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백수 과로사한다는 부총리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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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전회의 많을수록 국정 겉돌고
진짜 현장은 규제 쏟아내는 국회
상법 논쟁에도 부총리는 부재중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진짜 현장은 규제 쏟아내는 국회
상법 논쟁에도 부총리는 부재중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지난주 현오석 부총리는 휴가를 겸한다며 전국 경제 투어를 돌았다. 새만금 열병합발전소, 광양제철소, 마산 어시장, 경남 테크노파크를 방문하는 강행군이었다. 현 부총리가 김재신 OCISE 사장을 업어주는 사진은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어색하고 위선적인 분위기에 짜증스럽다는 사람도 많았다. 대통령의 간절한 소망을 저렇게 이해한 것인가 하는 마뜩잖은 반응들이었다. 경제민주화에 이어 지금 상법 개정안이 뜨거운 논란을 부르고 있지만 부총리는 그런 무거운 주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투어에는 부처 간부들도 따라갔다. 가는 곳마다 민원과 건의가 쏟아졌고 부총리는 ‘적극 검토’를 약속했다. 모두가 무언가를 부지런히 수첩에 적기도 했다. 자, 우리의 부총리는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글쎄다. 오히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해결을 약속하거나 기대치만 높여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민원이 많았다는 것 자체가 실은 더 큰 문제다. 대통령이 규제완화를 그렇게 부르짖어도 정부가 꿈쩍하지 않았다는 것을 거꾸로 증언할 뿐인 거다. 손톱밑 가시는 이미 수도 없이 뽑았고 부처마다 장관들의 현장 학습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위직의 현장 순시는 그러나 대부분 연극과 비슷하다. 반복되는 민원들이 왜 여태 해결되지 않았는지, 그 많은 민원이 왜 언제나 함흥차사가 되는지도 관료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노회한 관료들이 처음 들어보는 민원이 있기나 하겠는가 말이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어전회의라야 문제가 풀린다는 점이다. 새만금에서 부총리를 감동시킨 김재신 사장의 투자 사업건만하더라도 지난 5월 청와대 회의에서 해결됐던 대표적 사업이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해결되는 과제가 많아질수록 청와대 아닌 정부에서, 또는 그 아래에서 해결되는 과제는 적어진다. 윗선이 나서야 생색을 내면서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모두가 윗선 결정만 기다리게 된다. 장관들조차 복잡한 문제는 아예 청와대 회의로 넘기고 만다는 식이다. 그렇게 청와대 과제는 쌓여가고 대통령이 바빠질수록 정부는 비례적으로 일을 적게 하게 된다.
현장시찰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현장시찰은 수박 겉핥기이거나 시간 낭비에 가깝다. 리더는 통계 수치와 법논리를 비교하면서 판단하는 사람이지 구체적 사안에 개별적 결정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다. 기업 경영은 개별적 판단에 속하지만 국가 정책은 바로 그 점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잘못된 현장 방문은 보편적 정책이 아닌 개별적 혜택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기업에는 역차별이라는 우스꽝스런 결과로 귀결된다. 새만금에 들어설 공장부지 같은 문제야말로 보편적 규정으로 결정돼야지 우연히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행운을 잡아서 해결돼서는 곤란하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안 풀리는 것도 풀리고, 풀릴 것도 안 풀리는 식이라면 이는 법치국가가 아니다. 공단 문제는 지역 산업과장이나, 그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라도 중앙부처 국장 선에서 해결할 문제다.
김정일만큼 현장을 많이 다닌 정치가도 없을 것이다. 김정은도 그렇다. 애비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문제해결의 구조학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한 말씀이라도 하실라치면 아버지뻘 되는 관계자들이 죽 둘러서서 수첩을 빼드는 모습도 되풀이되고 있다. 공장들은 지도자 동지가 방문할 때까지 올스톱이다. 어린 나이에 핵폭탄밖에 없는 가난한 나라를 물려받은 김정은이 그래서 저 고생을 하고 있다. ‘백수 과로사’라는 말이 있지만 독재자야말로 과로사하기 딱 좋다. 설마하니 박근혜 정부의 장관들이 그런 나라를 만들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비서실 진용이 바뀌었으니 수첩 꺼내는 것부터 고쳤으면 한다.
