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이명희 한국현대사학회장, "한국사 교과서에 자본주의 이끈 기업·기업인 업적 다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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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60년 … 교육현장서 바라본 현대사'
경제사 구체 언급 않고 성장·경쟁력만 표면적 접근
'우편향' 딱지 붙이기보다 자본주의 발전 해명 중요
6·25전쟁은 창조적 파괴…경제 기적의 토대 마련
경제사 구체 언급 않고 성장·경쟁력만 표면적 접근
'우편향' 딱지 붙이기보다 자본주의 발전 해명 중요
6·25전쟁은 창조적 파괴…경제 기적의 토대 마련
오는 27일이면 6·25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60년. 하지만 6·25전쟁을 비롯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시기 등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인식하는 한국 사회의 갈등은 전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의 역사교과서와 이를 집필한 한국현대사학회에 붙은 ‘우편향’ 딱지가 대표적이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교과서에 대한 악성 루머가 퍼졌고, 야당 국회의원들까지 가세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지난 1일 한국현대사학회 2대 회장에 취임했다. 한국 현대사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는 자리다. 지난 5일 그를 만나 정전 60년을 맞는 6·25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역사를 인식하는 자세, 한국의 미래에 관해 폭넓게 들어봤다.
▷한국현대사학회는 어떤 계기로 창립됐습니까.
“현대사 인식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양한 관점이 어우러지고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현재는 1980년대의 이데올로기적 요구에서 비롯된 민중사관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진보적 변혁운동을 하던 활동가들은 현대사 연구에 대한 관심이 현장 운동 이상으로 컸어요. 이론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죠. 2001년 7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 민중사관에 입각한 교과서가 학교에 공급됐고, 교사들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엄정한 사료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 전체가 납득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현대사 연구와 교과서 보급이 시급합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공개 전에 논란이 됐습니다.
“검정 교과서는 최종 통과 전까지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읽어 보지도 않은 사람들에 의해 악성 루머가 퍼졌어요. 교학사의 모든 책을 불매운동하겠다는 협박 전화 때문에 작업이 중단될 뻔했습니다. 교학사 교과서 담당 이사로부터 ‘못 낼 것 같다’는 문자메시지까지 왔어요. 겨우 설득해서 발행하기로 하고 준비 중이지만 씁쓸하더군요.”
▷한국현대사학회도 곤욕을 치렀죠.
“우리 학회에 현대사 전공자가 8명밖에 없다고 공격해요. 황당합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사’를 쓰려면 정치·경제사뿐 아니라 교육사 문화사 스포츠사와 같은 미시사까지 포괄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전공자들을 모신 건데 전공자가 없다니요. 이미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에게는 탈퇴하라는 협박 전화도 오고 있습니다.”
▷역사가 접점 없는 투쟁의 장이 된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이 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변혁 운동의 기저에 역사가 있는 거죠. 전부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자신과 다른 걸 참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상대를 선의의 학술적 경쟁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전체주의는 자유주의의 적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 싸움이 크게 붙는 것 같습니다.”
그는 현대사를 둘러싼 투쟁의 단적인 예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 전쟁’을 들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이 영상은 올초 유튜브에서 100만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이 학회장은 “식민지 병합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어떤 대상에 대한 ‘전쟁’으로 보고 있는 제목 자체에 증오심이 깔려 있다”며 “영상에서 말하는 그 증오의 대상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
▷독재자를 왜 옹호하느냐는 접근이 설득력을 얻은 것 아닐까요.
“어떤 한 사람에게 하나의 딱지만 붙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역사적 인물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독재를 한 부분이 있죠. 하지만 다른 면도 있습니다. 이승만 집권 후반기에는 이 전 대통령을 통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부패한 반민주 인사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에 빠져 본인이 독재를 하는 줄도 모르고 독재를 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잘했다는 게 아닙니다. 개인의 책임뿐 아니라 대한민국 지도층의 한계라는 얘기죠. 이승만 개인이 물러난다고 그 한계가 사라집니까. 한계를 제대로 연구해서 입체적으로 봐야 계속 이어지는 못난 모습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내재적 접근법’으로 보면서 우리 현대사는 그렇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내재적 접근법은 역사 연구의 기본과도 같습니다.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기괴한 사건이나 대상이라고 해도 일단 당시 상황이나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게 내재적 접근법입니다. 당시 상황과 오늘날의 입장 모두에서 바라보고 본질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북한 연구를 할 때 사용해 성과를 거뒀죠.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일제 강점기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내재적 접근이 전혀 없고 현재 시점에서 결론을 내놓고 끼워 맞추기 급급해요. 해석과 평가 이전에 내재적 접근을 통해 사실 자체를 인식해야 하는 건 기본입니다.”
▷올해로 정전 60년을 맞습니다.
