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송한 경제민주화법] 法조항 마저 모호한 경제민주화 법안…기업 '법률 리스크'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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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 "자의적 판단 불가피" 인정
졸속·표적입법 대응위해 법률 자문 급증
관료 출신 로펌행…커넥션 심화 우려
졸속·표적입법 대응위해 법률 자문 급증
관료 출신 로펌행…커넥션 심화 우려
대법원2부는 2007년 1월 기업 간 부당지원 행위에 관한 판례를 내놨다. 현대중공업이 1998년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채권을 시가보다 비싸게 매입한 사건에 대한 최종심에서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23조에 따라 ‘현저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로 보고 검찰에 고발한 게 소송의 발단이 됐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현저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는 지원성 거래 규모 및 급부와 반대급부의 차이, 지원 행위로 인한 경제상 이익, 지원 기간과 횟수, 지원을 받는 객체의 경제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에도 ‘현저성’의 구체적 사례나 객관적 기준이 없는 만큼 판사들이 사안마다 주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공식 인정한 셈이다.
○애매한 조항 많은 경제민주화법
대법원은 이제 현저성뿐 아니라 ‘상당성’에 대한 판단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국회가 지난 2일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행위 성립 요건을 ‘현저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로 바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공정위와 법원이 현저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처럼 상당성도 임의로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정위와 법원의 재량권을 확대하려는 의지는 법령 곳곳에 숨어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23조2의 1항 2호가 대표적이다. 이 조항에선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해 수행할 경우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행위’를 부당 행위로 규정했다. 여기서 ‘사업기회’라는 용어가 논란이 되고 있다. 곧 개정할 공정거래법 시행령에서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롯데시네마가 영화관 매점을 직영하지 않고 롯데그룹 오너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매점 운영권을 둔 것을 부당한 사업기회 사례로 설명했다. 그러나 앞으로 오너가 사재를 출연, 신사업을 시작해 나중에 성공하면 이를 사업기회 제공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한다. 박종학 전국경제인연합회 선임조사역(변호사)은 “모기업에서 분사한 회사가 성공한 것도 사업기회 제공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며 “모든 걸 공정위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법 23조2나 하도급법 16조2에 나와 있는 ‘부당성’도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모호해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로펌을 찾고 있다. 애매한 법령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헷갈려 로펌에 있는 공무원 출신의 해석을 듣고 싶어서다.
○쏟아지는 법 … 너도나도 로펌행
19대 국회는 지난 5월16일 제출 법안 수 5000건을 돌파했다. 작년 5월 말 개원한 지 352일 만의 일이다. 역대 국회 중 최단 기록이다. 입법 활동에 충실한 국회를 정면 비판할 수 없지만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입법을 하고 있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외국계 기업인 아이스크림 업체 하겐다즈도 경제민주화로 피해를 볼 뻔했다.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기 위해 세법과 공정거래법을 개정할 때 일감몰아주기 혜택을 받는 수혜 법인의 범위가 문제였다. ‘국내 거주자나 법인으로 한정한다’는 규정을 두지 않아 결국 해외에 있는 본사 회장이 세금을 내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 하겐다즈는 한 대형로펌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그 로펌은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로 국회의원들을 설득했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최종 법안에는 외국계 기업이 과세 대상에서 빠졌다.
대기업을 규제하려는 표적 입법도 기업들의 로펌행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5월 편의점협회 임원진은 급히 법무법인 태평양을 찾았다. 국회에서 ‘프랜차이즈법’ 개정안이 논의되던 때였다. 개정안에는 편의점 업체를 궁지로 몰아갈 수 있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특히 신규 가맹점주에게 예상 매출을 보여주고 향후 실제 매출과 차이가 나면 허위 과장 여부에 따라 벌금을 내도록 한 게 편의점 업체 입장에선 독소 조항이어서 이를 고쳐보기 위해서였다.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는 “경제민주화 입법 움직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기업들이 로펌에 자문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룰’을 만드는 게임에 개입해야 나중에 탈법이나 위법의 소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인설/정영효 기자 surisuri@hankyung.com
대법원은 판결에서 “현저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는 지원성 거래 규모 및 급부와 반대급부의 차이, 지원 행위로 인한 경제상 이익, 지원 기간과 횟수, 지원을 받는 객체의 경제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에도 ‘현저성’의 구체적 사례나 객관적 기준이 없는 만큼 판사들이 사안마다 주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공식 인정한 셈이다.
○애매한 조항 많은 경제민주화법
대법원은 이제 현저성뿐 아니라 ‘상당성’에 대한 판단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국회가 지난 2일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행위 성립 요건을 ‘현저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로 바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공정위와 법원이 현저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처럼 상당성도 임의로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정위와 법원의 재량권을 확대하려는 의지는 법령 곳곳에 숨어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23조2의 1항 2호가 대표적이다. 이 조항에선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해 수행할 경우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행위’를 부당 행위로 규정했다. 여기서 ‘사업기회’라는 용어가 논란이 되고 있다. 곧 개정할 공정거래법 시행령에서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롯데시네마가 영화관 매점을 직영하지 않고 롯데그룹 오너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매점 운영권을 둔 것을 부당한 사업기회 사례로 설명했다. 그러나 앞으로 오너가 사재를 출연, 신사업을 시작해 나중에 성공하면 이를 사업기회 제공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한다. 박종학 전국경제인연합회 선임조사역(변호사)은 “모기업에서 분사한 회사가 성공한 것도 사업기회 제공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며 “모든 걸 공정위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법 23조2나 하도급법 16조2에 나와 있는 ‘부당성’도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모호해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로펌을 찾고 있다. 애매한 법령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헷갈려 로펌에 있는 공무원 출신의 해석을 듣고 싶어서다.
○쏟아지는 법 … 너도나도 로펌행
19대 국회는 지난 5월16일 제출 법안 수 5000건을 돌파했다. 작년 5월 말 개원한 지 352일 만의 일이다. 역대 국회 중 최단 기록이다. 입법 활동에 충실한 국회를 정면 비판할 수 없지만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입법을 하고 있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외국계 기업인 아이스크림 업체 하겐다즈도 경제민주화로 피해를 볼 뻔했다.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기 위해 세법과 공정거래법을 개정할 때 일감몰아주기 혜택을 받는 수혜 법인의 범위가 문제였다. ‘국내 거주자나 법인으로 한정한다’는 규정을 두지 않아 결국 해외에 있는 본사 회장이 세금을 내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 하겐다즈는 한 대형로펌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그 로펌은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로 국회의원들을 설득했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최종 법안에는 외국계 기업이 과세 대상에서 빠졌다.
대기업을 규제하려는 표적 입법도 기업들의 로펌행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5월 편의점협회 임원진은 급히 법무법인 태평양을 찾았다. 국회에서 ‘프랜차이즈법’ 개정안이 논의되던 때였다. 개정안에는 편의점 업체를 궁지로 몰아갈 수 있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특히 신규 가맹점주에게 예상 매출을 보여주고 향후 실제 매출과 차이가 나면 허위 과장 여부에 따라 벌금을 내도록 한 게 편의점 업체 입장에선 독소 조항이어서 이를 고쳐보기 위해서였다.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는 “경제민주화 입법 움직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기업들이 로펌에 자문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룰’을 만드는 게임에 개입해야 나중에 탈법이나 위법의 소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인설/정영효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