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힘든 한국] "국회서 법안 뒤집혀 깜짝 규제…기업 의견은 듣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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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국기업도 질린 규제입법
세무조사·통관절차도 갑자기 까다로워져
"정책 일관성 없고 기업 옥죄기만" 脫한국 경고
세무조사·통관절차도 갑자기 까다로워져
"정책 일관성 없고 기업 옥죄기만" 脫한국 경고
서울 양재동 KOTRA ‘외국기업고충처리단’은 한동안 외국 기업들의 항의전화로 몸살을 앓았다. 이곳의 주 업무는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기업들의 고충을 듣고 처리하는 것.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게 말이 됩니까” “기업 의견도 듣지 않고 화학물질 등록·평가법을 통과시키면 어떡해요?”….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정부와 정치권이 최근 새로 만든 규제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김유정 외국기업고충처리단장은 “과거 강성노조 문제가 외국기업들의 주된 애로사항이었다면 지금은 기업 관련 규제와 법에 대한 항의가 많다”고 귀띔했다.
한국이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바뀌고 있다는 인식이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다. 국내기업뿐 아니라 외국기업까지도 “규제가 지나치다”고 호소할 정도다. 무엇보다 ‘조변석개(朝變夕改)’식 규제 정책에 대한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무차별 규제에 뿔난 외국기업들
국내에 진출해 있는 일본 기업을 대표하는 서울재팬클럽의 와카바야시 다카시 회장(금호폴리켐 부사장)은 지난 5일 환경부 관계자를 만나 화학물질 등록·평가법(이하 화평법)을 수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등 외국기업 대표 단체들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화평법은 지금까지는 등록하지 않아도 되는 100㎏ 미만의 신규 화학물질 등 모든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검사해 등록할 것을 의무화한 법이다. 지난 4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와카바야시 회장은 “화평법은 유럽, 일본보다 더 심각한 규제”라며 “기업의 연구개발(R&D)을 위한 화학물질도 모두 등록하도록 규제하면 한국에서 사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일본 화학·소재 기업 20~30곳이 이 법의 영향을 받게 생겼다”며 “10개월가량 걸리는 등록 절차를 감안하면 한국의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제조사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와카바야시 회장은 규제를 만드는 절차 문제도 꼬집었다. 그는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환경부의 당초 안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는데 4월 국회 논의 과정에서 16일 만에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규제를 기업 의견도 듣지 않고 갑자기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했다.
ECCK도 세법 개정안에 대해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올해 1월1일부터 시행한 ‘외국인 근로자 소득세 감면혜택’(모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일률적으로 17%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을 정부가 1년도 안 돼 바꿨다는 게 ECCK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내기업과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는 외국인 근로자 범위를 약간 축소한 것이지 17% 일률 세율을 없앤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틸로 헬터 ECCK 회장은 그러나 “(한국 정부가) 어제 내렸던 결정을 내일 뒤집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세무조사·통상임금, 곳곳에 ‘암초’
외국기업들의 불만은 더 있다. 한국GM은 벌써 6년째 통상임금 소송에 휘말려 있다. 노조원 1025명이 2007년 업적연봉(성과급)과 조사연구·조직관리수당, 귀성 휴가비, 개인연금보험료, 직장단체보험료 등 부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급여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며 소송을 내면서부터다. 법원은 1심에서 노조 손을 들어준 데 이어 올 7월 열린 2심에선 1심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업적연봉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GM은 이에 불복, 지난 16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한국GM 관계자는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 때 댄 애커슨 GM 회장을 만나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해 기대를 했는데 오히려 통상임금 인정 범위가 넓어져 피해만 커졌다”며 “업적연봉까지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다른 근로자도 소송을 제기하면 통상임금 관련 우발 채무 규모가 1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 들어 세무조사와 통관 절차가 엄격해졌다는 것도 외국기업의 불만이다. 외국계 기업 A사 관계자는 “세무조사 빈도가 잦아진 건 아니지만 예전 같으면 과세 대상으로 보지 않을 항목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 같다”며 “통관 절차도 관세청이 올 들어 갑자기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세무당국이 세수 확보를 위해 국내외 기업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는 것 같은데 한국기업, 외국기업 가릴 것 없이 기업하는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외국기업들은 기업 규제가 갑자기 늘어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탈(脫)한국’ 현상이 빚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와카바야시 회장은 “정부 정책이 일관성이 없고, 규제가 많아지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헬터 회장도 “한국 정부가 소득세 감면 혜택을 갑자기 바꾸는 건 외국기업들 입장에선 투자환경이 악화할 것이란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정부가 규제와 법률을 일관되게 유지하느냐가 투자하는 기업 입장에선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이태명·정인설·전예진·김대훈 기자(산업부), 안재광 기자(중소기업부), 이현진 기자(건설부동산부)