“정전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해가 돼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전에는 전쟁의 참혹상과 피해에만 주목했습니다. 당연하고 의미 있는 반성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전쟁의 다른 의미는 어떤 것이 있는지도 파악해봐야 합니다. 일제 36년을 거치고 나서도 우리에게 남아 있던 전통적 사고 체계와 신분 의식이 전쟁을 통해 완전히 해체됐고 그게 발전의 토대가 된 측면이 있습니다. 또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는 대한민국에서 설 수 없는 이론이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공산주의를 배제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보기엔 무리한 일도 있었고 참혹한 비극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통해서 우리의 국체(國體)는 분명히 확립됐습니다. 사회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 사람들이 지역적으로 많이 섞였다는 겁니다. 전통사회에서는 태어난 데서 계속 살았지만 전쟁을 통해 말하자면 ‘비빔밥’이 됐어요. 부산에서 서울로도 가고, 북한 지식인 계층도 남으로 많이 내려오고요. 6·25전쟁은 말하자면 시바 신(神)처럼, 파괴인 동시에 창조이기도 했던 것이죠.”
▷경제사 교육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사 교과서에 경제사라는 게 없다시피 합니다. (교과서를 보여주며) 경제 성장을 표면적으로만 접근하고, 그나마도 바로 정치·사회적 요인으로 환원됩니다. 경제사라면 우리 경제가 세계적으로 어떤 상황에 있었고 어떤 경쟁력이 있었는지 밝혀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조금의 분석도 없어요. 경제 주체인 기업과 기업인도 거의 서술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교학사 교과서는 친 자본적일 것 같아서 문제’라고 하더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해명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닙니까. 계급적 편견과 접근이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일반화돼 있어요.”
▷교사 생활을 8년 넘게 하셨는데요.
“어떻게 보면 교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유학을 떠나게 됐고 지금에 이르게 됐어요. 중학교 교사를 할 때 보니 아이들이 자기 주장은 잘하는데 남의 얘기는 잘 못 듣는 경향이 있더군요. 저는 이 문제를 역사 교육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의 시각으로 보는 거니까요. 그래서 더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습니다. 정책 관련 일이든 현장 운동을 할 때든 교사 경험은 큰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 계획은.
“현행 역사교과서는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거꾸로 분열을 일으키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일단 현대사학회장으로서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를 계속해 나갈 생각이에요. 나아가 세계사 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우리 세계사 교육은 서양은 따라가야 할 대상, 동양은 우월감을 느끼는 대상이라는 낡은 틀에 갇혀 있어요. 이런 마인드로는 한국인이 세계로부터 인정 받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인류가 무엇을 이룩했고 동시에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지를 배우며 큰 안목을 갖게 해주는 게 세계사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세계 무대에서 뭘 해야 할지도 알 수 있죠. 그게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 아닐까요.”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 이명희 회장은 누구
경북 문경에서 1960년 태어나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 강동중, 서운중, 오금중, 국립 국악고에서 역사 교사로 8년간 근무했다. 그후 일본 쓰쿠바대에서 역사교육학 석·박사 학위를 따고 1998년 귀국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책임연구원과 국가수준교육성취도평가팀장, 한국외국어대 교육대학원 겸임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있다.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 위원 등 교육 및 사회분야에서 국정 자문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2011년 전임 회장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함께 한국현대사학회 창설을 주도했고 학회 연구위원장, 교과서위원장을 거쳐 지난 1일 임기 2년의 제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지난 1일 한국현대사학회 2대 회장에 취임했다. 한국 현대사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는 자리다. 지난 5일 그를 만나 정전 60년을 맞는 6·25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역사를 인식하는 자세, 한국의 미래에 관해 폭넓게 들어봤다.
▷한국현대사학회는 어떤 계기로 창립됐습니까.
“현대사 인식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양한 관점이 어우러지고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현재는 1980년대의 이데올로기적 요구에서 비롯된 민중사관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진보적 변혁운동을 하던 활동가들은 현대사 연구에 대한 관심이 현장 운동 이상으로 컸어요. 이론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죠. 2001년 7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 민중사관에 입각한 교과서가 학교에 공급됐고, 교사들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엄정한 사료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 전체가 납득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현대사 연구와 교과서 보급이 시급합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공개 전에 논란이 됐습니다.
“검정 교과서는 최종 통과 전까지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읽어 보지도 않은 사람들에 의해 악성 루머가 퍼졌어요. 교학사의 모든 책을 불매운동하겠다는 협박 전화 때문에 작업이 중단될 뻔했습니다. 교학사 교과서 담당 이사로부터 ‘못 낼 것 같다’는 문자메시지까지 왔어요. 겨우 설득해서 발행하기로 하고 준비 중이지만 씁쓸하더군요.”
▷한국현대사학회도 곤욕을 치렀죠.
“우리 학회에 현대사 전공자가 8명밖에 없다고 공격해요. 황당합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사’를 쓰려면 정치·경제사뿐 아니라 교육사 문화사 스포츠사와 같은 미시사까지 포괄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전공자들을 모신 건데 전공자가 없다니요. 이미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에게는 탈퇴하라는 협박 전화도 오고 있습니다.”
▷역사가 접점 없는 투쟁의 장이 된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이 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변혁 운동의 기저에 역사가 있는 거죠. 전부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자신과 다른 걸 참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상대를 선의의 학술적 경쟁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전체주의는 자유주의의 적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 싸움이 크게 붙는 것 같습니다.”
