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아이폰이 들어오기 전인 2009년 무렵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해 ‘아이폰을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그 당시 “애플이 너무 고압적이다”느니 “아이폰을 들여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언성을 높이며 다투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도 길에서 인터넷을 즐기는데 우린 휴대폰으로 문자나 주고받고 있지 않으냐”고 따지곤 했다.

4년쯤 지난 지금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업 플러리(Flurry)는 최근 ‘한국 보고서: 맨 먼저 디바이스(기기) 시장이 성숙단계에 접어든 나라의 트렌드’란 것을 내놓았다. 한국 스마트폰 시장이 가장 먼저 성숙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게 핵심이다. 유난히 패블릿(화면이 5인치 이상 6.9인치 이하인 스마트폰) 비중이 큰 것도 특징이라고 꼽았다.

한국은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지 2년 반이 지난 뒤에야 아이폰을 도입했다. 그런데도 스마트폰 시장이 가장 먼저 성숙단계에 접어든 이유는 뭘까? 삼성 LG 팬택 등이 세계 스마트폰의 절반가량을 공급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국민 교육수준이 높고 첨단기술에 대한 적응이 빠른 것도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패블릿 비중이 높은 건 별개 문제다.

○성숙단계에 보조금 규제 강화

[광파리의 IT이야기] 한국인은 패블릿, 미국인은 태블릿…선호도 큰 차이
플러리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아이폰이 들어오기 직전인 2010년 가을까지는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이 세계 평균을 밑돌았다. 그런데 2011년에는 보급 대수가 수직으로 증가해 성장률이 세계 평균을 한참 웃돌았고 2012년에는 속도가 급격히 둔화됐다. 2012년 연결기기(스마트폰+태블릿) 시장 성장률이 세계 평균은 81%에 달한 반면 한국은 17%에 그쳤다. 플러리는 최근 1년여 기간에는 한국 스마트폰 시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달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근 1년이라면 정부가 보조금 규제를 강화한 시기와 맞물린다. 결과적으로 시장이 지나치게 뜨거워질 땐 내버려뒀다가 식어갈 무렵 규제를 강화한 셈이 됐다. 그러다 보니 수요가 급랭해 팬택 등 메이커들이 어려움을 겪고 소비자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패블릿 비중이 유난히 높은 나라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큼직한 휴대폰을 쓰는 사람이 많다. TV 드라마를 봐도 갤럭시노트같이 얼굴을 반쯤 가리는 패블릿이 많이 등장했다. 삼성이 갤럭시노트를 드라마 소품으로 제공하는 등 PPL(제품을 노출시키는 간접광고)에 적극 나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패블릿을 많이 사용하는 게 현실이다. 플러리 보고서는 이 현상을 정확하게 진단했다.

[광파리의 IT이야기] 한국인은 패블릿, 미국인은 태블릿…선호도 큰 차이
플러리는 ‘한국인은 패블릿 팬’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연결기기 중 패블릿 비중이 세계 평균은 7%에 불과한 반면 한국은 41%나 된다는 얘기다.

반면 화면이 3.5인치 미만인 소형 휴대폰 비율은 세계 평균은 4%인데 한국은 제로다. 애플 아이폰이 속한 중형 휴대폰 비중은 세계는 69%, 한국은 54%. 메이커들이 갤럭시노트, LG G2, 베가 LTE 등 패블릿 판매에 주력한 결과이다.

○미국은 태블릿 보유율이 35%

미국은 태블릿 비중이 매우 높다. 시장조사기업 퓨인터넷이 최근 16세 이상 미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이패드를 비롯한 태블릿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35%, 킨들이나 누크와 같은 이리더(전자책 단말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24%였다. 태블릿 또는 이리더를 가지고 있는 사람 비중은 43%. 미국인 10명 중 4명 이상이 태블릿이나 이리더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애플이 아이패드를 발매한 이후 태블릿 보유율이 해마다 빠르게 상승했다. 2010년 3%, 2011년 8~10%, 2012년 25%, 2013년 35%. 2011년까지만 해도 태블릿보다는 이리더 보유율이 높았는데 지금은 이리더 24%, 태블릿 35%로 태블릿이 11%포인트 더 높다. 2007년 시작된 ‘킨들 열풍’을 3년 늦게 나온 아이패드가 잠재웠다고 볼 수 있다.

[광파리의 IT이야기] 한국인은 패블릿, 미국인은 태블릿…선호도 큰 차이
관심사는 한국의 패블릿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되느냐이다. 휴대폰 시장이 성숙단계에 접어든 만큼 메이커들이 새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 갤럭시기어 같은 액세서리가 계속 진화하고 노트북과 태블릿이 수렴한다면 휴대폰은 작아져 몸 어딘가에 숨겨지고, 노트북인지 태블릿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기기를 즐겨 사용하는 상황도 상상할 수 있다.

김광현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