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설치작가 칼리토 카르발료사가 전봇대를 소재로 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브라질 설치작가 칼리토 카르발료사가 전봇대를 소재로 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가 대체 어딜까. 분명 전시실인데 작품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오래된 전신주가 십자가 모양 혹은 X자형으로 얽힌 채 널브러져 있다. 꼿꼿이 서서 도시를 밝히던 예전의 기상은 온데간데 없고 옆으로 다리를 뻗고 누운 그것들은 더 이상 전신주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태풍이 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깨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던 예수를 떠올리게도 한다.

관객에게 당혹감을 안겨주는 이 설치 작품은 브라질 작가 칼리토 카르발료사(52)의 ‘대기실’이다.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국제갤러리 K3관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이 작품은 지난 5월 브라질 상파울루 현대미술관 별관 개관 기념작으로 설치돼 호평받았다.

조각 설치와 비디오 작품으로 잘 알려진 카르발료사는 우리에게 친숙한 건축 공간 내부를 새롭게 변형함으로써 관객을 낯선 혼돈의 감정으로 몰아간다.

그는 주어진 전시 공간을 직물, 세라믹 같은 도시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다양한 오브제로 채워 넣어 그것이 새로운 공간과 만나서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띤 대상으로 탈바꿈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작업을 통해 그는 공간을 재해석하고 그 속에서 차분하고 명상적인 시간을 갖도록 해준다.

이번에 설치된 나무기둥은 모두 12개, 길이는 8~12m로 다양하다. 원래 전신주로 사용된 것으로 브라질 현지에서 공수해 왔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의 기둥은 서로 엇갈려 십자가 같은 형상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 작품에 사용된 재료는 처음에는 숲 속의 나무였지만 전신주로 사용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됐다. 이것이 수명을 다하자 이번에는 내 작품의 재료가 됐다”며 “모든 물체는 새로운 공간에 자리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작가가 표현하려는 것은 건물이 지닌 심리적 측면과 그곳에 거주하는 인간과 건축물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나무 전신주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오브제는 아니라고 말하자 작가는 이렇게 응수했다. “그런 낯섦을 유도했다면 내 의도가 성공한 거예요. 중요한 것은 재료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지금 관객에게 어떤 느낌을 불러일으켰느냐 아닌가요.” (02)735-8449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