그는 현대사를 둘러싼 투쟁의 단적인 예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 전쟁’을 들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이 영상은 올초 유튜브에서 100만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이 학회장은 “식민지 병합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어떤 대상에 대한 ‘전쟁’으로 보고 있는 제목 자체에 증오심이 깔려 있다”며 “영상에서 말하는 그 증오의 대상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
▷독재자를 왜 옹호하느냐는 접근이 설득력을 얻은 것 아닐까요.
“어떤 한 사람에게 하나의 딱지만 붙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역사적 인물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독재를 한 부분이 있죠. 하지만 다른 면도 있습니다. 이승만 집권 후반기에는 이 전 대통령을 통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부패한 반민주 인사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에 빠져 본인이 독재를 하는 줄도 모르고 독재를 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잘했다는 게 아닙니다. 개인의 책임뿐 아니라 대한민국 지도층의 한계라는 얘기죠. 이승만 개인이 물러난다고 그 한계가 사라집니까. 한계를 제대로 연구해서 입체적으로 봐야 계속 이어지는 못난 모습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내재적 접근법’으로 보면서 우리 현대사는 그렇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내재적 접근법은 역사 연구의 기본과도 같습니다.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기괴한 사건이나 대상이라고 해도 일단 당시 상황이나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게 내재적 접근법입니다. 당시 상황과 오늘날의 입장 모두에서 바라보고 본질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북한 연구를 할 때 사용해 성과를 거뒀죠.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일제 강점기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내재적 접근이 전혀 없고 현재 시점에서 결론을 내놓고 끼워 맞추기 급급해요. 해석과 평가 이전에 내재적 접근을 통해 사실 자체를 인식해야 하는 건 기본입니다.”
▷올해로 정전 60년을 맞습니다.
“정전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해가 돼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전에는 전쟁의 참혹상과 피해에만 주목했습니다. 당연하고 의미 있는 반성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전쟁의 다른 의미는 어떤 것이 있는지도 파악해봐야 합니다. 일제 36년을 거치고 나서도 우리에게 남아 있던 전통적 사고 체계와 신분 의식이 전쟁을 통해 완전히 해체됐고 그게 발전의 토대가 된 측면이 있습니다. 또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는 대한민국에서 설 수 없는 이론이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공산주의를 배제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보기엔 무리한 일도 있었고 참혹한 비극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통해서 우리의 국체(國體)는 분명히 확립됐습니다. 사회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 사람들이 지역적으로 많이 섞였다는 겁니다. 전통사회에서는 태어난 데서 계속 살았지만 전쟁을 통해 말하자면 ‘비빔밥’이 됐어요. 부산에서 서울로도 가고, 북한 지식인 계층도 남으로 많이 내려오고요. 6·25전쟁은 말하자면 시바 신(神)처럼, 파괴인 동시에 창조이기도 했던 것이죠.”
▷경제사 교육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사 교과서에 경제사라는 게 없다시피 합니다. (교과서를 보여주며) 경제 성장을 표면적으로만 접근하고, 그나마도 바로 정치·사회적 요인으로 환원됩니다. 경제사라면 우리 경제가 세계적으로 어떤 상황에 있었고 어떤 경쟁력이 있었는지 밝혀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조금의 분석도 없어요. 경제 주체인 기업과 기업인도 거의 서술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교학사 교과서는 친 자본적일 것 같아서 문제’라고 하더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해명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닙니까. 계급적 편견과 접근이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일반화돼 있어요.”
▷교사 생활을 8년 넘게 하셨는데요.
“어떻게 보면 교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유학을 떠나게 됐고 지금에 이르게 됐어요. 중학교 교사를 할 때 보니 아이들이 자기 주장은 잘하는데 남의 얘기는 잘 못 듣는 경향이 있더군요. 저는 이 문제를 역사 교육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의 시각으로 보는 거니까요. 그래서 더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습니다. 정책 관련 일이든 현장 운동을 할 때든 교사 경험은 큰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 계획은.
“현행 역사교과서는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거꾸로 분열을 일으키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일단 현대사학회장으로서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를 계속해 나갈 생각이에요. 나아가 세계사 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우리 세계사 교육은 서양은 따라가야 할 대상, 동양은 우월감을 느끼는 대상이라는 낡은 틀에 갇혀 있어요. 이런 마인드로는 한국인이 세계로부터 인정 받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인류가 무엇을 이룩했고 동시에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지를 배우며 큰 안목을 갖게 해주는 게 세계사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세계 무대에서 뭘 해야 할지도 알 수 있죠. 그게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 아닐까요.”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 이명희 회장은 누구
경북 문경에서 1960년 태어나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 강동중, 서운중, 오금중, 국립 국악고에서 역사 교사로 8년간 근무했다. 그후 일본 쓰쿠바대에서 역사교육학 석·박사 학위를 따고 1998년 귀국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책임연구원과 국가수준교육성취도평가팀장, 한국외국어대 교육대학원 겸임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있다.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 위원 등 교육 및 사회분야에서 국정 자문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2011년 전임 회장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함께 한국현대사학회 창설을 주도했고 학회 연구위원장, 교과서위원장을 거쳐 지난 1일 임기 2년의 제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