대통령이 규제 완화를 말하는 그 순간에도 국회와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의 핵폭탄급 규제들을 쏟아냈다. 부총리는 대통령이 말하기 전에는 입을 닫았고 대통령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만 움직였다. 정치적 부담이 오로지 대통령에게 지워지는 구조다. 최근의 상법 논쟁에도 부총리는 역시 부재중이다. 야당이 거리로 뛰쳐나가면서 기업가들은 ‘차라리 안도의 한숨’을 쉬는 중이다. 부총리는 논쟁이 무서워 지방으로만 나돈다는 것인지.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투어에는 부처 간부들도 따라갔다. 가는 곳마다 민원과 건의가 쏟아졌고 부총리는 ‘적극 검토’를 약속했다. 모두가 무언가를 부지런히 수첩에 적기도 했다. 자, 우리의 부총리는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글쎄다. 오히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해결을 약속하거나 기대치만 높여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민원이 많았다는 것 자체가 실은 더 큰 문제다. 대통령이 규제완화를 그렇게 부르짖어도 정부가 꿈쩍하지 않았다는 것을 거꾸로 증언할 뿐인 거다. 손톱밑 가시는 이미 수도 없이 뽑았고 부처마다 장관들의 현장 학습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위직의 현장 순시는 그러나 대부분 연극과 비슷하다. 반복되는 민원들이 왜 여태 해결되지 않았는지, 그 많은 민원이 왜 언제나 함흥차사가 되는지도 관료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노회한 관료들이 처음 들어보는 민원이 있기나 하겠는가 말이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어전회의라야 문제가 풀린다는 점이다. 새만금에서 부총리를 감동시킨 김재신 사장의 투자 사업건만하더라도 지난 5월 청와대 회의에서 해결됐던 대표적 사업이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해결되는 과제가 많아질수록 청와대 아닌 정부에서, 또는 그 아래에서 해결되는 과제는 적어진다. 윗선이 나서야 생색을 내면서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모두가 윗선 결정만 기다리게 된다. 장관들조차 복잡한 문제는 아예 청와대 회의로 넘기고 만다는 식이다. 그렇게 청와대 과제는 쌓여가고 대통령이 바빠질수록 정부는 비례적으로 일을 적게 하게 된다.
현장시찰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현장시찰은 수박 겉핥기이거나 시간 낭비에 가깝다. 리더는 통계 수치와 법논리를 비교하면서 판단하는 사람이지 구체적 사안에 개별적 결정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다. 기업 경영은 개별적 판단에 속하지만 국가 정책은 바로 그 점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잘못된 현장 방문은 보편적 정책이 아닌 개별적 혜택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기업에는 역차별이라는 우스꽝스런 결과로 귀결된다. 새만금에 들어설 공장부지 같은 문제야말로 보편적 규정으로 결정돼야지 우연히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행운을 잡아서 해결돼서는 곤란하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안 풀리는 것도 풀리고, 풀릴 것도 안 풀리는 식이라면 이는 법치국가가 아니다. 공단 문제는 지역 산업과장이나, 그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라도 중앙부처 국장 선에서 해결할 문제다.
김정일만큼 현장을 많이 다닌 정치가도 없을 것이다. 김정은도 그렇다. 애비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문제해결의 구조학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한 말씀이라도 하실라치면 아버지뻘 되는 관계자들이 죽 둘러서서 수첩을 빼드는 모습도 되풀이되고 있다. 공장들은 지도자 동지가 방문할 때까지 올스톱이다. 어린 나이에 핵폭탄밖에 없는 가난한 나라를 물려받은 김정은이 그래서 저 고생을 하고 있다. ‘백수 과로사’라는 말이 있지만 독재자야말로 과로사하기 딱 좋다. 설마하니 박근혜 정부의 장관들이 그런 나라를 만들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비서실 진용이 바뀌었으니 수첩 꺼내는 것부터 고쳤으면 한다.
대통령이 규제 완화를 말하는 그 순간에도 국회와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의 핵폭탄급 규제들을 쏟아냈다. 부총리는 대통령이 말하기 전에는 입을 닫았고 대통령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만 움직였다. 정치적 부담이 오로지 대통령에게 지워지는 구조다. 최근의 상법 논쟁에도 부총리는 역시 부재중이다. 야당이 거리로 뛰쳐나가면서 기업가들은 ‘차라리 안도의 한숨’을 쉬는 중이다. 부총리는 논쟁이 무서워 지방으로만 나돈다는 것인지.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