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더 중요해진 중국에 대한 균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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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대국' 부상한 이웃 중국
너무 기대하거나, 위축되지 말고
지혜롭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정몽준 한·중의원외교협의회장
너무 기대하거나, 위축되지 말고
지혜롭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정몽준 한·중의원외교협의회장
지난 18일부터 5박6일 일정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초청으로 여야 동료 의원들과 함께한 방문이었다. 베이징과 후베이성의 이창, 우한으로 연결되는 여정이었다. 이번 여행의 감회는 여느 때와 달랐다.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개인적으로 중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중국은 새로 부상한 강대국이고, 한국에는 북핵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나라이지만 내부적으로는 13억 인구를 먹여살리고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공원에서 쉬고 있는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60세 정년에,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으로 중국 역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1949년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면서 공산화했던 중국은 1970년대에는 자본주의가 중국을 구할 수 있다면서 시장경제로 전환했다. 이제는 중국만이 전 세계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중국 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많은 나라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7%를 넘느냐 못 넘느냐를 놓고 논란을 벌일 정도다.
베이징에서, 최근 북한을 방문한 리위안차오 국가 부주석 등 중국 지도부 인사들과 만난 뒤 중국 내륙의 이창으로 넘어갔다. 이창을 찾아간 목적은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산샤(三峽)댐을 보기 위해서였다. 중국은 1994년 장강(長江·양쯔강) 중류인 이창 지역에서 댐건설에 착수해 2003년 1호 발전기를 가동할 때까지 9년간 상류지역 100만명을 이주시키는 대역사를 진행했다.
거대한 규모의 시설물은 중국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산샤댐 하나만 보고 이창을 떠났다면 이번 방중이 과거와 특별히 다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창은 기원전 300년께 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인이자 시인이었던 굴원의 고향이다. 당시 제나라와 동맹을 맺어 강대국인 진나라에 대항하는 ‘합종(合縱)’을 왕에게 진언했던 굴원은 모략을 당해 유배된 뒤 강에 투신함으로써 마지막 간언을 했다. 그날이 음력 5월5일이고 중국 단오절의 유래라고 한다. 이창 인근은 서기 200년께 삼국시대 당시 위, 촉, 오나라가 치열하게 쟁탈전을 벌였고 관우가 오나라 군대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했던 형주 땅이기도 하다. 기원전 300년의 굴원으로부터 서기 200년의 관우, 다시 현대의 산샤댐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진행되는 곳에 서 있다는 생각에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후베이성의 성도인 우한은 호수가 많아 ‘중국의 시카고’로 불린다. 스스로를 대(大)우한이라 부르는 우한에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작업이 한창이다. 우한에서 만난 지방정부 인사들은 정치나 역사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수자원이 풍부하고, 물류의 중심이고, 120만 대학생이 있는 교육도시라는 산업적 가치를 알리는 데 열중했다.
베이징의 인사들은 정치 얘기를 많이 했지만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경제협력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우리가 제기하는 북한 핵문제,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남북한이 대화를 해야 하고, 핵문제에는 6자회담이 최선이며, 탈북자는 불법입국자라는 논리였다. 한마디로 한국도 중요하지만 북한도 무시할 수 없는 동맹국이라는 얘기였고 일본에 대한 경계심과 미국이 일본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컸다.
귀국길에 오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거대한 역사적, 현실적 자원을 보유하고 ‘신형 대국’의 길로 들어선 중국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국은 중국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중국과 가깝게 지내야 하는 것은 다시 우리의 숙명이 됐다. 환대에 들떠 상황을 오인해서도 안 되고,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들어서도 안 될 일이다. 지금의 기대 섞인 분위기가 우리의 족쇄가 돼서도 안 된다. 후베이성 미술관에서 본 조각품이 떠오른다. 시각장애인들이 코끼리를 더듬고 있는 열반경의 우화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 가르침대로 이제 지혜의 눈으로 중국을 균형감 있게 바라봐야 할 때다.
정몽준 < 한·중의원외교협의회장 >
중국은 새로 부상한 강대국이고, 한국에는 북핵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나라이지만 내부적으로는 13억 인구를 먹여살리고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공원에서 쉬고 있는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60세 정년에,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으로 중국 역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1949년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면서 공산화했던 중국은 1970년대에는 자본주의가 중국을 구할 수 있다면서 시장경제로 전환했다. 이제는 중국만이 전 세계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중국 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많은 나라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7%를 넘느냐 못 넘느냐를 놓고 논란을 벌일 정도다.
베이징에서, 최근 북한을 방문한 리위안차오 국가 부주석 등 중국 지도부 인사들과 만난 뒤 중국 내륙의 이창으로 넘어갔다. 이창을 찾아간 목적은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산샤(三峽)댐을 보기 위해서였다. 중국은 1994년 장강(長江·양쯔강) 중류인 이창 지역에서 댐건설에 착수해 2003년 1호 발전기를 가동할 때까지 9년간 상류지역 100만명을 이주시키는 대역사를 진행했다.
거대한 규모의 시설물은 중국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산샤댐 하나만 보고 이창을 떠났다면 이번 방중이 과거와 특별히 다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창은 기원전 300년께 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인이자 시인이었던 굴원의 고향이다. 당시 제나라와 동맹을 맺어 강대국인 진나라에 대항하는 ‘합종(合縱)’을 왕에게 진언했던 굴원은 모략을 당해 유배된 뒤 강에 투신함으로써 마지막 간언을 했다. 그날이 음력 5월5일이고 중국 단오절의 유래라고 한다. 이창 인근은 서기 200년께 삼국시대 당시 위, 촉, 오나라가 치열하게 쟁탈전을 벌였고 관우가 오나라 군대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했던 형주 땅이기도 하다. 기원전 300년의 굴원으로부터 서기 200년의 관우, 다시 현대의 산샤댐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진행되는 곳에 서 있다는 생각에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후베이성의 성도인 우한은 호수가 많아 ‘중국의 시카고’로 불린다. 스스로를 대(大)우한이라 부르는 우한에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작업이 한창이다. 우한에서 만난 지방정부 인사들은 정치나 역사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수자원이 풍부하고, 물류의 중심이고, 120만 대학생이 있는 교육도시라는 산업적 가치를 알리는 데 열중했다.
베이징의 인사들은 정치 얘기를 많이 했지만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경제협력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우리가 제기하는 북한 핵문제,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남북한이 대화를 해야 하고, 핵문제에는 6자회담이 최선이며, 탈북자는 불법입국자라는 논리였다. 한마디로 한국도 중요하지만 북한도 무시할 수 없는 동맹국이라는 얘기였고 일본에 대한 경계심과 미국이 일본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컸다.
귀국길에 오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거대한 역사적, 현실적 자원을 보유하고 ‘신형 대국’의 길로 들어선 중국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국은 중국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중국과 가깝게 지내야 하는 것은 다시 우리의 숙명이 됐다. 환대에 들떠 상황을 오인해서도 안 되고,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들어서도 안 될 일이다. 지금의 기대 섞인 분위기가 우리의 족쇄가 돼서도 안 된다. 후베이성 미술관에서 본 조각품이 떠오른다. 시각장애인들이 코끼리를 더듬고 있는 열반경의 우화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 가르침대로 이제 지혜의 눈으로 중국을 균형감 있게 바라봐야 할 때다.
정몽준 < 한·중의원외교협의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