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사고 채권 팔고…외국인의 '이중생활'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37일째 순매수하고 있다. 반면 채권시장에선 최근 3개월 연속 외국인 자금이 순유출(순투자 마이너스)되고 있다. 올 상반기와 정반대 매매패턴이다.

○5년래 가장 강한 채권 매도세

국내 시장에선 ‘트리플 강세(주식, 채권, 원화의 동시 강세 현상)’ 현상이 자주 목격되고 있지만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은 대체로 반대로 움직이는 속성이 있다. 올 하반기에도 두 시장이 따로 움직이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심도있게 진행 중이다. 외국인 주식 순매수액은 지난달 8조3320억원까지 급증했고, 이달 들어서도 지난 18일까지 3조5430억원에 달했다. 반면 올 2~7월 순투자(순매수-만기상환)가 플러스였던 외국인 채권 매수는 8월 이후 계속 마이너스다. 8월 2조600억원, 9월 2조4490억원, 10월(18일까지) 2조9100억원이 국내 채권시장에서 순유출됐다.

외국인의 원화 채권 보유 잔액은 지난 7월22일 103조2200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3개월째 감소세다. 지난 18일 기준 보유 잔액은 95조2200억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개월 연속 2조원 이상 순유출이 이어진 것은 처음이다. 채권시장의 큰손인 템플턴 글로벌채권펀드의 매도세가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주식 ‘안전지대’… 채권은 글쎄

두 시장이 엇갈린 주요 원인으로는 미국 양적완화 종료 가시화가 꼽힌다. 주식시장에 외국인이 몰리는 것은 투자 리스크 측면에서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간지대인 ‘셸터(피신처)’로 한국 시장이 인식된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반면 채권은 양적완화 정책이 끝나면 채권 약세(금리 상승)가 불가피해진다. 여기에 ‘환율 요인’이 하나 더 붙었다. 홍정혜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국 채권은 선진국 채권보다는 금리가 높은 이머징 채권인데다 원화 강세 전망으로 올여름까지 매력이 있었다”며 “그러나 원화가 달러당 1060원까지 내려온 상황에서 더 강세를 나타낼 것이란 믿음이 옅어지며 매력이 반감됐다”고 설명했다. 채권시장에선 ‘셸터’보다는 이머징을 탈피하려는 투자욕구가 강하다는 분석이다.

○“단기 유출 위험은 적어”

국내 주식ㆍ채권시장의 디커플링으로 ‘그레이트 로테이션(채권에서 주식으로 투자자금 이동)’이 이미 시작됐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이머징에서 선진국, 채권에서 주식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것은 맞겠지만, 지금 당장 그런 현상이 시작됐다고는 보지 않는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금리 상승으로 채권 투자수요가 자연스레 줄고 있지만 여전히 아시아 이머징 채권 중에선 매력이 가장 크다”며 구조적 이탈 가능성에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한국을 비롯한 각국 주식시장의 리스크프리미엄이 아직 높아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일어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올 연말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재승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가치가 더 상승할 것이란 기대가 줄어 글로벌 채권펀드 자금이 계속 빠져나갈 수 있다”며 “전체 상장 잔액의 50% 이상을 외국인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국고채 10-6종목처럼 올 12월이 만기인 채권에서 추가 이탈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장규호/하헌형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