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막힌 대기업, 은행대출 급증
은행의 기업 대출에서 대기업 대출 잔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5년새 두 배 넘게 뛰었다. 경기 부진으로 대기업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최근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시중은행에 대한 자금조달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이라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우량 회사를 제외하면 현금 유동성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5년새 대출비중 2배 늘어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의 기업 대출금 중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07년 1월 11.1%에서 지난 5월 25.2%로 높아졌다. 5년 새 대출 비중이 2배 이상 늘었다. 대출 잔액 기준으로는 38조3000억원에서 158조9000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대기업 대출이 늘었지만 5대 핵심 그룹의 대출 비중은 변화가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SK LG 현대중공업 등 5대그룹 계열사가 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작년 말 기준으로 총 111조8000억원이다.

은행 종금 보험 등의 대출금과 지급보증 기업어음(CP)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빚으로 회사채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이 같은 규모는 전체의 6.8%로 2007년 말 기준 5.8%보다 약간 올라가는 데 그쳤다.신동화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대기업 대출 비중은 늘어났는데도 주요 그룹 비중에 큰 변화가 없는 것은 대기업 대출이 5대 그룹 이하에서 활발하게 이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대출에 의존

대기업 대출 잔액이 늘어난 것은 최근 두드러진 회사채 시장 경색과 연관 있다. 금리 상승(채권값 하락) 위험에 투자자들이 채권 매수를 기피하면서 대기업도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만만치 않아진 것이다.금감원에 따르면 회사채 금리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AA- 3년물기준으로 5월 말 연 3.12%이던 금리는 19일 연 3.30%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A등급 이상 회사채 발행 규모는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월평균 1조7000억원 선이었지만 올해는 그 절반 이하인 8000억원 수준으로 반토막났다.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기업들은 조달비용이 좀 더 높아도 은행 대출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데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종료 시점이 불확실해지면서 채권시장 변동성이 커졌다”며 “대기업이라도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권의 시각도 비슷하다. 한은이 금융회사들의 대출 행태를 조사한 데 따르면 3분기 대기업의 신용위험지수는 13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분기(16) 이후 최고다. 신용위험지수는 기업이 대출금을 갚지 않거나 부도를 내 떼일 가능성을 지수화한 것이다.

서정의 한은 조기경보팀장은 “금융권은 미국의 양적완화 조기 축소 가능성과 중국의 성장 둔화 우려 등 대외 위험 요인이 부각되면서 대기업의 신용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