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가정신, 오만에도 밀리더라…오만 가지 규제 탓에"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이 작년 7월 발표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 한국은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13개 기업을 순위권에 올렸다. 미국(132개사), 중국(73개사), 일본(68개사), 독일(32개사) 등에 비해선 뒤지지만, 기업 숫자는 전 세계 국가 가운데 여덟 번째로 많다. 이 결과만 놓고본다면 한국은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국가라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과연 그럴까.

‘재계 싱크탱크’로 불리는 한국경제연구원 최병일 원장의 평가는 달랐다. 최 원장은 1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제4차 창조경제특별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경제력 수준에 비해 낮다”며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칠레보다도 뒤처진다”고 주장했다.

"한국 기업가정신, 오만에도 밀리더라…오만 가지 규제 탓에"
최 원장은 이런 주장의 근거로 미국 조지메이슨대 졸탄 액스 교수와 헝가리 펙스대의 라슬로 체르브 교수가 창안한 ‘글로벌 기업가정신 지수(GEDI)’를 제시했다.

GEDI는 각국 국민들의 창의성 등 태도조사 결과와 법·규제 등 제도적 기반 등을 기초로 만든 지수다. 조사결과 전 세계 70개국 중 한국은 43위로 중국,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과 중위권을 형성했다. 러시아, 인도, 태국, 필리핀 등보다는 높았지만 오만, 슬로베니아, 사우디, 칠레보다는 낮았다. 최 원장은 “GEDI 조사 결과는 한국이 혁신형 경제구조가 아니라 여전히 노동·자본 등 생산요소의 효율성을 높여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구조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에서 기업가정신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나친 규제, 성공한 기업가에 대한 편견 등 여덟 가지를 꼽았다. 가장 심각한 요인으로 꼽은 건 ‘규제’였다. 최 원장은 “대다수 서비스업종이 엄격한 자격증 심사를 통해 시장 진입을 제한하다 보니 혁신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며 “병원산업만 하더라도 의사자격증 소지자만 병원을 차릴 수 있게 제한해 글로벌 수준의 의료기업이 나올 수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또 “대부분의 규제가 모호하고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게 많아 행정부처가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개입할 우려가 큰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공한 기업가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우리 사회의 풍토도 문제”라고 했다. 반(反)기업정서가 만연해있다는 얘기다. ‘관치’도 기업가정신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았다.

최 원장은 “이전 정부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중요하다고 그토록 강조해왔는데, 지금 셰일가스가 뜨면서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정책은 없던 얘기처럼 돼 버렸다”고 꼬집었다.

그는 “현 정부가 창조경제라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지만, 5년 안에 성과를 낸다는 식으로 몰아붙여선 안된다”며 “기업가정신은 자율적인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나오는 것이지, 관치경제에선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