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택의 기로에 섰다 … 아시아 국가 VS 서방권 회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며칠 전 보험사 임원과 점심식사를 했다.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다. 회사 실적 때문이다. 경기 탓인지 보험 해약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보험은 어려울 때를 대비하는 금융상품이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도 웬만하면 묻어두고 지나가는데, 깨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요즘 사업하는 지인들을 만나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경기 직후보다도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한다. 엄살만은 아닌 듯하다.
기업들은 돈이 많다고 하지만 일부 잘 나가는 대기업들 얘기다. 웅진그룹, STX에 이어 동양그룹처럼 큰 기업들도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기업의 흥망성쇄야 피할 순 없지만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해외는 물론 국내 시장도 어렵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선 ‘경제 성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지를 준비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2013년 들어 한반도를 둘러싼 글로벌 경제구조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경제패권을 잡기 위해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을 추진중이다. 글로벌 경제의 패권을 잡고 있는 미국은 아시아에서 영향력 유지를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일본을 참가시키려고 하고 있다. 일본도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TPP 협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구체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TPP참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의 미래를 아시아에 둘 것인가, 아니면 지난 1세기처럼 서방에 의존할 것인지를 놓고 저울질해온 일본이 다시 ‘서방의 일원’으로 무게 중심을 두는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해온 한국의 장기 구상과 거리가 멀다. 일본이 군사, 경제적으로 서방과 긴밀해질수록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는 좁아진다. 기술과 자본에서 일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 일본의 서방 우선 정책은 불리한 측면이 많다.
한일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양국 관계가 1965년 국교 수교 후 최악의 상황이라는 말이 터져나온다.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정상간 대화마저 끊을 정도로 냉각됐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권에 이어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관계 회복을 위한 돌파구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
한일 관계가 뒤틀리면서 양국 FTA 협상도 정체 상태다. 반면 일본은 연말을 목표로 미국이 주도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여를 서두르고 있다. 농민 등 시장 개방에 반대해온 세력의 반발을 고려해 소극적이던 기존 협상 태도를 바꾼 것이다.
한중일 FTA가 먼저 성사될지, 일본이 TPP에 먼저 참여하고 한국도 TPP에 참여할지는 세계적 관심사다. 아시아의 세력 균형은 물론 한일간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변화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한국과 일본이 취할 FTA 협상 전략이 관심이 가는 이유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한일 FTA 체결을 포함해 양국간 경제협력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 감정으로 양국 경제에 피해를 주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일본도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의 리더국들과 FTA를 체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일본이 한국이나 중국과 FTA를 포기하고,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지대에 들어갈 경우 아시아 지역에서 고립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시아의 미래를 서방 국가에만 맡겨둘 순 없지 않은가. 아시아인들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울어가는 미국에 아시아인의 운명을 맡기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문명의 역사를 자랑해온 한중일 3국 지도자들의 현명한 결정을 믿는다.
한경닷컴 최인한 뉴스국장 janus@hakyung.com