증기의 수송이 단시간에 많은 비를 내리게 해 홍수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 지표는 건조해져 가뭄이 들고, 한번 비가 오면 과도하게 많은 양이 단시간에 내려 홍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후 변화에 있지만, 이에 대한 대비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 변화가 만들어낸 폭우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 교수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홍수는 심화되는 기후 변화에도 수해에 대비할 수 있는 인프라를 늘리지 않은 탓”이라고 말했다.
급격한 도시화로 농경지가 감소하고 도로포장이 늘어나면서 지표의 물 저장 능력이 감소한 것도 홍수 피해를 키우는 문제점으로 꼽힌다. 땅에 흡수되지 못한 물이 지표면을 흐르면서 지반이 낮고, 배수 조건이 나쁜 곳으로 한꺼번에 몰려 홍수의 강도를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인도 우타라칸드주의 이번 홍수도 순례객을 겨냥한 호텔이 난립하고 대규모 삼림 벌채로 인해 땅의 물 저장 능력이 감소해 피해가 커졌다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렇게 지표의 물 저장 능력이 감소하면 빗물 펌프장, 임시 저류시설 등 수해방지시설이 잘 갖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홍수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폭우는 자주 발생하지만 세계는 갈수록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리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비가 단시간에 몰아서 내리기 때문에 지표에 저장해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적은 탓이다. 강수량이 적어서가 아니라 강수의 형태가 바뀌면서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다.
◆기후 변화 대응책 마련 촉구
폭우와 홍수에 따른 피해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글로벌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홍수 피해로 인한 독일의 경제 손실이 120억유로(약 18조원)까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독일산업협회(BDI)도 홍수 피해로 독일 경제 성장이 단기적으로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BMO캐피털마켓은 “캘거리 홍수로 캐나다 국내총생산(GDP) 중 20억달러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수 피해로 직격탄을 맞은 보험사들도 발을 구르고 있다. 독일의 재보험사 뮌헨리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홍수, 태풍, 가뭄 등의 자연재해는 1980년 300회에서 2012년 900회로 증가했다.
전 세계 보험업계를 대변하는 제네바협회는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영국 일부와 미국 플로리다 연안은 이미 보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영국 보험사들은 “정부가 수해 위험이 큰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험 보조금을 지급하라”고까지 요구하고 있다.
존 피츠패트릭 제네바협회 사무총장은 “각국 정부가 수해방지시설에 더 투자하고 수재위험지역에는 건축 허가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수해 방지를 위한 투자는 단기적으로 재정에 무리를 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홍수 피해시설을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여준다”며 “이는 오히려 정부 재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구멍 뚫린 지구촌의 하늘
이달 초 1주일간 유럽 중부 및 동부 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다뉴브강과 엘베강이 범람했다. 평소 2m 정도이던 엘베강의 수위는 400년 만에 최고치인 8.91m까지 높아졌다. 이 여파로 독일 할레에서는 3만여명이 대피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산사태로 도로와 철로가 끊겼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도 상당 부분 침수됐다.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는 14세기에 놓인 도시의 상징 카를교를 지키기 위해 중장비가 동원됐다. 체코 정부는 홍수 피해액을 8억유로로 집계하고 있으며, 피해를 본 기업에 한시적으로 세금을 걷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홍수로 유럽에서 총 21명이 사망했다.
서유럽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지난 17일 내린 폭우로 프랑스 남서부 지역이 물에 잠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급상승한 기온으로 피레네 산맥 지역에 쌓였던 눈이 대거 녹아 흘러내리면서 홍수 피해를 키웠다. 기적의 샘물로 해마다 수백만명이 찾는 가톨릭 성지 루르드는 이번 홍수로 수개월간 폐쇄될 것이라고 전해졌다.
힌두교 성지로 유명한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州)에서도 이달 중순 발생한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홍수로 680여명이 사망했다. 예년보다 빨리 닥친 몬순(우기)이 피해를 키웠다. 산사태까지 겹쳐 사망자는 5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주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지난 19일 쓰촨성에 쏟아진 폭우가 홍수와 산사태로 이어져 460㏊의 농경지가 침수되고 6만6000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는 지난 20일부터 쏟아진 폭우로 엘보강이 범람하면서 4명이 죽고 수천명의 이재민을 냈다. 이번 홍수로 캐나다 최대 석유산업 지대인 캘거리는 전력망이 파괴돼 복구에만 최대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지구 온난화와 치수 실패가 원인
대륙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홍수는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 변화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폭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상학계에 따르면 탄소배출량 증가로 지구에 온실효과가 발생해 뜨거워진 대기가 수증기를 더 머금을 수 있게 된다. 지표면의 물은 더 많이 증발해 육지는 건조해지고 해양은 더 많은 수증기를 품은 기단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해양과 지표의 수증기 밀도 차가 커지면 바람을 타고 해양에서 육지로 이동하는 수증기의 양이 증가한다. 문제는 더 많은 수증기의 수송이 단시간에 많은 비를 내리게 해 홍수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 지표는 건조해져 가뭄이 들고, 한번 비가 오면 과도하게 많은 양이 단시간에 내려 홍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후 변화에 있지만, 이에 대한 대비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 변화가 만들어낸 폭우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 교수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홍수는 심화되는 기후 변화에도 수해에 대비할 수 있는 인프라를 늘리지 않은 탓”이라고 말했다.
급격한 도시화로 농경지가 감소하고 도로포장이 늘어나면서 지표의 물 저장 능력이 감소한 것도 홍수 피해를 키우는 문제점으로 꼽힌다. 땅에 흡수되지 못한 물이 지표면을 흐르면서 지반이 낮고, 배수 조건이 나쁜 곳으로 한꺼번에 몰려 홍수의 강도를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인도 우타라칸드주의 이번 홍수도 순례객을 겨냥한 호텔이 난립하고 대규모 삼림 벌채로 인해 땅의 물 저장 능력이 감소해 피해가 커졌다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렇게 지표의 물 저장 능력이 감소하면 빗물 펌프장, 임시 저류시설 등 수해방지시설이 잘 갖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홍수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폭우는 자주 발생하지만 세계는 갈수록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리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비가 단시간에 몰아서 내리기 때문에 지표에 저장해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적은 탓이다. 강수량이 적어서가 아니라 강수의 형태가 바뀌면서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다.
◆기후 변화 대응책 마련 촉구
폭우와 홍수에 따른 피해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글로벌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홍수 피해로 인한 독일의 경제 손실이 120억유로(약 18조원)까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독일산업협회(BDI)도 홍수 피해로 독일 경제 성장이 단기적으로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BMO캐피털마켓은 “캘거리 홍수로 캐나다 국내총생산(GDP) 중 20억달러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수 피해로 직격탄을 맞은 보험사들도 발을 구르고 있다. 독일의 재보험사 뮌헨리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홍수, 태풍, 가뭄 등의 자연재해는 1980년 300회에서 2012년 900회로 증가했다.
전 세계 보험업계를 대변하는 제네바협회는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영국 일부와 미국 플로리다 연안은 이미 보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영국 보험사들은 “정부가 수해 위험이 큰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험 보조금을 지급하라”고까지 요구하고 있다.
존 피츠패트릭 제네바협회 사무총장은 “각국 정부가 수해방지시설에 더 투자하고 수재위험지역에는 건축 허가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수해 방지를 위한 투자는 단기적으로 재정에 무리를 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홍수 피해시설을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여준다”며 “이는 오히려 정부 재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