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0% 취업'하던 CPA 너마저…4대 회계법인, 올 채용 31% 줄여 650명만 뽑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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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사이트 7월30일 오후 1시43분
공인회계사(CPA) 취업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신규 회계사의 80% 이상을 뽑아온 4대 회계법인이 올해 채용 규모를 30% 넘게 줄일 계획이기 때문이다. 금융사와 기업들도 채용 때 부여하는 가산점을 줄이고 있어 회계사 자격증의 인기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때 의사, 변호사와 함께 3대 고소득 전문직종으로 꼽혔던 회계사가 경기불황과 치열한 경쟁으로 구조조정 위기에 몰리는 신세가 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30일 한국경제신문이 삼일·삼정·안진·한영 등 4대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650명의 신규 CPA를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55명보다 31.5% 줄었다.
4대 회계법인은 CPA 채용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시험에 합격한 CPA의 84.9%가 4대 회계법인에 들어갔다. 나머지는 중소 회계법인이나 금융사, 공공기관, 기업체 등에 취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매년 CPA 시험에 900~1000명이 합격하고, 합격자 중 재학생과 군입대자 등을 제외한 90% 이상이 1년 내 취업에 성공했다.
올해는 대형 회계법인들이 채용을 줄이면서 신규 CPA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으로 업계에선 관측하고 있다. 회계법인들이 증권사와 은행, 기업 등 다양한 직군에서 영업이 가능한 외부인력 영입을 늘리는 추세여서 신규 CPA가 설 자리는 더 좁아지고 있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4대 회계법인이 채용을 줄일 정도면 중소형 회계법인 사정은 더 어려운 것으로 보면 된다”며 “CPA 자격증만 있으면 100% 취업을 보장받던 시절은 끝났다”고 했다. 취업을 미루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눈높이를 낮춰 일반 기업체에 취업한 뒤 대형 회계법인이나 금융 공기업에 경력직으로 재입성을 엿보는 신규 CPA들도 늘고 있다. 한 회계사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요즘처럼 일시적으로 회계사가 시장에서 공급초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IFRS 특수도 끝나고…회계업계 10년 만에 '최악 불황'
CPA가 금융사나 일반 기업에 입사하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 채용 때 가산점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시중은행 채용 담당자는 “회계사와 세무사, 변호사들이 일반 대졸 신입 행원으로 입사해 똑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며 “전문 자격증이 있다고 해도 인사에 큰 가점이 없다”고 설명했다.
금융공기업 가운데 인기 직종 중 한 곳인 금감원엔 CPA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이 흔해졌다. 매년 50명의 대졸 신입직원을 뽑는데 경제경영 부문은 회계사 출신이 합격자의 70~80%에 이른다. 금감원 관계자는 “CPA는 서류전형 때만 몇 점을 높여줄 뿐 당락을 좌우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업황 부진에 구조조정 위기
회계법인들이 신규 채용을 축소하고 있는 이유는 실적이 크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4대 회계법인의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영업이익은 162억8600만원으로 지난 회계연도에 비해 16% 감소했다. 순이익은 24% 줄어든 104억3900만원에 그쳤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삼일회계법인은 매출이 4567억원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순이익이 35% 급감한 48억원에 그쳤다. 삼정회계법인은 매출이 2572억원으로 44% 증가했으나 순이익은 29억원으로 25% 감소했다. 회계법인들은 2009년부터 도입된 국제회계기준(IFRS) 특수가 끝나면서 일감이 늘지 않고, 수수료 출혈 경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경기 둔화로 기업들로부터 컨설팅 부문 수주도 급감했다. 한 회계사가 “10년 만에 찾아온 가장 큰 불황”이라고 말할 정도다.
임원 인사의 적체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회계법인 임원이 파트너까지 올라가는 데 걸리는 기간도 과거 13~14년에서 14~16년으로 길어지고 있다.
회계법인들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인건비 절감을 추진하는 동시에 구조조정도 검토하고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은 중견 이상(8년 경력) 직원의 기본급 동결을 결정했고 다른 법인은 임원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삼정KPMG는 연초 컨설팅사업 부문에서 100명 규모의 인력을 감축했다. 삼일PwC와 딜로이트안진도 각종 비용 절감뿐 아니라 지원업무 인력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는 올해 취업할 회계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 부대표는 “올해 신규 채용하는 회계사의 초봉을 전년 수준에서 동결하기로 4대 회계법인이 합의한 상태”라고 전했다.
CPA가 더 이상 취업을 보장해주지 않고 ‘자격증’의 하나로 전락하면서 인기도 시들해지고 있다. 한 서울 소재 사립대 교수는 “CPA를 준비하는 경영학과 학생 비중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절반에 달했으나 최근 10%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2003년 148명이었던 서울대 출신 공인회계사가 지난해 58명에 불과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기업 부실감사 부작용 우려
회계산업이 위축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회계법인 간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이른바 ‘단가 후려치기’로 일감을 따낸 뒤 부실 감사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비용을 아끼려고 충분한 감사 인력과 시간을 들이지 못한 결과다.
증권선물위원회는 2009년부터 2012년 10월까지 총 186건의 부실감사 등에 대한 감사인 제재 조치를 내렸다. 감리건수 대비 제재 조치 비율은 지난해 47.3%까지 치솟아 2009년(13.9%)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감사인 등록 취소 또는 업무정지, 과징금 부과 등의 중조치 건수도 22%에 달해 2009년 4.5%의 5배 수준으로 늘었다.
