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제대국 통일 독일의 위대한 유산
어떤 모임에서 독일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독일이 통일 후유증을 겪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독일은 통일 후유증에 따른 국가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과감하게 개혁했다. 반면 위기가 없었던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쇄신의 명분을 찾지 못했고, 결국 지금의 곤경에 처했다는 것이다.

독일은 통일 후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1991년부터 2003년까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영국 네덜란드의 절반에 불과했다. 1990년대 동독 실업률은 18%까지 치솟았다. 고임금과 경직된 노동법을 피해 독일 기업들은 해외로 이탈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었다. 2000년 초까지만 해도 독일의 미래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통일이 결국 독일을 무너뜨리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독일 국민은 지혜로웠고, 정치인에겐 양식이라는 게 있었다. 모두들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진보 성향인 슈뢰더 정권은 개혁의 칼을 치켜들었다. 2003년부터 ‘아젠다 2010’과 ‘하르츠 개혁’을 시작했다. 연금제도에도 손을 댔다. 정치인으로서는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슈뢰더는 자신의 정치 생명보다 국가 장래를 더 걱정한 정치인이었다. 연금을 줄이고 수혜연령도 높였다. 해외로 나가는 기업들의 발길을 돌려세우기 위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개혁안을 쏟아냈다. 바로 노동유연성 확보를 위한 개혁이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도 만들었다. 일감이 많을 때 초과수당을 저축했다가 일감이 없을 때 유급휴가 식으로 저축해 놓은 수당을 받는 것이다. 신규직원의 해고가능기간도 연장했다. 기업에 임금유연성, 고용유연성을 확보해 준 것이다.

독일의 전투적이고 악명 높은 산별노조가 강력히 반대하며 저항한 것은 물론이다. 슈뢰더의 용기와 의회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유럽의 다른 나라 정치인들이 국가 장래를 희생하면서까지 선심성 제도를 남발하는 동안 독일 정치인은 인기 대신 국가 장래를 위해 국민의 희생을 요구한 것이다. 과연 한국의 정치인에겐 이런 용기가 있을까.

한국의 통일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높아졌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예전과 달라졌다. 통일 후 시나리오를 다시 한 번 쓸 시기가 된 것 같다. 만일 통일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지금의 독일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과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슈뢰더와 같은 용기와 애국심을 갖고 있는가.

경제 살리기를 위한 법개정은 국회에서 제동이 걸려 지연되고 있다. 우리 정치인들은 국가의 장래보다 당장의 인기를 더 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인들이 소위 ‘경제민주화’에 골몰해 있는 동안 기업의 해외 이탈은 가속화되고 있다. 노동과 임금유연성을 기업에 주지 않으면 기업의 엑소더스는 막을 수 없다. 대기업의 제조현장 초봉이 6000만원을 웃돌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어떤 대기업, 아니 세계 어떤 기업도 이런 고임금을 감당할 수 없다. 지속성장이 불가능한 임금구조다. 미국의 자동차 기업을 살리고 다시 경쟁궤도로 올려 놓은 이중임금제를 빨리 도입해 고임금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 신입사원에게는 별도의 임금제도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현재의 고연봉이 결국 취업수명을 단축하게 될 것이다. 좀 적게 받고 오래 근무할 수 있는 임금피크제도 또 다른 대안이다.

독일과 우리나라는 2차대전 후 분단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독일은 분단이라는 감정적 아픔에 통일 후 경제적 고통이 더해졌지만 훌륭히 이를 극복했다. 우리는 과연 독일처럼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고 더 강한 대한민국으로 다시 설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정치인들이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위기에 강한 국가다. 국민 모두 갈등과 비난 속에서도 화합의 결실을 맺을 줄 안다. 이제는 통일이 더 이상 노래 속의 희망만이 아니다.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비하는 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 정치인의 용기와 애국심이 발휘될 시점이다. 독일과 같이 우리도 후손에게 위대한 유산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

유지수 < 국민대 총장 jisoo@kookmi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