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대통령 말귀를 못 알아 듣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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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마다 받아적기 바쁜 장관들
경제민주화도 활성화도 뒤죽박죽
수첩부터 버려야 영혼이 일한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경제민주화도 활성화도 뒤죽박죽
수첩부터 버려야 영혼이 일한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사람들은 종종 달보다는 손가락을 본다. 수첩을 꺼내들고 부지런히 대통령 말씀을 메모하는 장관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 말씀의 랑그(langue)는 허공을 맴돌고 말씀의 파롤(parole)만 깨알같이 수첩을 채운다. 영혼이 없다는 관료 출신 장관들이다 보니 말씀을 숙지해야 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그래서 목적과 경로에 대한 사변은 사라지고 작은 수단들에 대한 관료적 성실성만 남게 된다.
공정거래위원장이 순환출자 규제만 추가하면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은 끝난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경우다. 7개 경제민주화 관련법 중 6개가 이미 처리됐다는 대통령의 말씀을 이제 한 개만 더 처리하면 된다고 알아들었다면 이는 대통령의 파롤, 즉 손가락만 본 것이다. 하기야 ‘포기’라는 직접적 언명이 없었으니 북방한계선(NLL)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내란이라는 말이 없었으니 내란모의도 없었다는 것이 이 나라의 언어 수준이다. 경제민주화 문제는 이쯤에서 마무리짓자는 대통령의 랑그는 누가 알아듣나.
대통령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규제의 원점 재검토를 말해도 알아듣는 장관이 없다. 규제 체계를 금지된 것 외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로 바꾸는 작업은 사실 헌법을 바꾸는 일보다 어렵다. 대통령의 잇단 언급에도 그 일에 착수했다는 발표가 없는 이유는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자기 부처의 과업 목록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은 난마처럼 얽혀있지만 전체를 보고 공통의 과업에 도전하는 장관도 수석도 없다. 내각은 있으되 국무위원은 없는 것이다. 현오석 부총리부터가 대통령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만 온몸을 비틀고 있다. 대통령을 도와 그 선을 확장하거나 새로 그어보려는 노력은 시도조차 없다.
“경제민주화도 경제활성화를 위해서…, 복지도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라며 대통령은 목이 쉬지만 장관들은 각개약진식 보고거리 찾기에 분주하다. 부처는 있는데 정부는 없는 상황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은 법무부도 다를 것이 없다. 빗나간 국정원 수사는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 앞에 내놓은 것이라고는 대주주 손발 묶고, 기업에 대한 투기적 간섭을 늘리며, 대규모 자본 투자안을 기각시키도록 구조화한 상법 개정안이 전부다. 지난 십여년 동안 줄곧 투기꾼들에게 유리하게 개정해왔던 투기촉진적 입법 관행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었는지 어떤지조차 우리는 실감하지 못한다.
법무부는 주가조작을 근절하라는 말씀도 단순히 주가조작꾼을 잡아 넣어라는 말로 알아듣고 말았다. 증권시장 질서를 바로잡아 중산층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대통령이 가리킨 달이었다. 법무부가 그 말을 알아들었다면 헤지펀드 등 국제 투기 세력들의 온갖 무기들부터 회수했어야 하지만 ‘주가 조작세력 엄단 회의’라는 손가락 회의만 몇 차례 열고 말았다. 그리고 금융위 직원에게 준사법경찰권을 주자는 실로 관료적 결과물을 내놨다. ‘기회는 찬스’라는 듯 모두 15개 직종의 공무원들이 동시에 준사법경찰권을 얻어 가졌다. 그렇다. 관료들은 스스로를 위해서는 너무 열심히 일한다. 관료공화국 만세다!