한국이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바뀌고 있다는 인식이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다. 국내기업뿐 아니라 외국기업까지도 “규제가 지나치다”고 호소할 정도다. 무엇보다 ‘조변석개(朝變夕改)’식 규제 정책에 대한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무차별 규제에 뿔난 외국기업들
국내에 진출해 있는 일본 기업을 대표하는 서울재팬클럽의 와카바야시 다카시 회장(금호폴리켐 부사장)은 지난 5일 환경부 관계자를 만나 화학물질 등록·평가법(이하 화평법)을 수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등 외국기업 대표 단체들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화평법은 지금까지는 등록하지 않아도 되는 100㎏ 미만의 신규 화학물질 등 모든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검사해 등록할 것을 의무화한 법이다. 지난 4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와카바야시 회장은 “화평법은 유럽, 일본보다 더 심각한 규제”라며 “기업의 연구개발(R&D)을 위한 화학물질도 모두 등록하도록 규제하면 한국에서 사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일본 화학·소재 기업 20~30곳이 이 법의 영향을 받게 생겼다”며 “10개월가량 걸리는 등록 절차를 감안하면 한국의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제조사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와카바야시 회장은 규제를 만드는 절차 문제도 꼬집었다. 그는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환경부의 당초 안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는데 4월 국회 논의 과정에서 16일 만에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규제를 기업 의견도 듣지 않고 갑자기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했다.
ECCK도 세법 개정안에 대해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올해 1월1일부터 시행한 ‘외국인 근로자 소득세 감면혜택’(모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일률적으로 17%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을 정부가 1년도 안 돼 바꿨다는 게 ECCK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내기업과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는 외국인 근로자 범위를 약간 축소한 것이지 17% 일률 세율을 없앤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틸로 헬터 ECCK 회장은 그러나 “(한국 정부가) 어제 내렸던 결정을 내일 뒤집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세무조사·통상임금, 곳곳에 ‘암초’
외국기업들의 불만은 더 있다. 한국GM은 벌써 6년째 통상임금 소송에 휘말려 있다. 노조원 1025명이 2007년 업적연봉(성과급)과 조사연구·조직관리수당, 귀성 휴가비, 개인연금보험료, 직장단체보험료 등 부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급여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며 소송을 내면서부터다. 법원은 1심에서 노조 손을 들어준 데 이어 올 7월 열린 2심에선 1심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업적연봉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GM은 이에 불복, 지난 16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한국GM 관계자는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 때 댄 애커슨 GM 회장을 만나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해 기대를 했는데 오히려 통상임금 인정 범위가 넓어져 피해만 커졌다”며 “업적연봉까지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다른 근로자도 소송을 제기하면 통상임금 관련 우발 채무 규모가 1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 들어 세무조사와 통관 절차가 엄격해졌다는 것도 외국기업의 불만이다. 외국계 기업 A사 관계자는 “세무조사 빈도가 잦아진 건 아니지만 예전 같으면 과세 대상으로 보지 않을 항목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 같다”며 “통관 절차도 관세청이 올 들어 갑자기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세무당국이 세수 확보를 위해 국내외 기업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는 것 같은데 한국기업, 외국기업 가릴 것 없이 기업하는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외국기업들은 기업 규제가 갑자기 늘어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탈(脫)한국’ 현상이 빚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와카바야시 회장은 “정부 정책이 일관성이 없고, 규제가 많아지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헬터 회장도 “한국 정부가 소득세 감면 혜택을 갑자기 바꾸는 건 외국기업들 입장에선 투자환경이 악화할 것이란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정부가 규제와 법률을 일관되게 유지하느냐가 투자하는 기업 입장에선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이태명·정인설·전예진·김대훈 기자(산업부), 안재광 기자(중소기업부), 이현진 기자(건설부동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