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편] 국민연금, 덩치 14배 커졌는데…운용방식은 15년째 '제자리'

마켓인사이트 7월15일 오후 1시58분

국민연금 기금은 1997년 말 28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392조원으로 약 14배 불었다. 국민의 노후 안전판으로서 국내 금융·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덩달아 커졌다. 그런데 지배구조는 그대로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단 한 차례 바뀌었을 뿐이다. 연금 전문가들이 “지배구조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경고하고 정부가 기금운용체계 개편에 들어간 이유다.

정부는 문제점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2003년부터 두 차례 제도 개편 방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법안을 통과시키지는 못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는 것과 달리 기금운용체계 개편은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내용도 없다. 운용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보험료율을 2%포인트 인하하는 효과(김재원 새누리당 의원)를 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세계 3위 연기금 규모에 맞는 지배구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왜 바꾸나

기금운용본부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받고 있다. 첫째, 전문성과 독립성이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위원 수가 20명에 이른다. 외견상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 대표가 12명으로 과반수인데 전문성이 부족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 정부 측 위원(6명)도 불필요하게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에 대한 주주권을 행사할 때마다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둘째,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작년 말 기준 기금운용본부 인원은 161명으로 전체(4690명) 공단 직원의 3.4%에 불과하다. 기금운용본부의 역할은 기금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인데 공단을 경영하는 CEO(이사장)는 기금운용본부보다 공단 전체 관리 감독에 힘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투자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 않는 공단 이사장이 기금운용위원회 멤버가 되는 구조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

공단에서 떨어져나오면 예산과 인사상 자율성을 높일 수 있다. 고급 인력을 유치하고 우수 인력이 빠져나가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10년 이상 장기 투자안을 다뤄야 하는데 기금운용본부 평균 근속 연수는 3년6개월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어떻게 바뀌나

기금운용발전위가 제안한 모델은 2008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편안 및 지난해 김재원 의원이 낸 국민연금법 개정안과 큰 틀에서 비슷하다. 기금운용조직을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독립시키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는 내용이다. 글로벌 연기금에 컨설팅을 제공하는 타워스왓슨의 복재인 부사장은 “선진국 대형 연기금은 대부분 운용 조직을 별도 법인화하거나 독립성을 높이는 추세”라고 전했다.

기금운용발전위 관계자는 “정부 책임성과 가입자 대표성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했다”고 말했다. 2008년 정부의 개편안은 정부와 연결 고리가 약했다. 한국은행과 금융통화위원회 모델에 가깝다. 기금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는 정부가 책임감을 더 갖고 기금을 운용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개편안에 영향을 미쳤다. ‘민간 전문가 투자 결정=최선책’이라는 신화가 깨졌다.

두뇌 조직인 기금운용위뿐 아니라 집행조직(공사)에 대해 구체적인 발전 방안을 제시한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기능과 역할이 중복된다는 비판을 받았던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기금운용발전위는 중장기 자산 운용(배분) 전략과 인사, 성과 평가 시스템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5년 전에는 논의 자체가 없었던 내용이다.

열쇠는 국회가 쥐고 있다. 법률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관계자는 “9월 정기 국회에서 기금운용조직 개편에 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기금운용조직을 별도 법인화하는 데 반대하는 야당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좌동욱/이태훈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