4대강 녹조를 경고하는 환경부 장관은 오로지 국토교통부와의 관할권을 놓고 대를 이어 투쟁한다는 느낌마저 준다. 4대강 물관리 권한을 되돌려받기 위한 치열한 관료들의 ‘나와바리(관할권) 투쟁’으로 비칠 뿐이다. 부처를 초월해 국정을 다루는 국무위원은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예견됐던 대로 거대한 관료행정에 함몰된 것이 분명하다. 미래부 창설을 주장하던 사람들조차 실망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미래부가 무얼하는 부처인지도 아는 사람이 없다. 돌아보면 최근의 정책들은 대부분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들의 정책이다. 금융위가 최근 발표한 정책금융기관 통합 방침도 그런 범주다. 관치금융의 구조화를 정책금융이라고 혼동해 부르는 것은 관료들뿐이다. 그렇게 박근혜 행정부가 돌아가고 있다. 대통령의 손가락만 쳐다보는 장관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오늘도 대통령의 말씀을 받아 쓰기 위해 수첩을 꺼내든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공정거래위원장이 순환출자 규제만 추가하면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은 끝난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경우다. 7개 경제민주화 관련법 중 6개가 이미 처리됐다는 대통령의 말씀을 이제 한 개만 더 처리하면 된다고 알아들었다면 이는 대통령의 파롤, 즉 손가락만 본 것이다. 하기야 ‘포기’라는 직접적 언명이 없었으니 북방한계선(NLL)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내란이라는 말이 없었으니 내란모의도 없었다는 것이 이 나라의 언어 수준이다. 경제민주화 문제는 이쯤에서 마무리짓자는 대통령의 랑그는 누가 알아듣나.
대통령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규제의 원점 재검토를 말해도 알아듣는 장관이 없다. 규제 체계를 금지된 것 외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로 바꾸는 작업은 사실 헌법을 바꾸는 일보다 어렵다. 대통령의 잇단 언급에도 그 일에 착수했다는 발표가 없는 이유는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자기 부처의 과업 목록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은 난마처럼 얽혀있지만 전체를 보고 공통의 과업에 도전하는 장관도 수석도 없다. 내각은 있으되 국무위원은 없는 것이다. 현오석 부총리부터가 대통령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만 온몸을 비틀고 있다. 대통령을 도와 그 선을 확장하거나 새로 그어보려는 노력은 시도조차 없다.
“경제민주화도 경제활성화를 위해서…, 복지도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라며 대통령은 목이 쉬지만 장관들은 각개약진식 보고거리 찾기에 분주하다. 부처는 있는데 정부는 없는 상황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은 법무부도 다를 것이 없다. 빗나간 국정원 수사는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 앞에 내놓은 것이라고는 대주주 손발 묶고, 기업에 대한 투기적 간섭을 늘리며, 대규모 자본 투자안을 기각시키도록 구조화한 상법 개정안이 전부다. 지난 십여년 동안 줄곧 투기꾼들에게 유리하게 개정해왔던 투기촉진적 입법 관행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었는지 어떤지조차 우리는 실감하지 못한다.
법무부는 주가조작을 근절하라는 말씀도 단순히 주가조작꾼을 잡아 넣어라는 말로 알아듣고 말았다. 증권시장 질서를 바로잡아 중산층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대통령이 가리킨 달이었다. 법무부가 그 말을 알아들었다면 헤지펀드 등 국제 투기 세력들의 온갖 무기들부터 회수했어야 하지만 ‘주가 조작세력 엄단 회의’라는 손가락 회의만 몇 차례 열고 말았다. 그리고 금융위 직원에게 준사법경찰권을 주자는 실로 관료적 결과물을 내놨다. ‘기회는 찬스’라는 듯 모두 15개 직종의 공무원들이 동시에 준사법경찰권을 얻어 가졌다. 그렇다. 관료들은 스스로를 위해서는 너무 열심히 일한다. 관료공화국 만세다!
4대강 녹조를 경고하는 환경부 장관은 오로지 국토교통부와의 관할권을 놓고 대를 이어 투쟁한다는 느낌마저 준다. 4대강 물관리 권한을 되돌려받기 위한 치열한 관료들의 ‘나와바리(관할권) 투쟁’으로 비칠 뿐이다. 부처를 초월해 국정을 다루는 국무위원은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예견됐던 대로 거대한 관료행정에 함몰된 것이 분명하다. 미래부 창설을 주장하던 사람들조차 실망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미래부가 무얼하는 부처인지도 아는 사람이 없다. 돌아보면 최근의 정책들은 대부분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들의 정책이다. 금융위가 최근 발표한 정책금융기관 통합 방침도 그런 범주다. 관치금융의 구조화를 정책금융이라고 혼동해 부르는 것은 관료들뿐이다. 그렇게 박근혜 행정부가 돌아가고 있다. 대통령의 손가락만 쳐다보는 장관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오늘도 대통령의 말씀을 받아 쓰기 위해 수첩을 꺼내든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