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전력수급기본계획, 광역도시계획, 산업입지수급계획 등 굵직한 국가 사업계획 수립시 환경영향 평가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 내 논란이 뜨거운 사안임에도 추석 연휴 전날 슬그머니 해치운 것으로 드러났다. 사전 협의를 기다리고 있던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은 물론 조정 역을 맡고 있는 국무조정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올 들어 산업계의 거센 반발에도 ‘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 등의 제정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던 환경부가 또다시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 151개로 확대

환경부의 독주…기습 입법예고 '빈축'
환경부는 지난 17일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을 기존 101개에서 151개로 대폭 늘리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에너지기본계획, 광역도시계획, 도시·군기본계획, 수도권정비계획, 산업입지수급계획 등 최상위 국가 기본계획이 대거 포함됐다. 전략환경영향평가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국가 계획을 수립할 때 환경 보전 여부를 따지는 제도다.

주요 평가 항목은 △해당 지역 및 주변 지역의 입지 여건 △토지 이용 현황 및 환경 특성 △ 계절적 특성 변화 △각종 환경 기준 유지 여부 등이다. 평가 결과 환경부의 승인이 나지 않으면 사실상 관련 국가 계획을 추진할 수 없다.

특히 산업부에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동안 산업부는 국가 전력수급의 밑그림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단독으로 마련해 추진했다. 하지만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에 들어가면 절차상 최종 승인을 환경부에서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전력 수급상 발전소 건설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려도 환경영향평가에서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 나오면 해당 발전소를 지을 수 없다. 지난 2월 환경부는 산업부가 발표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해 대기오염을 심화시키고 온실가스 감축에 걸림돌이 된다며 반대했지만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제동을 걸 수 있다. 시행령은 해당 부처 입법예고, 여론 수렴,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를 거쳐 국무회의에서 최종 승인한다.

○산업부, 국토부 강력 반발

이번 환경부의 입법예고에 산업부와 국토부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통상 여러 부처가 엮인 법률을 개정할 경우 부처 간 협의를 거쳐 합의점을 찾은 다음 입법예고를 하는데 이번에는 환경부 독단적으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당초 지난달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려 했지만 부처 간 협의가 끝나지 않아 미뤄졌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국무조정실이 중재에 나서 협의를 계속 진행해오던 중이었다. 하지만 환경부는 이번 입법예고 사실을 사전에 이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침에 출근해 관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환경부 뜻대로 호락호락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환경부는 이번 입법예고가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부처 간 협의를 끝낸 뒤에 입법예고할 의무가 없다는 것. 환경부 관계자는 “입법예고를 통해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우선이고 입법예고 이후에도 관련 부처와 충분히 협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