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뮤지컬은 문화산업의 대표선수다
지난해 한 예매처가 집계한 공연 매출액은 3400억원으로, 이 중 절반이 뮤지컬 매출이다. 예매처의 시장 지배력이 70% 정도라고 치면 국내의 뮤지컬 티켓 매출은 2500억원, 기업 투자와 후원액을 포함하면 약 3000억원 정도를 한국의 뮤지컬 시장 규모로 추정할 수 있다. 1조원을 육박하는 영화산업에 비하면 아직 규모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성장 잠재력은 작지 않다.

공연시장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20%씩 성장했다. 성장을 주도한 것은 뮤지컬이다. 2000년 라이선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10개월간 장기 공연하면서 뮤지컬의 공연 시장 지배력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 신작들이 2, 3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수입될 정도로 빠르게 소개됐고 이제는 오스트리아, 체코 등 유럽산 뮤지컬까지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신나는 댄스에 몸을 싣고 인물의 감정을 노래로 터뜨리는 이 독특한 장르는 10만원이 훨씬 넘는 고가의 티켓에도 불구하고 군부대 홍보영상의 패러디 대상으로 활용될 만큼 대중에게 친숙한 문화상품이 됐다.

물론 관객의 선호가 대극장 중심의 해외 라이선스 작품에 집중되면서 매출의 80%를 외국작품이 차지하고 있으며 라이선스 확보를 위한 국내 제작사 간 경쟁은 로열티 상승을 불러왔다. 국내 관객이 낸 금액의 15% 이상이 공연 성패와 무관하게 해외 원저작권자에게 지급되면서, 벌어서 남 좋은 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됐다.

흥미로운 것은 로열티 상납경쟁이 역설적으로 창작뮤지컬 제작에 큰 자극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이 시장을 지배하는 가운데서도 지난 2년간 매년 120편의 창작 뮤지컬 신작이 공연됐다. 제작편수로는 70%를 웃도는 기록이다. 양적으로만 보자면 뉴욕과 런던에 버금가는 생산력이 아닌가 싶다.

시장 규모가 530억엔(약 5930억원)으로 우리의 두 배가 되는 일본 뮤지컬은 90% 이상이 해외 라이선스 작품이다. 일본 제작자들은 후발주자인 한국의 창작뮤지컬 생산력과 수준에 경이로움을 표시한다. 올초 도쿄 중심부에는 한국 뮤지컬 전용 공연장이 설립돼 연중 28편의 한국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다. 최근에는 제작 초기부터 일본 제작사가 투자사로 나서는 등 좀 더 적극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중국 진출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뜨거운 창작 열기와 아시아 시장의 반응에 흥분하고 있기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이돌이 주도하는 K팝 시장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창작 뮤지컬도 스타 캐스팅에 크게 의존한다. 신작 발굴을 위한 프로그램은 대구뮤지컬페스티벌을 비롯 CJ창작지원 프로그램, 서울뮤지컬페스티벌 등 다양하게 지원되고 있지만 작품의 시장 안착을 위한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전용 공연장의 안정된 공급, 극작, 작곡, 연출, 프로듀싱 등 창작 저작권자에 대한 보상 체계의 안정화, 스타와 코러스 간의 개런티 격차, 저임금 스태프의 무한 봉사 등 구조적인 문제가 화려한 무대 뒤에 도사리고 있다. 일본 등 해외 자본의 유입이 갖는 양면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프린트된 필름으로 작품이 완결되는 영화와 달리 공연상품은 음악과 스토리, 연출력이 담보된 작품 자체가 무대에서 장기적으로 생존할 때 생산물로서의 가치를 담보할 수 있다. 한 번의 공연으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전제된 무대에서 생존하면서 발전할 때 완성의 길을 가는 것이다. 작품 스스로 서바이벌할 수 있는 건강한 환경 조성이 필수적인 장르다. 하지만 뮤지컬은 영상, 대중음악, 애니메이션, 게임 등과 달리 ‘문화산업’과 ‘기초예술’ 사이에서 정확한 위치를 갖지 못해 지원의 규모나 성격이 제한된다. 흥행에 기대는 상업예술에 정부 지원이 필요한가 하는 논의는 무의미하다.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뮤지컬은 융합과 통섭의 결과물이다.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무모하고도 순수한 열망만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구조적으로 안정된 창작 생태계에 서식하며 발전하는 2세대, 3세대 창작뮤지컬의 성장을 기대한다.

고희경 < 홍익대 교수,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