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

27일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동시에 실형을 선고받은 SK는 충격에 휩싸였다. SK 관계자들은 전날 국내로 송환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증언이 빠진 채 강행된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날 오후 최 회장과 동생 최 수석부회장이 실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 서린동 SK 본사는 무거운 침묵에 빠져들었다. SK 관계자는 “횡령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원홍을 빼고 재판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대법원에서 다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SK 관계자는 “형제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면 재계 3위 기업인 SK의 경영은 큰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이날 오후 “판결을 선고하기에 충분히 심리됐다고 인정되므로 판결을 선고한다”는 담당 재판부의 결정이 알려지자 회사 주변에선 “김원홍이 한국으로 왔는데 이대로 끝나는 건가”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SK 관계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재판 과정을 예의주시했다. 끝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결정되자 SK 직원들은 고개를 떨궜다. 특히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최 수석부회장까지 유죄를 선고받자 SK 임직원들은 망연자실했다.

이번 판결로 SK의 경영 공백 상태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 불가피하다. 최 회장의 부재로 비상이 걸린 SK는 새로운 경영체제인 ‘따로 또 같이 3.0’을 실험하고 있다.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아래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여하는 6개 위원회를 두고 급한 불을 꺼가고 있는 형국이다.

SK 관계자들은 최 회장의 공백으로 해외사업에서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룹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3월 SK이노베이션이 인도네시아 석유화학단지 수주 경쟁에서 탈락했을 때도 최 회장이 지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현지에서 나오기도 했다.

태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조기재해 경보시스템 수주작업과 현지 화학회사와의 합작 등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터키 화력발전소와 터널 공사 등도 마찬가지다. SK 관계자는 “에너지 사업, 자원개발 등 대규모 계약은 정부 최고위층 인사와의 긴밀한 협의가 필수적”이라며 “오너가 나서서 현지 파트너에 확신을 심어줘야 사업이 진척될 텐데 여의치 못해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