하수정/안대규 기자 agatha77@hankyung.com
공인회계사(CPA) 취업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신규 회계사의 80% 이상을 뽑아온 4대 회계법인이 올해 채용 규모를 30% 넘게 줄일 계획이기 때문이다. 금융사와 기업들도 채용 때 부여하는 가산점을 줄이고 있어 회계사 자격증의 인기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때 의사, 변호사와 함께 3대 고소득 전문직종으로 꼽혔던 회계사가 경기불황과 치열한 경쟁으로 구조조정 위기에 몰리는 신세가 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30일 한국경제신문이 삼일·삼정·안진·한영 등 4대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650명의 신규 CPA를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55명보다 31.5% 줄었다.
4대 회계법인은 CPA 채용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시험에 합격한 CPA의 84.9%가 4대 회계법인에 들어갔다. 나머지는 중소 회계법인이나 금융사, 공공기관, 기업체 등에 취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매년 CPA 시험에 900~1000명이 합격하고, 합격자 중 재학생과 군입대자 등을 제외한 90% 이상이 1년 내 취업에 성공했다.
올해는 대형 회계법인들이 채용을 줄이면서 신규 CPA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으로 업계에선 관측하고 있다. 회계법인들이 증권사와 은행, 기업 등 다양한 직군에서 영업이 가능한 외부인력 영입을 늘리는 추세여서 신규 CPA가 설 자리는 더 좁아지고 있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4대 회계법인이 채용을 줄일 정도면 중소형 회계법인 사정은 더 어려운 것으로 보면 된다”며 “CPA 자격증만 있으면 100% 취업을 보장받던 시절은 끝났다”고 했다. 취업을 미루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눈높이를 낮춰 일반 기업체에 취업한 뒤 대형 회계법인이나 금융 공기업에 경력직으로 재입성을 엿보는 신규 CPA들도 늘고 있다. 한 회계사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요즘처럼 일시적으로 회계사가 시장에서 공급초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IFRS 특수도 끝나고…회계업계 10년 만에 '최악 불황'
CPA가 금융사나 일반 기업에 입사하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 채용 때 가산점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시중은행 채용 담당자는 “회계사와 세무사, 변호사들이 일반 대졸 신입 행원으로 입사해 똑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며 “전문 자격증이 있다고 해도 인사에 큰 가점이 없다”고 설명했다.
금융공기업 가운데 인기 직종 중 한 곳인 금감원엔 CPA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이 흔해졌다. 매년 50명의 대졸 신입직원을 뽑는데 경제경영 부문은 회계사 출신이 합격자의 70~80%에 이른다. 금감원 관계자는 “CPA는 서류전형 때만 몇 점을 높여줄 뿐 당락을 좌우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업황 부진에 구조조정 위기
회계법인들이 신규 채용을 축소하고 있는 이유는 실적이 크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4대 회계법인의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영업이익은 162억8600만원으로 지난 회계연도에 비해 16% 감소했다. 순이익은 24% 줄어든 104억3900만원에 그쳤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삼일회계법인은 매출이 4567억원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순이익이 35% 급감한 48억원에 그쳤다. 삼정회계법인은 매출이 2572억원으로 44% 증가했으나 순이익은 29억원으로 25% 감소했다. 회계법인들은 2009년부터 도입된 국제회계기준(IFRS) 특수가 끝나면서 일감이 늘지 않고, 수수료 출혈 경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경기 둔화로 기업들로부터 컨설팅 부문 수주도 급감했다. 한 회계사가 “10년 만에 찾아온 가장 큰 불황”이라고 말할 정도다.
임원 인사의 적체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회계법인 임원이 파트너까지 올라가는 데 걸리는 기간도 과거 13~14년에서 14~16년으로 길어지고 있다.
회계법인들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인건비 절감을 추진하는 동시에 구조조정도 검토하고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은 중견 이상(8년 경력) 직원의 기본급 동결을 결정했고 다른 법인은 임원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삼정KPMG는 연초 컨설팅사업 부문에서 100명 규모의 인력을 감축했다. 삼일PwC와 딜로이트안진도 각종 비용 절감뿐 아니라 지원업무 인력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는 올해 취업할 회계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 부대표는 “올해 신규 채용하는 회계사의 초봉을 전년 수준에서 동결하기로 4대 회계법인이 합의한 상태”라고 전했다.
CPA가 더 이상 취업을 보장해주지 않고 ‘자격증’의 하나로 전락하면서 인기도 시들해지고 있다. 한 서울 소재 사립대 교수는 “CPA를 준비하는 경영학과 학생 비중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절반에 달했으나 최근 10%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2003년 148명이었던 서울대 출신 공인회계사가 지난해 58명에 불과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기업 부실감사 부작용 우려
회계산업이 위축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회계법인 간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이른바 ‘단가 후려치기’로 일감을 따낸 뒤 부실 감사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비용을 아끼려고 충분한 감사 인력과 시간을 들이지 못한 결과다.
증권선물위원회는 2009년부터 2012년 10월까지 총 186건의 부실감사 등에 대한 감사인 제재 조치를 내렸다. 감리건수 대비 제재 조치 비율은 지난해 47.3%까지 치솟아 2009년(13.9%)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감사인 등록 취소 또는 업무정지, 과징금 부과 등의 중조치 건수도 22%에 달해 2009년 4.5%의 5배 수준으로 늘었다.
하수정/안대규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