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형섭 대상 사장(오른쪽)이 26일 서울 청담동 호텔프리마에서 열린 ‘대상 동반성장 협약식’에서 협력업체 사장인 김형익 동림푸드 대표의 발을 씻겨주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명형섭 대상 사장(오른쪽)이 26일 서울 청담동 호텔프리마에서 열린 ‘대상 동반성장 협약식’에서 협력업체 사장인 김형익 동림푸드 대표의 발을 씻겨주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청정원 고추장 등으로 유명한 식품회사 대상은 26일 서울 청담동 호텔프리마에서 특별한 행사를 열었다. 협력회사 사장 40여명이 자리한 ‘동반성장 협약식’에서 세족식(洗足式)이라는 이례적인 이벤트를 마련한 것.

기업들이 회사 내부 행사로 세족식을 가끔 열곤 했지만 외부 인사인 협력업체 사장들의 발을 닦아주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명형섭 사장 등 대상 임원들이 흰 대야를 앞에 두고 무릎을 꿇자 협력업체 사장들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 대야에 쉽게 발을 담그지 못했다. 명 사장이 “시원하게 닦아드릴 테니 믿고 발을 맡겨주세요. 저희가 모십니다”라는 말로 웃음을 유도하자 한두 명씩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김형익 동림푸드 대표의 발을 잡은 명 사장을 비롯해 대상 임원들은 협력업체 사장의 발을 깨끗이 씻긴 뒤 물기까지 닦아주며 “함께 성장하자”는 덕담을 건넸다. 김 대표는 “대상의 진심이 느껴져 좋았다”며 “집에 가서 아내 발도 한번 씻겨줘야겠다”고 말했다.

세족식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을 행하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데서 유래했다. 가톨릭교회는 교황이 부활절 이전 목요일에 평신도의 발을 씻기는 의식을 개최하곤 한다. 요즘은 꼭 종교행사가 아니더라도 상대방을 진실되게 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벤트로 자주 활용된다.

명 사장은 “세족식 행사는 소위 ‘갑을’로 규정되던 협력회사와의 관계를 완전히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상은 당초 협력회사 지원 방안을 담은 동반성장 협약식만 열려 했으나 ‘변화가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이벤트’를 찾다가 세족식을 기획했다는 후문이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입사 2년차인 홍보실 김상윤 매니저. 일부 임원들은 ‘꼭 이렇게 해야 하느냐’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명 사장이 “훌륭한 아이디어”라며 실행을 지시해 성사됐다.

이날 세족식에 참여한 임경호 세미산업 대표는 “협력업체와 원청회사의 관계를 뛰어넘어 ‘동반자’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대상과 파트너십을 다지게 된 것을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홍 고객지원본부장(전무)은 “대상은 본래 보수적이었지만 최근 근무 복장을 캐주얼로 바꾸고 직급제를 폐지하면서 직원들의 의식이 여러 방면에서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상은 이날 세족식 행사와 함께 발표한 ‘동반성장계획’에서 협력회사 지원을 위해 100억원의 상생펀드를 조성해 8월부터 회사별로 연간 최대 10억원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은행 대출금의 금리보다 1.5%포인트가량 낮은 이자를 적용할 방침이다. 납품단가는 인상 요인이 발생하면 즉각 반영하되 협력업체에 대한 현금지급률은 현재 20% 수준에서 10%포인트 높이기로 했다. 대금 지급 기일도 종전 20일에서 10일로 단축하기로 했다. 이 밖에 △협력사와 함께 개발한 기술에 대한 공동특허출원을 활성화하고 △협력사의 기술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교류·자문을 확대하며 △품질 개선을 지원하기 위한 ‘QS(Quality Support)센터’를 설치하는 등의 협력안도 시행할 방침이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