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 작기 미상의 2.3m 크기 ‘기린도’. /가나아트갤러리 제공
조선시대 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 작기 미상의 2.3m 크기 ‘기린도’. /가나아트갤러리 제공
고구려 벽화, 고려 불화, 조선 초상화, 규방 예술 등으로 명맥을 유지해온 채색화는 옛 선비들이 즐겨 그렸던 문인화와 함께 한국화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채색화는 화면에 색을 칠한다는 점에서는 서양의 유화와 같지만 오일이 아니라 분채(안료 가루), 석채(돌가루) 등을 아교(접착제)에 개어 물과 함께 비단이나 한지 바탕에 칠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조선시대 채색회화의 맥락과 성과를 짚어보는 ‘길상(吉祥) 우리 채색화 걸작전’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내달 20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화조도 기린도 용호도 문자도 등 다양한 주제의 채색화와 자수 작품 등 50여점을 볼 수 있다. 박물관 소장품이 아닌 개인 소장품으로 구성돼 그동안 일반에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대거 나왔다. 이번 전시는 1983년 호암미술관에서 열렸던 ‘민화걸작전’ 이후 최대 규모의 조선시대 채색화전이라는 게 가나아트갤러리 측의 설명이다.

조선시대 선조들의 삶과 꿈을 투영한 작품들은 저마다 특유의 아름다움을 내보이며 우리의 전통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해준다. 가장 눈길을 끌 만한 작품은 조선 후기에 그려진 2.3m 크기의 ‘기린도’. 몸에 용머리를 하고 뿔을 머리에 하나 달고 있는 기린들이 복숭아 나무 밑에서 뛰어노는 게 이채롭다.

4m 크기의 12폭 병풍 ‘대호도’도 나와 있다. 왼쪽에 자리잡은 아름드리 소나무는 세월의 풍상 속에 기묘한 자세로 누워 있고, 그 아래 호랑이가 날카로운 눈매를 자랑하며 거닐고 있다. 호랑이가 소나무 아래에서 포효하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구한말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 미상의 8폭 병풍 ‘운룡도’는 화면을 가득 채운 황룡이 구름을 희롱하며 하늘로 솟아오른다. 용머리에는 뿔이 나 있고 몸통과 등에는 99개의 비늘로 덮여 있는 색채미가 돋보인다.

구한말 풍속화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십장생도, 궁중 화조도와 서수도, 백수백복도, 다양한 궁중 자수, 민화 문자도도 눈길을 붙잡는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옥경 가나아트갤러리 대표는 “한국 회화의 역사에서 채색화는 그동안 수묵화에 비해 관심을 적게 받았다”며 “이제까지 그 가치를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조선시대 채색화의 멋과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02)720-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